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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지음 / 경북대학교출판부 / 2012년 9월
평점 :
요즘의 부동산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면 거의 다 과거에
비하여 침울한 내용들이 많다.
한때 무슨
무슨 조치하며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금방이라도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것처럼 풍선을 띄우던 기사들도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내려졌으며, 그런 기사들을 다룬 패턴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이제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처럼 반응하는 것 같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기사나 정책의 방향이 본질을 다루지 않고 감정적인 바람만 일으키려는 것 같아 진심을
얻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닐까 한다.
가령 정책을
만들어서 공표할 때 시장의 반응이 정책담당자의 수고를 알아주는 형태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입안자도 알기에 미리 언론에 자극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결과는 정책도 기사도 이미 힘이 빠져버려 눈길을 끌지 못하는…… 구체적인 케이스를 알 수는 없으나 기사들의 문장내용을 보면 사실을(물론
기사의 성격상 사실을 다룰 수 없는 미래의 내용이므로.)다루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부분이나 어느 한
부분에는 희망을 담은 문장이 보이고 그것조차도 힘이 있어 보이지 않는…… 문장을 그림으로 본다면 그런
이미지로 형상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 생각에는
업자들의 표현대로 해먹을 만한 곳 이미 다 해먹었고 부동산의 판매 방법 또한 거의 다 써먹어서 획기적으로 눈길을 끌만한 재료가 없기 때문에 과거의
흥행을 다시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데에 공감하는 편이다.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 그것을 쪼갠 깡통주택이니 뭐니 하는 것도 이벤트화 할 정도의 끈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이미 그 소재가 상해버렸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끝을 알 수 업도록 자율화를 하지 못하게 계속 막는다면 무슨 조치를 내놓아도 이미 손님의 호기심을 끌지 못하는 상태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정부가 부동산의 놀음으로 흥청망청하도록 놓아둔다는 말인가? 요즘처럼
부의 분배와 평등. 복지 등을 따지는 세대에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잠시라도 정부가 쥐고 있는 목줄을 놓아준다면 부동산이란 언젠가 뉴스에 나온 구속에서 풀린 강아지처럼 시민을 물어버리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리
이 업으로 먹고 살았다고 해도 이처럼 끝을 모르고 오르려고 하는 본능을 가진 괴물은 더 이상 놔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포커 판이나 노름판에 가보면 돈이 있는 사람이 최후에 남게 되어있는데 마찬가지로 돈 가진 사람들의 배팅에 놀아나다가
결국에는 꽁지 돈도 못 쓰는 신세로 내몰릴 가능성이 백 프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택의
가격이 평당 5천만원가까이 오르게 되면 그것을 살 사람은 누가 될까?
그것을
팔고 사게 하는 사람들이야 뭔가 고물이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선동하겠지만 그들의 Lotto게임에
결국 누군가 당하게 될 것인데 저마다 나는 아니겠지 라고 대드는 곳이 그 투전 판인 것이다. 그 바벨탑
쌓기(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므로) 같은 게임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주택가격이나
전세 값 상승이나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한정된 토지에 있다고 본다.
그 토지는
바이러스처럼 잠복하고 있다가 부동산경기라는 겉껍데기가 활성화되면 같이 활성화되어 온 시장을 잡아먹는다. 그
바이러스를 잡지 못하면 육체는 병들게 되어 있는 것처럼 토지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해결하지 않고서는 부동산가격의 안정이나 서민의 내 집 마련(자력으로...)은 율도 국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얼마 전에 읽은.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 책의 어느 주석에 실린 참고
내용을 보고 알게 된 책이 나의 이런 생각을 자세히 담고 있는 것 같아 읽게 되었다.
책은 130여년전인 1879년에
처음 발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이 내용의 어느 부분은 지금의 우리 상황과 많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책의 문장은 잔소리 많은 그러나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닌 수가를 늘어 놓는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내용에 있어서는 모든 조세를 토지에 관한 것으로 일원화하면 부의
분배와 평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면 그럴듯하고 일면 수긍이 안 간다.
지금의 세금제도를 보면 이 학자가 주장한 부분이 반영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는 이 사람의
주장대로 실현하고자 해도 나쁠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우리의 업자들은 그런 과정에서도 웃돈 얹어 팔기 등의 과거의 화려한 수법을 다시 꺼내 휘두르는 기가 막힌
리베이트 수완으로 망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면 이렇다.
노동이 투입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반드시 토지가 존재해야 하고 자본이 생산되려면 노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본은 노동의 결과이고, 노동의 생산을 돕기 위해 노동에 의해 사용된다. 노동은 적극적이고 원초적인 힘이며 따라서 노동자는 자본의 사용자가 된다. 노동은
토지가 있어야만 실행될 수 있고 노동에 의해 부로 전환되는 물자는 토지로부터 나온다. 토지는 노동의
선행조건이며 노동의 장소이고 노동에 필요한 원료이다. 세 요소의 자연스러운 순서는 토지. 노동. 자본의 순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논의도 자본에서가 아니라 토지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제7장 부의 분배)
부의 분배가 불평등한 큰 원인은 토지소유의 불평등이다. 토지소유는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는 지적. 도덕적
상황을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기본이 되는 요인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이다. –중략- 물질적인 진보는 인간의 토지에 대한 의존관계를 없애지 않으면
오히려 토지로부터 부를 생산하는 힘을 보태줄 뿐이다. 따라서 토지가 독점되면 물질적 진보가 극도로 이루어지더라도
임금이 오르지 않고 노동밖에 가진 것이 없는 계층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다. 이때 물질적 진보는 토지가치를
올리고 토지소유자의 힘을 강하게 해줄 뿐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토지소유는 귀족층의 근거이자 거대한 재산의 기초이며 권력의 원천이다. – 제14장 부의 증대 속에 존재하는 빈곤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사유토지의 몰수도 매수도 아니다. 매수는 정의롭지
못한 방법이고 몰수는 지나친 방법이다. 현재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대로 토지를 가지게 한다. 각자 소유하는 토지를 지금처럼 자기 땅이라고 불러도 좋다. 토지매매도
허용하고 증여, 상속도 하도록 한다. 토지를 몰수할 필요는
없고 단지 지대만 징수하면 된다. (제16장 수수께끼는 풀리다-최초의 위대한 개혁)
정부가 전국의 토지를 시장가격으로 매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생각(토지
사유제도를 철폐하면 토지소유자에게 완전한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정부는 영국령 서인도제도의
노예제도를 철폐할 때 이런 생각에서 노예 소유자에게 이천만 파운드를 보상해 준 적이 있다.)에서 나온
것이다. 존 스튜아트 밀(John Stuart Mill)도
토지사유제의 본질적 부당성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이런 생각에서 토지의 완전 환수가 아니라 미래에 추가로 발생하는 이익을 환수하자고 주장했다. 밀은 영국의 모든 토지를 시장가격에 따라 공정하게 내지 후하게 평가하고 그 이후에 소유자의 개량에 의하지 않고
증가하는 가치를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제21장
토지소유자에 대한 보상문제)
국민에 의한 정부가 최악의 전제정부로 타락하는 것은 부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인데
이는 결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이 현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우리의 눈앞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투표권을 분별없이 행사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워졌으며 개혁을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정치적인 견해차는 이제 근본 원칙의
차이가 아니게 되었으며 추상적인 사상은 힘을 잃고 말았다. 정당은 과두적 내지 독재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것이 모두 정치적 쇠퇴의 증거이다.
(제25장 현대문명의 쇠퇴)
130년전의 이야기이니 현대사화랑,
특히 우리나라의 여러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르겠고, 이 방법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부동산 가격을 현실화하여 누구나 자기 경제적 여력에 맞추어 집을 갖고 집이나 건물, 토지를 이용하여
부를 늘리는 불로소득자가 양산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경험으로 봐서 70년대이후부터 30년이상 지속되어오는, 검은 리베이트를 남발하며 각종 인연을 바탕으로
남의 돈을 빼앗고자 하는, 한탕주의는 이대로라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인본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교육으로 사회에서 또는 학교나 가정에서 부에 대한 올바른 경제의식을
장기간에 걸쳐서라도 심어준다면 자연스레 안정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지금처럼 일등이 최고이며 뒤쳐지는 인간은 자연 속 야생의 무리에서 소외되어 굶주려 죽어가는 동물과 같다라고 가르친다면 부동산의
괴물은 정말 바이러스처럼 다시 퍼져나갈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 본다면 그렇게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이 되는 것이 먹고 사는데 지장 없겠으나,
그것이 비록 현행법을 지키고 남을 해하는 짓은 아니라 해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정치상황과 경제적 독점을 볼 때, 망상이겠지만 떠오르는 상상은
헨리 조지가 14장에서 주장한대로 귀족사회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득권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은가? 조금이라도 분배니 평등을 입밖에
내는 사람을 북의 추종자로 몰 수 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통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나쁜 일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통일은 되야 한다고 본다. 그것도 조만간, 가급적 빠른 시기에……
왜냐하면 그래야 그 동네 가서 여기서 못해본, 예전 네덜란드 여행에서
보았던 건물.(암스테르담 역 근처에 있던 공공청사로 매춘이 가능했던 건물)과 같은 공공개발사업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