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산업혁명 - 수평적 권력은 에너지, 경제,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바꾸는가
제러미 리프킨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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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상하려 했던 내용은 사실 이렇다.

Necker cube

 

이 정육면체가 어떻게 보이는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머릿속에 있는 뇌가 시각신경에 의한 연결에 따라 결정해서 보내는 대로 결정할 뿐이다.

인간 주변의 모든 현상에 대하여 사람은 자기 관점으로 세상을 보려 한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보편적 진리라는 말은 인정할 수 있어도 유일한 진리라는 말은 사회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세상은 보편적 인간으로의 역할을 요구할 뿐이지 개인적 인성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우긴다고 잘못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렇게 인간은 그런 모순 속의 세상에서 보편적 진리에 맞추어 살 것인가

아니면 자신만의 개인적 인성을 고수하며 살 것인가로 늘 고민하며 지낸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던 그것은 개인의 일이고 개인의 능력이며,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성질이 어떻게 조합 되어있는가에 따른 문제이므로 어쩌면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노력을 하건 그것은 어찌 보면 이미 정해져 있는 결정론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론을 따르던 예정설을 따르던 그것을 따르도록 한 것은 이미 타율에 의한 판단이라 생각될 수 있기에 무엇을 따르던 그 결과로 어떤 결과를 인식할 수 있는 내가 아니었으므로 나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는 말이다.

또 만약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을 미리 예상하거나 결정하였다 하더라도

그렇게 판단한 내가 실행하는 나를 의심하고 거역하였으므로 그것 또한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역시 나는 책임이 없다.

 

과학은 궁극적으로 자연의 신비를 풀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이 결국은, 우리가 풀고자 하는 자연의 신비의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막스 플랑크-“ 

그렇다면 과연 나는 누구인가?

이런 과정과 끝나지 않을 모순을 상상하는 것을 끊음으로써 만나게 되는 거울 속의 존재가 나이다.

 

뭐 이런 어설픈 흉내나 내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고 상상력이란 수많은 시간 동안 인간의 세상을 물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풍부하게 만든 인간만의 능력이다.

그 능력 중에는 예술적인 것이 특별히 인간의 역사 속에 남아있는데 그것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었다.

나는 요즘 흔히 말하는 정치적 좌파나 휴머니스트 내지는 환경론자도 아니고

반미를 외치는 반미주의자나 정운이 같은 애들에게 경례하고 싶은 생각도 없는 그냥 어떻게 하면 멋진 건물을 하나 지을까 고민하는,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한 쥐뿔만한 돈도 없는, 한때 잘나갔던 적이 있었던, 자본주의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입었던, 촌놈일 뿐이다.

그런데도 마치 미국을 비난하는 듯한 말을 한다거나 정치적으로 무슨 대단한 책략이라도 있는 듯한 주저리를 떤다거나 환경애호자 같은 말을 하는 것은 그저 눈 앞에 보이는 상태에 대한 상상력이었다.

미국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깡패 같은 잘난 척이 싫을 뿐이고,

분명히 잘, 행복운운하며 어울려 살 수 있을 텐데 어울리지 않으려는 북쪽의 3대가 한심스럽게 생각될 뿐이며, 먹고 산 일이 개발업이었지만 어느 비 온후 맑게 개인 날 황톳길에 파인 조그만 웅덩이에 비친 햇살을 보고 싶어 콘크리트로 모든 땅을 덮는 것은 아니다 싶은 정도의 환경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요즘 개발업이 정말 게 발인지라 도통 앞으로 나갈 길이 보이지 않고 삐딱하게 좌우로 흔들거리는, 마치 술에 취해 앞으로 두 걸음 걷고, 뒤로 세 걸음 걸어 도통 앞으로 가지 못하는 주정뱅이의 모습이라서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던 터에 이런저런 책 속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나만의 도시개발을 하는 상상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흐르고 만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상상하는 나만의 도시개발의 꿈은 언제인가 했었던 서울의 재개발 상상을 조금 더 진전시켜보는 것이다.

그 때 생각했던 서울을 구분시켜 나누는 상상은 지금도 유효한 구상으로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도시와 도시의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는 벨트가 희미해졌으므로

도심과 도심의 연결로 커다란 원을 중첩시키는 구상을 해본다. 그 프로젝트 시안 만들 때 많이 그려지는 다이어그램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해왔던 개발의 방법은 이제 앞으로 해서는 안될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산적인 개발이 아니고 개인의 이익을 위한 개발이었기에 부작용이 너무 많이 나타났었다.

그리고 앞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 같아서이다.

개발 계획을 세울 때 어떤 설정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굳이 경제적, 산업적, 등의 커다란 agenda 를 세우지 않더라도 사회던 나 자신이던 이득이 있어야 하는데 나 자신이 개발을 통해 얻는 이익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겠지만 방법을 택하는데 있어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타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의 개발도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에게 있어 각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의를 하거나 협정을 맺거나 하는 것은, 가령 그것이 ESS라는 의미로 안정되어 있지 않아도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개인이 전원 의식적으로 미래를 예견하고, 그 협정의 규약에 따르는 것이 자기의 장기적 이익에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협정마저도 그 협정을 지키지 않으면 단기간에 있어서 큰 이득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이 항상 우세하게 될 위험을 갖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가장 좋은 예는 아마도 가격 협정일 것이다.. <이기적유전자127p”> 

어울리는 인용일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행위 동기 어디엔가는 분명 종족에게 이로운 행동을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어서 붙여 보았다. 하지만 Necker cube처럼 관점에 따라서는 이렇게 보는 자도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결국은 자신 말고 누군 가에게도 이득은 줄 수 있다고 본다.

 

“고전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다른 사람들의 선의나 순진함을 이용하면서 그들이 기울인 노력에 무임승차하거나 아니면 혼자 독점해서 훨씬 큰 이익을 얻으려 하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3차 산업혁명; 307p

 

어쨌든 시들해진 개발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어 세상의 흐름에 소외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개발의 방향을 상상해본다.

전에 생각한 것처럼 서울이라는 도시는 매력이 없다.

그저 세상에 널려있는 수백 개의 대도시중에 하나일 뿐 서울이라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600년이 넘는 古都인데도 고도의 흔적은 궁을 빼고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으니 휘황찬란한 불빛의 도시를 보고자 한다면 중국의 신흥도시가 더 어울릴듯하다.

 

3차 산업혁명 마스터플랜의 바탕은 주거 공간에 관한 혁신적 구상이다. 앞서 설명한 것을 다시 환기해 보자. 새로운 에너지 체제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매체와 만나면 공간에 대한 사고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독일 심리학자들은 이것을”Gestalt 변화라고 부른다. 1차 사업혁명은 밀도 높은 수직형 도시를 선호해서 마천루를 세워 하늘로 솟아 올라간 반면 2차 산업혁명은 지방을 분산해 교외 지역을 개발하고 선형으로 밖으로 뻗어나가는 수평형 공간을 이루었다.

그리고 3차 산업혁명은 이제 완전히 다른 지형을 가져온다. 우리 개발팀은 기존의 도심과 교외 공간을 하나의 생물권 안에 포함하는 마스터 플랜을 만들고 있다. 수천 개의 생물권 지역이 제각기 3차 산업혁명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 교통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결국 대륙 전체를 잇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말이다.  중략 문제는 그 규모다. 우리는 인구를 줄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 환경을 개발할 방법이 무엇인지, 에너지와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오염을 줄이며 인간적 척도에 맞는 주거 설비를 육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119p ~ 123p>

 

얼마 되지 않을 시간 안에 분명 세상은 책에서 계획하는 S.F영화속의 도시처럼 될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에 우리는 분단이라는 현실 때문에 섬처럼 고립되어서 그의 계획을 실현하는데 어려운 것 아닌가 했는데

부분적이나마 우리나라도 저자가 주장한 미래형 에너지 사업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 내년부터 ESS 실증사업 착수…2017년까지 3035억원 투입”

이제 임기가 다 되가는 정부에서 녹색사업 운운하면서 강바닥 파기나 자전거길 만드는 것을 홍보하지 않고 저 계획을 홍보하고 더 많은 투자를 했더라면 그는 인왕산에 올라가 자책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정부에서 부분적으로나마 투자를 계획하였다면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업은 저자의 주장처럼 일자리가 가장 많이 창출되는 건설업의 변화일 것이다. 상황이 저자가 생각하는 것과 맞아떨어지는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우리의 현실이지만 20년의 세월이라면 그리 어두운 전망도 아니라고 본다.

다만 과거의 방법에서 어떻게 빠져 나오는가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서울은 아주 획기적인 방식이 아니면 건들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념이 경제보다 우선하는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만약 내 상상대로 할 수 있는 꿈의 차원이라면 나는 먼저 서울과 도심의 주요 부동산을 모두 매입할 것이다.

집산주의로 비추어진다고 해도 그것이 좁은 면적을 가진 우리에게는 어울리는 미래를 제공해줄 것으로 생각되어 토지 및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행한다.

그 후 서울이라는 도시를 순환개발의 방법으로 재구성한다.

 

 

 

붉은 색의 종로구를 먼저 모두 국유화하여 책 속의 로마의 경우와 같은 방식으로 600년고도의 모습을 되살린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의 변화도 생성한다. 아마 태양광이 좋을 듯하다.

다음으로 노란 색의 고층빌딩을 개조하여 풍력과 지열과 태양광을 이용하는 White Color를 주로 하는 금융산업 구역으로 재편하고, 강북의 3구역은 주거구역으로 하며 협동조합의 형태의 공공생산 시설을 구비하여 은퇴세대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공간을 각 한 곳씩 구성한다.

강남의 나머지 3구역도 마찬가지로 볼로냐의 coop과 같은 형태의 제조시설을 만들어 자족할 수 있는 도시로 재편한다.

붉은 공간의 재편방향은 고도로서의 회복을 모색하여 19세기의 모습으로 환원시킨다.

숙박시설과 상업시설은 강북의 3곳은 숙박 중심으로 강남의 3곳은 상업시설을 주축으로 구성한다. 중심 원의 구역에서 이동은 탄소배출을 하지 않는 소형 전기 자동차를 이용하도록 한다. 소유주는 시로 하고 시내에서의 이동만 하도록 하는 rental 시스템을 도입한다.

 

서울의 외곽에거나 도심의 외곽에서 도심으로의 진입할 때는 탄소를 배출하는 차량의 진입은 할 수 없도록 하며 물류의 이동은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차를 이용하여 중심의 종합물류기지로 이동시키고 거기서 다시 전기를 사용하는 이동장치로 이용한다.

배달의 왕국이니 가정으로의 배달은 그때가 되면 수소전지를 사용하는 이동장치가 대중화 된다고 봐도 될 것이다.

강남의 노란 구역은 풍력에너지를 사용하는 구역으로 사용가능 하도록 건축물의 높이제한을 폐지하여 영화 “Judge Dredd(Dredd 2012)”에서 나온 Mega City와 같이 구성해도 좋을 것 같다.

영화에서처럼 초 대형 건축물을 도심의 중심 원 구역을 제외한 지역에 한 곳씩 건축하여 구역 내 주민의 모든 노동과 주거생활 유흥활동 등을 가능하도록 구성한다. 그 건물은 지열에너지까지 모든 에너지를 직접 생산 가능하도록 해도 될 만큼 크고 깊게 건설한다.

 

Jeremy는 내 생각과는 달리 도심 재개발의 수준으로 이미 많은 성과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 도시들 중에서 내게 깊은 인상을 준 도시는 모나코였다. 영화아이언 맨2”의 자동차 경주를 하는 그 도로에서 청정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들이 경주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그의 희망이라고 한다. 또한 책에서는 미국이 유럽에 비하여 화석에너지에 집착하는 이유가 석유상의 압력과 로비에 <아마도 그들은 탄소배출 감축의 효과나 기후변화에 자기들은 선택 받은 나라라고 굳게 믿고 있는 탓인 것 같다.> (227~229p)미국에서보다는 유럽에서 많은 성과를 이룬 것으로 되어있다. 그 책은 마치 긴 사업계획서를 읽는 듯 하였다. 아주 확신에 찬…….

 

어쨌거나 그의 의견대로 서울에서의 구성을 그대로 그의 표현대로 Grid 화하여 경기도의 신도시로 연결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오히려 서울보다는 LH공사가 소유한 경기도의 택지가 사업을 하기에 더욱 끌리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이미 많은 개발이 이루어진 남쪽의 경우보다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한 경기 북부의 신도시 예정지에 그와 같은 도시를 건설한다면 좋을 것 같다.

가령 서울과 가까운 양주시의 경우 2~3군데의 예정지가 비어 있는데 그 곳은 청정 에너지를 사용하는 주거공간을 만들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곳은 사계절 내내 태양광을 받기 아주 좋은 지형이며 서울에서 나오는 부산물 에너지를 변화시켜 바이오 메스 에너지로 사용하기에도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춘 것 같다.

 

과거의 개발방식대로라면 무조건 용적률이나 건폐율, 그리고 분양 우선성을 따져 공장에서 찍어낸 콘크리트 월을 사용하여 똑 같은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이겠지만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조건을 갖춘 그 지역에는 새로운 방법으로 개발하고 싶다.

그래서 북쪽과 동쪽으로 산이 둘러 쌓여 남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그 지역은 늘 생각하고 있는 영국의 전원도시 Letchworth , Hertfordshire, England,와 같은 형태로 계획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양주 시는 지리적 위치가 경기 북부지역이라서 주거지역으로서는 기피하려는 의식이 있지만 그러하기에 기타지역과 동일한 방법으로 계획을 하지 않는 것이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재료를 갖게 된다고 하겠다.

원가의 30%를 차지하는 것이 적당한 토지 매입비용의 문제를 생각해도 경제적이라고 본다.

거기에 에너지 자급도시로 일정기간이 지나면 에너지를 인근 지역으로 팔 수도 있다니 커다란 이점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상상이니 저 토지 전체를 매입하기도 어렵고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양주시나 LH공사를 접촉한다 해도 누가 귀 기울여줄까마는 몇 군데 남지 않은 주 도심지역과의 기반시설 조건을 생각할 때 경기도의 남쪽에 병풍처럼 서있는 그런 건물들로 채우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있다.

 

높게, 많이, 꽉 차는 도시개발이 그 동안의 추세였다면 이제 앞으로 동양화에서의 여백의 미와 같은 여유로움을 갖춘 Healing City를 건설한다면 침묵의 공포와 불안이 덮고 있는 요즘의 주택시장 침체기를 벗어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을까?

 

책의 저자인 Jeremy Rifkin이 동양의 사상을 좀 더 많이 알았다면 그가 생각하는 경제와 3차산업혁명과의 관계에서 충분히 대치될만한 글이 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GDP를 재고하고 경제적 번영의 측정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 생산성에 대한 관점을 수정하는 것, 엔트로피 부채를 인식하고 자연의 흐름에 맞도록 생산과 소비 균형을 맞추는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것, 소유관계에 대한 개념을 재점검하는 것, 금융자본 대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재평가하는 것, 시장 대 네트워크의 경제적 가치를 재 측정 하는 것,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바꾸는 것, 지구 생물권의 작동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경제이론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325p

興一利不(흥일리불) 若除一害(약제일해)

이익을 주는 일 한 가지를 더 하는 것이 해를 주는 일 하나를 제거하는 것보다 낫다. 한 가지 일을 더 만들어내는 것이 나쁜 일 한 가지를 줄이는 것보다 낫다. 야율초재(耶律楚材)

 

책에서는 화석연료 사용의 정점이 이미 지났으며 이제 조만간 대체연료의 개발을 하지 않는다면 지구는 과거 45천만년동안 5번의 멸종에 1번을 추가하게 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설명을 들어 암울한 전망을 말하다가 판도라의 상자에 갇혀있는 희망을 구출하는 방법으로서 수소에너지의 활용, 그리고 자연이 주는 무한대의 에너지인 바람과 물, , 열을 이용한 청정도시의 건설을 구시대의 건물과 대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과학의 발전으로 산업이 진화해나간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말한다. 나는 그 말이 인류의 발전이나 청정연료의 사용으로 자연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던 어떻게 하던 살아있는 지구는 이제 새로운 변화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난제는 만약 지능형 기술과 로봇, 자동화의 적용으로 생산성이 증가하여 계속해서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밀려나 한계 고용이나 실업상태가 된다면, 구매력이 감소해서 더 이상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스마트 기술이 계속해서 노동자를 대체하면 수입 없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렇게 되면 생산된 제품이나 서비스는 누가 산단 말인가? 376p

이게 자본주의의 종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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