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탄생 -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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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은 눈에 보이는 사물에 개념이 없을 때, 귀나 다른 감각기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없으면서도 뭔가 뇌리에 스쳐가는 것이 감각을 깨울 때, 자신만의 정신적인 이미지와 감각과 개념을 형성하는 의지의 표현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상상력이니까 그야말로 상상으로의 여러 가지 다른 정의를 내리는 것도 각자의 느낌대로 재미있겠다.

성경의 창세기 2장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라고 했는데 아담이 세상의 모든 창조물에 이름을 붙이는 능력이 상상력이었다라고 한다면. 인간에게 원죄란 상상력이 나태해진 대가로 잉태한 악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

창조자의 세상에 갇혀있던 그는 무료함과 나태함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으므로 자신을 창조한 신의 세상에 대한 무료함의 결과로 다른 세상으로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에 창조주의 세상에서 쫓겨났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인간이란 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신만의 세상을 들켜버린 한정된 관점에 가두려는 틀 속의 창조물이었을 뿐이므로 신이 그를 버린 것은 인간에 대한 두려움(3: 22)때문이 아닐까? 그 후 인간이 원죄라는 틀에 갇힌 것은 인간이 신의 비겁함에 자신을 공포감으로부터 보호하려는 Facade로 악()을 이용했을 뿐, 인간의 온 정신과 마음에 선()을 담아 오로지 창조물로서의 인간 본연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또한 고액(苦厄)이란 것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욕망의 보상이 아니라 차안(此岸)에 대한 선한 상상력으로 인하여 피안(彼岸)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상상력이란 인간의 무료함과 나태함에서 비롯된 산물이 아닐까 한다.

악은 현실적이고 선은 몽상적이다. 악은 눈앞의 절벽이고 선은 구름에 싸인 산봉우리이다.

비록 인간의 시점이 한쪽으로 향한 인간의 특성으로 그랬을는지는 몰라도 상상력은 인간을 고액과 원죄라는 칼을 벗겨낼 수 있는 Flaming Sword이다.

 

간밤 꿈에는 낯 모르는 사람과 구름 위에서 뭔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산 아래로 올라가는 Escher의 길도 만들고 나 자신을 내려다 보기도 하며 아니다 싶으면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하는(호접지몽(胡蝶之夢)) 선어(禪語)는 그야말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다.

 

머리 속 뇌의 시냅스가 스스로 연결해 놓는 암호일 뿐이다. 자신이 연결해 놓는 뉴런의 암호를 스스로 해석하지 못하는 꿈은 Blind에게 어떤 모양일까? Deaf에게 Led ZeppelinStairway to Heaven?

헬렌 켈러는 자사전에서 나는 관찰한다. 나는 상상한다.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인상과 경험, 개념을 결합한다. 이 가공의 재료를 가지고 내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내가 표면과 떨림과 맛과 냄새들의 특질에서 이끌어낸 유사성은 보고 듣고 만져서 찾아낸 유사성과 같은 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견디게 했고 눈과 손 사이에 놓인 간극에 다리를 놓아 주었다.”라고 했다. 그리고 차단된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는 것은 유추적인 상상력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다.” “우리를 구속하거나 자유롭게 하는 것은 감각이 아니라 유추를 통해 미지의 것들을 조명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임을 알게 된다. 학습은 유추에 의존한다.”(생각의 탄생; 에코의서재 p196~p197)

 

결국 어느 경우에도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의 개념으로 이미지화한다는 것 같다.

자신만의 상상.

굳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탓으로 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모두가 현자이거나 성자가 아니니 중용(中庸)君子(군자)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부도)恐懼乎其所不聞(공구호기소불문)“군자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더욱 경계하고 신중하며, 남들에게 들리지 않는 것을 더욱 두려워한다는 내용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인간이 그렇게 자신만의 상상을 바탕으로 세상을 접하려 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유전자가 진화의 방법을 도킨스의 주장대로 원시 스프에서 자기복제를 통하여 결합을 하는 과정을 거치지(사회성을 갖추지 않았다면)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문명은 이룰 수 있었을까?

좋은 자기 복제자가 되기 위한 더욱 세련된 방법이 서서히 발견되어 간다. 자기 복제자는 자기 고유의 성질 때문이 아니라 세계에 대하여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 덕분에 살아 남는다. 이 결과는 매우 간접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필요한 것은 그 결과가 그저 얼마나 비비꼬이고 간접적이든 간에 피드백하여, 최종적으로 자기 복제자가 자기를 복제할 때의 성공률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414p

 

동물은 스스로 자기 운명을 안다라는 주장처럼 그렇게 혼자이지 않은 것이 좋다라는 상상을 할 수 있었기에 인간 이하 모든 종의 화합이 지구의 표면을 덮고 아담은 그의 몫을 멋지게 이루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만의 상상으로 세상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유추하고 감정 이입하여 통합 할 수 있는 자기 복제의 모방의 결합이거나, 인간의 유전자가 이기적인가 또는 이기적인 것이 결국 이타적 행위로 나타난다는 것도 인간본연의 수오지심(羞惡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상상으로 세상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인간애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람은 사회적이라는 보호막일지 감옥일지 모르는 틀 안으로 자신을 가두었다.

하지만 상상. 세상과 무한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그 상상력은 그 어느 것으로도 가둘 수 없다.

 

그러한 상상력.

상상력이 만들어 온 지금의 세상.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 상상력은?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날카롭지만 현명한 고집스런 칼날을 넘겨준 신학자들에게 상상력은?

신학자들과 종교인들에게 감추어진 이미지를 증명하려는 과학자들에게 상상력은?

그런 여러 상상력 중에서도 어느 것이 가장 인간에게 발전적인 결과를 준 것이라고 선별할 수 있을까? 서열을 따지는 생활 속에 익숙해서 여럿이 모이면 줄서기부터 시키는 이 몹쓸 습관.

자신만이 최고라는 자존 감을 넘어선 자만심이 문제가 안 된다면 인간을 해부학적으로 연구하여 모델 없이 그림을 그려낸 예술가들. 그 인간이 행하는 육체적 능력을 벗어나려고 연구하는 과학자들, 과학이 인본적인 한계를 넘어섰다고 생각될 때 스스로 제약하고 나서는 종교적인 상상력. 그런 종교적인 상상력을 편협한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에 제동을 거는 인문학. 그런 것들이 세상을 만들어오고 있다.

그렇게 상상력은 세상을 이념으로 갈라 놓기도 하였고, 상상력을 통하여 가상의 공간을 넘어 현실에서 하나가 되기도 한다.

상상력은 때로 서로에게 칼이 되기도 하고 꿈을 실어 나르는 양탄자가 되기도 한다.

상상력은 기를 흔들기도 하고 바람이 불기도 하며 그것이 아니라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라고도 하고 상상력을 깨우고 끊기 위하여 애꿎은 고양이를 죽이기도 한다. 

그런 상상력이 거추장스러워서 푸른 호수의 상현달(水月音觀)은 수면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 가부좌를 틀고 상상력을 끊어버린 것일까?

나 또한 어디론가 숨고 싶다.

상상력으로 넘쳐나는 세상은 자신만의 상상력이 세상을 위하는 유일한 능력이라고 우겨대는 통에 원형(圓形)을 유지하기 힘들다. 인간을 사회적이라고 묶은 것은 인간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고 인간의 상상력에게는 있으나마나 한 경계의 선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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