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 악의 시대, 도덕을 말하다
샘 해리스 지음, 강명신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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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삭제. 그리고 자각하지 못하는 기억과 의식을 지닌 인간 남녀.

그 부분에서 영화는 시작되었다. 그 동안의 많은 영화에서 외계인의 침략을 다루어와서 침략의 과정을 묘사함은 흥미를 잃었을 수도 있고 따분한 반복을 위한 투자가 아까워서도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기억을 삭제한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누군가의 기억을 삭제할 수 있다면 언제부터 어디까지이고 지워진 기억으로부터 연관된 어느 부분은 어떻게 메워 놓을까?

시간은 직선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을지라도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평행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기억의 삭제나 기억의 재 구성을 다룬 영화들에는 그 지워진 기억의 다른 연관부분의 재생에서부터 기억이 되살아난다는 것을- 그래야 영화의 반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보여주고 있다.

지구에서의 임무가 끝나기 2주전!

불현듯 뇌리에 번쩍이는 희미한 흑백의 기억들.

뭔지 뚜렷이 연관되는 사실은 없지만 행복을 떠올릴 수 있는 흑백 필름의 기억.

심리학자 대니얼 카네만은 삶에서 어느 순간에 얼마나 행복한가를 말하는 것을 경험하는 자아라고 하며, 삶을 전반적으로 구성하여 행복을 말하는 것을 기억하는 자아라고 부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두 자아가 갈등을 지속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나는 아무래도 어느 자아가 옳은지 우리는 아무도 단정지은 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삶의 매 순간마다 자신의 판단이 옳았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으며 만약 어긋난 결과를 보게 될 경우 틀린 판단을 한 자아는 미래를 보상 받을 수 있다는 예정된 기억으로 투사한다. Sam Harris문제는 과학을 하는 것과 인생을 사는 것 모두에서, ‘기억하는 자아만이 과거에 대해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자아만이 과거 경험에 비추어서 의식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그의 책”the Moral Landscape”의 마지막 부분에 썼다.

 

영화 속의 상상을 그려낼 때, 많은 과학자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내고 있지만, 나의 상상은 만약 우리가 외계인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외계인이라는 개념부터 통일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영화 등에서 상상하는 외계인은 꼭 지구가 아닌 항성, 행성 등에서 뭔가의 이동 수단을 타고 온다는 이미지가 고정된 듯 한데 그것은 과학자들이 정의하는 외계생물과는 차이가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과거 냉전시대나 이념이 주요 관심사였던 시기에는 우주인은 테러리스트이거나 침략자로 상상하여 악을 물리치는 선의 대립으로 그려내는 서구인의 종교상을 표현하곤 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환경과 자원이라는 문제에 사람들의 고민이 부각되자 최근의 외계인 영화는 ‘Transformer 3”처럼 지구의 인력을 사용하려는 상상이나 지구의 자원이 부족하여 외계 행성에서 자원을 약탈하려는 “Avatar”나 우주의 곳곳을 누비면서 행성의 자원을 탈취하여 다른 외계의 생물에게 판다는 해적이 나오는 “Star Trek; The beginning”과 같이 행성의 자원을 에너지화하는 상상이 Trend인가 보다.

아마 우리 모두의 상상의 근원은 인간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는 습성으로 하여 모든 문제를 내부에서 외부로 모방한다는 ‘Gabriel’의 법칙을 지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외계인이 있다면 우리와 같은 진화의 과정을 거쳤을 테고 같은 생체근거와 목적을 가져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 보다 발전한 이동수단이나 무기를 가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는 법칙도 그럴듯하게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그들이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발전한 과학 수준과 무기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며 그 불안감을 이용하는 호전적인 정치가들로 하여금 무기경쟁을 하는 것으로 자기 만족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일까?

인류가 침략문화를 만들어내면서 , , 쇠’로 타 문화와 인류를 말살했다면 같은 방법으로 총과 쇠는 침략자를 지켜주지 못했어도 균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영화” War of the Worlds/2005”도 있었다.

 

영화의 상상은 공포에서 비롯되어 희망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거의 모든 S.F영화의 모습이지만

외계인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침략자가 지구의 자원을 빼가기 위하여 복제인간을 이용한다는 상상은 언뜻 흔하지만 그 복제인간의 기억을 조작한다는 상상은 이전에는 보지 못한 상상 같다. 그것은 기억의 문제에 있어서 최근 읽은 Sam Harris의 책 덕분이기도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영화의 마지막을 의심하게 만든다.

외계침략 생물이 자신의 우주선 가득 복제인간을 만들어 배양하고 그 복제인간 중 1 ~ 100아니면 1000까지, 아니면 더 많은 수의 잭 하퍼와 빅토리야를 같은 환경의 같은 임무를 주어 같은 희망을 준다고 하여도 그 들의 경험하는 자아기억하는 자아의 충돌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미래를 예상하는 자아가 같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2000년도에 상영된 영화 “The 6th Days”에서 두 아담은 각기 다른 미래를 기억하는 자아때문에 협력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우주의 침략자가 잭과 비카에게 배양과정에서 현실에서 이미 생성된 복제인간에게 동시에 기억을 주입한다고 하여도 미래의 기억이 같을 수는 없어야 하며 흑백필름으로 간혹 나타나는 연관기억은 ‘49’번 잭에게만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의 희망일지 모르는 맑은 내가 흐르고 푸른 초목과 안락한 바람이 있는 오두막에서 수 십 년의 방사능을 견뎌낸 턴테이블에서 흘러나오는 Procol Harum의 낡은 LP음반 속 “A white shade of pale” 음악을 찾아 온 복제인간 52번의 재 등장은 공포에서 끝나지 않고 희망을 주려는 모든 상상영화의 끝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줘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우주의 고도로 발전한 문명과의 싸움에서는 인간이 가진 각종 질병 바이러스와 뇌에 인자되어 있는 기억들의 시냅시스가 늘 이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걱정해야 할 것은 외계인의 침략이 아니라 영화”2012”에서처럼 지구의 Pangaea 이동설의 실현이나 “Armageddon”처럼 난데없이 들이 닥치는 암석덩어리뿐이거나, 외계의 침략을 방어한다는 이유로 우주에 무기를 만들어 놓겠다는 “Star Wars Project” 따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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