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 세계의 석학들, 위대한 자유주의자 이사야 벌린을 말하다
마크 릴라 외 엮음 / 동아시아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무슨 이유로 이 사람의 책을 읽게 되었을까?

사전 지식도 없을뿐더러 다른 책에서도 인용된 적이 없던 사람의 책을 말이다.

그냥 어디선가 익숙한 왠지 익숙하다고 생각된 저자의 이름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인터넷의 검색으로 알아본 이사야 벌린.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사상가. 1909년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출생, 1915년 러시아로 이주하여, 1920년에는 영국에 정착한다. 옥스퍼드대학교 코퍼스크리스티칼리지에서 철학을 공부한다. 인간의 일생, 인간의 사상, 인간의 희비극성을 해부하였다. 벌린은 1953년 논문『고슴도치와 여우(The Hedgehog and the Fox)』에서 인간은 2종류가 있는데 여우와 고슴도치를 비유로 들었다.

 

다원주의 분석은 Isaiah Berlin의 엄밀한 철학적 작업을 그와는 전혀 별개의 영역인 사상사 및 현실 정치에 대한 탐구와 연결해 주는 끈이기도 했다. Isaiah Berlin은 사상가들을 인간 행위 및 역사적 경험 그리고 정치적 가치들을 전부 포괄하는 통합 이론을 발전시키는 고슴도치들, 언제 어디서든 다중성(Multiplicity)을 발견하며 특정한 사상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존엄성조차도 기꺼이 희생제물로 바칠 수 있는 열광자들을 겁내는 여우들로 나눈다. 서문

 

이 고슴도치와 여우는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킬로쿠스가 남긴 말로 여우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많이 알지만, 고슴도치는 한 가지 큰 것을 본다는 구절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

이사람 말고도 아마 누구든 세상의 인간성을 또는 인간의 본성이나 사회성들을 말할 때 상반되는 개념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런 인간의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벌린은 그 비유를 고슴도치와 여우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것이 다원주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자유를 예로 들며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에 대하여 주장한 것에 대하여 몇 사람의 학자들이 각 주제마다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책은 진행된다.

자유라는 것을 나의 생각으로는 루소의 방식으로 자율이 따라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상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우리는 자유(Liberty)는 원하는 것을 하는 자유(Freedom)가 아니라, 타인들의 도덕적 권리들을 존중하는 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Freedom)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정당한 자원을 소비하거나 정당하게 소유한 것을 주체에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취급할 자유(Freedom)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해된 자유(Liberty)는 다른 사람의 자원을 빼앗거나 아무 권리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자유(Freedom)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112P-자유주의 가치들은 서로 충돌하는가? Ronald Dworkin

 

그런데 자유라는 그 개념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 양면성과 이중성이 사회를 이루는 근본이라고 하더라도 모순적이랄 수 있는 개념 때문에 수많은 이념과 철학자들을 고민하게 만들고 정치가들에게 새로운 재료를 제공해주는 것 같다.

 

모든 좋은 것들이 원칙상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세계에 이르면 이러한 모순들은 해소될 것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는 가치에 부여한 의미는 우리가 말한 것과 다르다고 대답해야만 한다. 가치들이 그런 식으로 변형된다면, 지구상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관념들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총체라는 생각, 모든 좋은 것들이 공존하는 궁극적인 해법은 획득 불가능할(이는 진부한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개념적으로도 일관성이 없다. 좋은 재화라고 해서 모두 다살 수는 없다. 그것이 개념적 진리이다.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으며, 모든 선택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喪失)이 따른다. 100P-자유주의 가치들은 서로 충돌하는가? Ronald Dworkin <다원주의 Pluralism>

 

그렇지만

Isaiah Berlin에 따르면, 결국인간은 궁극적인 가치들 가운데에서 선택을 해야 하며, 그 선택은 그들의 삶과 사유가 시공간의 오랜 연속을 통해 그 존재, 사유, 정체성의 일부, 즉 그들을 인간답게 만드는 바의 일부인 근본 범주들 및 개념들에 따라서 규정 됩니다. 자유의 두 개념 168~169 – 유행에 뒤 떨어진 여우 78P Steven Lukes

 

그래서

갈등은 재 규정이라는 책략으로 처리됩니다. 마치 적극적 자유 강령에서 그러한 것처럼 말입니다.” 146P-가치의 다원성 Charles Taylor

 

이 것은 심리학의 부분을 차용한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프로이트를 싫어했다고 한다.

아마 프로이트 적 심리학의 근원에 대한 거부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생각은 인본주의적 사회주의에 많이 기울여져 있지만 그것이 사회의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있건 사람들은 각자의 이념을 말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어느 이념도 정답이라고 말 할 수는 없으리라고 본다. 사회는 현재 진행 중에 있으며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지금도 시간의 흐름에 맡겨져 있다.

 

진실이 밝혀졌을 때 그게 반드시 흥미로울 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선험적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48P (헤르첸. Herzen, Aleksandr Ivanovich)

 

어쨌든 벌린이 많이 인용한 헤르첸은

삶의 궁극적 목표는 삶 자체라고 믿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그 자체로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날 또는 다른 경험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믿었다. 그는 멀리 있는 목적들은 하나의 꿈이며, 그에 대한 믿음은 치명적 환상이라고 믿었다. 그러한 요원한 목적을 위해 현재 또는 곧 다가올 예견할 수 있는 미래를 희생하는 일은 항상 잔인하고 허망한 형태의 인간적 희생으로 귀착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가치들은 비인격적이며 객관적인 영역에서는 발견도지 않으며, 인간이 만들어 낸 것으로서 세대가 바뀜에 따라 변하지만 그 가치들을 존중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믿었다. 인간의 고통은 불가피하며, 전혀 오류가 없는 지식은 성취할 수도 없지만 필요하지도 않다고 믿었다.” 49P- 광신주의 없는 혁명가 Aileen Kelly

그리고

헤르첸은왜 인간만이 아주 적은 소수 집단들이 자기 집단의 목적을 위해 추구했던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의 그것을 얻기 위해 투쟁했던 바를 범주화하여 따라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Isaiah Berlin은 이 회의적 성찰에 대해 자신의 삶 전체를 단 하나의 열정(자유의 추구, 즉 개인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 둘 다를 추구하는 것)을 좇아 살았던 사람이 제시한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37P 광신주의 없는 혁명가 Aileen Kelly

 

자유에 대하여 자유를 실천하고 지켜가는 방식에 대하여 서구의 역사는 종교를 빼놓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책은 그렇게 빼고 있다. 3부의 시오니즘에 대하여도 내가 생각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끌어내고 있지 않다. 모두 같은 민족이라서 그런 것이었을까?

나는 그들의 종교적인 무의식적 인성이 언제 어디에서부터 양면성을 극단적으로까지 보여지는 파괴적 성향으로 발전 왜곡되어 왔는지가 궁금한데

  

왜냐하면 그러한 입장에 서면 차이를 설명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견해를 갖는 것이 대안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만한 서구적 배외주의(Western-Chauvinistic)일뿐더러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않아 보입니다. 144P 가치의 다원성 Charles Taylor

 

이 책은 그냥 우연히 끌려서 읽게 되었지만 다원주의에 대한 것보다는 자유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편에서 잘못 산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요즘 우리에게 말이 많은 입으로 논쟁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로 마감한다.

 

진보가 목표라면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인가? …… 당신은 진정으로 오늘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미래의 어느 날 사람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단상을 떠받치는 슬픈 여상주(Caryatid)역할을 하라 선고하고 싶은가…… 무한히 멀리 있는 목표는 ……일조의 기만이다. 목표는 좀 더 가까운데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최적임금이나 일을 하고 나서 느끼는 보람처럼 말이다.(이 글은 Isaiah Berlin 자신도 종종 차용했던 인용구이다.)40P 광신주의 없는 혁명가 Aileen K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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