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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 과학자의 눈으로 본 인간, 역사, 우주 그리고 신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수만 년 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방법대로,
수억 년 동안 우주의 별들이 제 주위를 돌았듯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저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알 수 없는 주기에 따라 지내고 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살던 고대인들이 수천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자신의 주변들에 있는 동물과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게 된 시기가 있었을 때, 그들이 느끼게 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시간의 관념에 대하여 정확히 또는 근사치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얻는 무지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내게 주어질 시간은 백 년도 채 못 될 것이고 그 중에서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그보다도 짧을 터인데 수백, 수천 수만 년의 시간을 응축해서 담아내는 역사나 인문학의 시간관념을 현재의 순간에 접목시키는 것은 어리석다.
그런 의미라면 사람들이 세상의 존재에 대하여 의문을 품었던 시기는 더 오래 전일 수 있으나 그 느낌을, 그 의문을 정리해서 내놓은 것은 몇 천 년 전의 일로 그 기록은 지금껏 남아 있으니 인간의 정신의 기록으로 남긴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수천 년 전의 어느 인간이 최초로 돌이나 거북이의 등껍질 또는 나무껍데기에 글이나 상징으로 새겼던 의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별에 관한 것? 날씨에 관한 것? 사냥에 관한 것?
우리는 세가지 생물학적인 발명품이 밀접하게 참여했음을 알고 있다. 고둥 생물이 출현하기 전에 생명이 만들어 낸 이 세가지 발명은 죽음, 성(性), 종의 분화이다. 죽음은 미래를 달라지게 한다. 성은 유전적인 특성을 빠르게 혼합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한다. 종의 분화는 유전장벽으로 격리된 종을 형성해서 다양성의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 세가지 발명은 모두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스스로 적응해 형태와 행동을 다양하게 바꾸면서 여러 가지 생태적 지위를 메워 가기 위해 꼭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의 원시사회를 보면 언어의 가소성과 다양화 경향이 인류의 진화에 본질 적인 역할을 했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강한 증거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다양한 언어가 있다는 것은 단지 불편한 역사적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인류의 진화를 촉진하는 자연의 방식이다. 인간 능력이 빠르게 진화하려면 사회적 진보의 생물학적 진보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가야 한다. 생물학적 진화는 무작위적인 유전적 변이를 통하여 일어나며. 이 변이가 고립될 때, 새로운 종을 제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유전적으로 고립된 작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이 공동체가 새로운 사회조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의 언어 장벽으로 이웃과 재빨리 격리되는 것이 극도로 중요하다. <프리만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20장 클레이드Clade, Klados 와 클론 308~ 309P>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에게 의사를 전달하기 위하여 언어가 다양해지기 시작한 것은 상징이 필요한 양이 많아졌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상징은 여러 방법으로 표현되었을 것이고 주변에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 있었는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의 차이에 의하여 상징의 방식과 표현 의지도 달라졌을 것이나 지구의 어느 곳에 살던 간에 같은 모습을 한, 같은 생활 방식을 가진 인간인 이상 일차적 상징의 의미는 같았을 것 같다.
그러다 점점 더 표현해야 할 무엇이 늘어나게 되던 그 시기에 달했을 때, 의지의 분화가 시작되며 각 종족간의 경계가 만들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정신이 두 가지 수준에서 우리의 자연에 대한 지각에 관련된다는 것이다. 가장 높은 수준에서, 정신은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화학적 패턴의 복잡한 흐름을 직접 의식한다. 가장 낮은 수준에서 정신은 원자와 전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기술에 개입한다. 그 중간에 분자 생물학의 수준이 있으며 여기에서는 기계적 모형이 적합하고 정신은 무관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물리학자로서, 정신이 우주에 드러나는 두 가지 방식이 논리적으로 연결 되어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자신의 뇌를 의식한다는 것이 원자물리학에서 ‘관찰’이라고 부르는 과정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나는 우리의 의식이 단지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사건들에 수반되는 수동적인 부수 현상 정도가 아니라고 보며, 분자의 복합체에게 한 양자 상태와 다른 양자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능동적인 작인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이미 모든 전자에 정신이 내재하며, 인간 의식의 과정도 정도만 다를 뿐 전자가 양자 상태들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과 종류자체는 다르지 않다. <23장 설계 논증 347P>
그런데 사람들이 수천 년을 이어져 오면서 왜 가치관이 달라졌는가에 대한 생각은 환경이 아주
많은 역할을 해주었다는 주장, 그것도 지구의 남북 측을 따라서가 아니라 기후 조건이 비슷한
동서 축을 따라서 의식의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주장에 동의할 만 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진리라는
것은 여러 학문의 갈래 중에 비록 어느 한 부분에 한할지라도 보편적인 현상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이 의식주를 바꿔 놓고 그 의식주의 발전에 따라 의식과 사물의 운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의하여 수렵민인가 정주민인가가 달라졌으며 그런 최적 분열의 효과는
(혁신은 분열이 최적에서 중간 정도에 머문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일어나고, 지나치게 통합되어 있거나 너무 분열된 사회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 총. 균. 쇠 그 후의 이야기: 665P>
환경을 변화시키는데 일조를 하게 되어 팽창주의를 부추겼고 그 바람에 유라시아가 아닌 대륙에서 사는 민족은 수렵민족의 팽창주의에 희생당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지만 그 팽창주의 속에 종교적인 역할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어쩌면 종교적인 의미로 인하여 팽창하려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육지로 이동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바다를 통하여 유토피아를 찾으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쪽으로 가기에는 분열된 다른 국가와 민족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러면 최종 목적지일 유라시아의 끝 쪽에 자리잡은 민족과 가장 가까운 민족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에서는 수렵과 식량을 풍족하게 유지, 관리 보존할 수 있는 기후조건이 의식을 발전하게 하였고 의식의 발달은 문명의 발달로 이어졌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역사와 지리적인 문제로 보았을 때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수만 년의 역사를 지리적으로 건너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인류의 발달을 말하면서도, 어쩌면 기후만큼이나 세심한 정신의 문화는 역사학자의 시선이라는 이유로 빈 공간으로 놓아 두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정리한다면 그의 주장에 더하여 가지려고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팽창주의와 소유는 폭력과 파괴를 불러온다고 믿으며 자연은 나와 같은 것으로 동일시화한 몽상가적 이상주의와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프리만 다이슨이 언어의 다양성이 진화를 도왔다는 점이나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분열이 최적화되었을 때 문명이 발달하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일 수 있겠으나 인류의 보편성을 두고 본다면 그렇게 되는 것은 결과론적이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류의 공동체가 발전하면서 사회적인 제도가 공동체를 이끈 규범이었을지라도 공동체의 각 개인을 묶을 수 있는 동질감이나 동화의 심인은 그들이 추구한, 그들의 심성에 자리잡은 문화적 요인도 무척 중요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과 서의 차이는 바로 그런 점 아닐까?
자연을 세세하게 그려낸 빛의 화가인가 아니면 흑백으로 소박하게 그려낸 수묵화인가의 차이.
그림은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그것을 바라보던 그 지역, 그 기후, 그 풍토 속의 사람들의 생각은 어쩌면 커다랗게 원을 그릴 때 일어나는 바람의 흐름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