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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즈 컬처 - 인문학과 과학의 새로운 르네상스
노엄 촘스키 & 에드워드 윌슨 &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20세기의 전쟁이 두 차례나 지나갔고 서양의 침략에 맞서던 동양의 나라들은 그들이 전쟁을 치르느라 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독립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그 반대라고 해도 좋다.
결국 각국은 전쟁과 침략에서 벗어나 피폐해진 국민들의 삶의 질과 경제적인 부를 누리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는데 누가 먼저 상처를 딛고 일어났는가는 그 나라의 과학의 힘이 아니었을까 한다. 과학이 한편으로는 전쟁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문명을 이루어낸 것도 사실 아닌가?
독일이나 일본이 패전국이면서도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할 수 있는 이유는 전쟁의 재료인 과학의 발달과 그래도 한때 이긴 했지만 타국을 점령했다는 몹쓸 자만심이 있었기에 다른 나라보다 빨리 일어설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기를 반세기가 지나 과학은 눈부시게 경이적인 속도로 발전하여 보다 많은 것을 발견하였고
보다 먼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며, 보다 빠르게 편리하게 이동하는 사물을 만들었으며, 급기야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로 세상을 시공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만큼의 개념으로 축소시켜 놓았다.
그런데도 아직 그러한 세계화에 소외되어 있는 것은 종교와 지역 문화가 아닐까 한다.
지역 문화는 그 자체로 삶이므로 섞일 수는 있으나 하나가 될 수는 없는 다양화라는 방패가 스스로의 존립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문화를 지탱하고 있는 종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을 쫓자니 근본이 무너지는 듯하고 무시하자니 자꾸만 새로운 학설들이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증명해내고, 그러다 보니 기성종교는 약해지는 한편 새로운 종파가 생겨나는 상황을 막아내지도 못하는 것 같다.
과학과 종교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어느 쪽도 더 강해지지 못했다.
이 싸움은 그저 쌍방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해주었을 뿐 대중을 끌어들이지는 못했다.(종교의 기반은 과학의 기반보다 훨씬 크다.)그렇다고 해서 이 문화적 전쟁이 지적으로 유용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중략 - 70억인류가 모두 행복해지려면 우리는 과학을 진보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은 백신을 접종하고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고 탄소세를 보전하는데 필요하지, 이런 일들에 역행하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는 기성)종교의 문제는 신이 아니다. 문제는 이들 종교가 진실을 제시하면서도 여기에 대한 의문제기는 차단한다는데 있다.. 심지어 응징하기까지 한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이런 독단을 가지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서문>Adam Bly
그렇게 존재의 불안을 느낀 근본주의자나 문자주의자들은 아이들의 공교육에도 관여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미봉책이 아닐까? 결국은 과학을 접하게 될 것이고 과학의 근본은 진실이 아닌 것을 밝혀내는 것이므로 의문을 하게 될 테니 참으로 과학에 접근하는 자라면 어렸을 적에 들은 이야기들은 그대로 신화화 해버리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다만 근본적인 신념에 빠져있다면 그 과정에서 자기합리화를 하거나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겠는가?
Trivers - 그러니까 적어도 두 가지 맥락에서 자기기만을 말씀하시는군요. 하나는 지식층으로, 교육의 과정을 거쳐 스스로 속은 개체가 되어 소수의 특권층의 이익에 봉사하면서도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또 하나는 설득과 기만을 전문으로 하는 대규모 산업으로, 이들도 대중을 무지 또는 자기기만으로 이끌어서 결국 조작 당하고 있을 뿐인데도 대중 스스로는 진실을 안다고 믿게 만드는 집단이지요. <전쟁과 기만> Noam Chomsky와Robert Trivers의 대화 중 /Science is Culture. Editor Adam Bly 동아시아 출판2012.12
그러한 어렸을 적부터 가르쳐온, 배워온 세상사는 법은 양면성을 가진 사회에 굴복해야만 한다는 것 아닐까? 그렇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제도나 규율에 의하여 자기기만이나 합리화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으므로 이런저런 학자들도 아무 결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리라. 다만 과학은 수많은 난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 가면서 존재를 증명해가니 언젠가는 수천 년간의 궁금증을 해결해 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완전함이라는 것은 없을지라도 말이다.
Gazzaniga - 그러나 이런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악이 저질러졌을 때 인간이 이를 응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워 집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어쨌든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에 대해서 어떤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죠, 이렇게 되면 사람은 악순환에 빠지고 응징이라는 반응의 본질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런 의문과 정면으로 마주 섭니다. “인간은 스스로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자유의지로 할 수 있는가? (자유의지 Tom Wolfe와 Michael Gazzaniga의 대화 중
그런 자유라는 말과 개념 때문에 사람은 인류로 분류된 이래 지금까지 수 많은 이념과 가치에 대한 대립으로 살아왔다고 보고 싶다. 그러나 이제 자유라는 것이 과학에 의하여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행동을 하게 되고 있음을 증명 받게 될 날이 다가올 것 같다.
인간이 순전히 자유의지로 움직이는지 데카르트처럼 다른 무엇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지 알 수 있거나 과학적 또는 수학, 문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다고 보는 학문중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뇌신경과학분야에서는 “인간의 뇌는 워낙 복잡해서 이해는커녕 상상하기도 어렵다. 인간은 이 분야의 연구에서 몇 킬로미터 전진한 것이 아니다. 몇 센티미터를 움직였을 뿐이다”라고 했다는데 안다고 말하는 것은 모른다는 말은 여기도 해당되어서 알면 알수록 모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몸이 유령을 담고 있는 기계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골드스타인- 데카르트는 의식이라는 까다로운 문제를 분리해냈습니다. 여기까진 좋았죠.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존재론적 결론을 끌어내는 바람에 비웃음을 샀습니다. 의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걸림돌이 있음을 간파한 데카르트는 의식이 몸 속에 있지 않다는 추론을 내놓았습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경험의 주체는 몸과 동일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철학자 Gilbert Ryle이 명명한 ‘기계 속의 유령’이라는 개념이 도입됩니다. 의식의 문제 Steven Pinker와 Rebecca Goldstein의 대화
22편의 대화록에서는 깊은 의미를 나누기에 너무 짧은 구성이 아니었나 싶다.
각자의 대화록 한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낼 수도 있었겠지만 기획자 아담 블라이가 자신이 창간한 잡지에서 대담 식으로 엮은 것이니 더 궁금한 것은 대담 자들의 책을 따로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