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체험판)
크리스 임피 지음, 박병철 옮김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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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주 어렸을 적의 기억을 망각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경우 어느 정도의 과거까지를 기억해낼 수 있을까? 간혹 3~4살 정도의 기억이라고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은 있지만

그 내용의 진위여부를 알 수 없으니 정말로 기억하는 것인지, 본인의 상상인지, 스스로 편집한 각색 물인지는 모를 일이다.기억의 양에만 한정을 두지 않고 질적인 면에서도 단편적인 기억이 아니라 구체적이면서도 광범위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면 견딜 수 있을까?

 

나의 경우에는 책을 2~3페이지만 넘겨도 아니 한 쪽에서 아랫부분을 읽을 때 윗부분의 구절이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의 기억력이고,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기억력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몇 십 페이지만 읽으면 머리가 아파 현기증이 나는데 뇌의 기능이 이제껏 읽은 책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며(내용의 이해와는 별개로) 망각이라는 기능이 없이 자신의 주변을 스쳐간 사람들과 풍경 그리고 사건들 모두를 기억하고 있다면 신체의 다른 부분이 버틸 수 있을까?

(이후 인터넷 기사에 뜬 과잉기억증에 대한 기사)

 

영화 리미트리스(Limitless,2012.7)비밀리에 개발된 신약으로 인간 뇌의 기능을 순식간에 증가시켜 무능한 작가지망생이었던 주인공을 상위 0.1%의 슈퍼맨으로 변하게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다.

인간의 뇌가 20%정도만 사용된다는 점을 동기로 삼아 100%의 기능을 발휘하게 만들어 주는 신약을 개발한 제약회사. 그러나 임상실험의 허가가 나지 않아 비밀리에 마약을 유통하는 방법으로 인간에게 임상실험을 하다가 주인공에게 그 약이 건네지고, 그 약을 먹은 주인공은 한번 보는 것만으로 모든 언어나 학습과정을 통달하게 되어 사채업자에게 빌린 천 만원으로 27억을 만드는 기가 막힌 능력을 보여준다.

 

글 쓰는 능력도 3~4시간 만에 몇 백 쪽의 재미있는 책을 출판사에 넘기고……

 

영화는 그런 과정에서도 복용을 자제함으로써 인생역전을 하는 주인공과 약을 남용하여 죽음에 이르는 경쟁자,

그리고 사채업자에서 무기수출업자로 한몫 챙기려는 양아치등을 통해 욕망을 조절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짐을 말한다.

 

그런데 그런 신약을 다룬 주제가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하기에는 과학의 발전은 이미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10년 정도면 인류에게 불치의 질병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유전공학이 인본주의적이든 종교적이든 통제력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에 나오는’시저(Caesar)’같은 유인원이 동물원에서 자신의 동료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와 같지 않은 우리의 뇌는 무언가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한번에 입력된 정보량 중 7±2바이트만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컴퓨터에 비하면 형편 없는 처리능력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컴퓨터가 기억용량이 크다고 해서 사채업자에게 쫓기면서 큰손과의 약속을 이행하여야 하는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약을 중단해가며 적응능력을 키우며 중용을 지키는 판단을 하거나

상황을 반전시키거나 상대의 역습을 제지할 수 있는 결단력으로 누구나 알 수 있는 답과 다르게 실행할 수 있는,

즉 자기헌신이나 이타적인 희생을 할 수 없을 테니 기억의 양이 얼마나 큰가와 기억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 가는 다른 문제이다하지만 앞으로의 미래는 컴퓨터가 발전하여 자기 복제를 하는 ‘매트릭스 영화 같은 일이 조만간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주어진 과제를 처리하는 것을 넘어서 사건을 계획하고 만들어 내고 정리할 수 있으며

결과에 대하여 오류를 판단, 수정하는 과정까지 진화할까? 책에서는 가능한 일이고 외국의 어느 부류에서는 컴퓨터의 복합지능인 사이보그가 상용화되는 것을 넘어서 로봇에게 마음을 이식하는(영화 로스트 인 스페이스(Lost in Space, 1997), 그래서 그런 사이보그도 인간성을 가지고 있다(영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2012)고 인정하자는 모임도 있다고 한다. 하기야 지금도 성형중독 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머지않아 영화 ‘Face-off’처럼 얼굴을 바꿔버리는 기술을 턱을 돌려 깎는 기술처럼 상용화할 날이 가까웠을지도 모르니 인간의 장기를 모두 이식하는 날도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화재로 복원 건축을 한 숭례문은 조선시대의 그 숭례문인가?

 

테세우스의 배

 

테세우스와 아테네의 젊은이들이 탄 배는 서른 개의 노가 달려 있었고,

아테네인들에 의해 데메트리오스 팔레레우스의 시대까지 유지 보수되었다.

부식된 헌 널빤지를 뜯어내고 튼튼한 새 목재를 덧대어 붙이기를 거듭하니,

이 배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라는 것들에 대한 논리학적 질문’의 살아있는 예가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배가 그대로 남았다고 여기고, 어떤 이들은 배가 다른 것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 플루타르코스

그런데 학자들은 여기에 덧붙인다. 워싱턴 대학의 마크 코헨은 테세우스가 항해를 떠날 때 모든 교체부품을 싣고 떠난 후, 배가 고장 날 때마다 교체를 하여 다시 항구로 돌아올 때는 배의 모든 부품을 교체하였다고 할 때는 어떤가? 또, 테세우스가 떠날 때 고철수집상이 그를 따라가면서 모든 부품을 교체할 때마다 그 부품을 수집하여 배를 조립하여 테세우스의 원래 배를 복원하였다면? 이런 식으로 인간의 부품을 과학의 발달로 생체화된 기계부품으로 하나하나 교체하여 뇌만 남아 있는 상태라면? humanity+ 라는 단체에서는 그래도 인간이라고 주장한단다.

"섣부른 생각 같지만,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인류가 21세기 중반에 마주치게 될 문제들을 이미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척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인간을 위해 훨씬 더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펼치는 운동은 결코 인간 중심적이지 않다.

이들의 목표는 인간을 비롯하여 인조인간과 미래형 인간,

그리고 모든 동물의 삶에 ‘웰빙’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미래란 ‘무엇’인가?

아니 미래는 과연 누구인가?

<제 8장 : 한줌의 재만 남다>

 

앞으로 먼 훗날, 죽는 것을 연장하는 인간들과 그들을 수발하는 사이보그들로 인하여 주거환경 공간이 좁아지는 바람에 지구의 환경을 벗어나고자 하는 여러 능력 등이 계발되어 화성에 식민지를 개발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내어 ‘R2D2’를 데리고 STARWARS에 나오는 별들을 관광하는 시절이 온다면 그 때 인간의 정신은 지금과 비교하여 어떤 변화가 생기게 될까?

 

‘리미트리스’와 같이 한 사람만의 특출한 재능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도 역사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기록을 남겼을까? 의식이 형성되는 시기를 지나서부터 모든 것을 기억한다고 해도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보려고 하는 것만 보는 맹점을 지닌 채 관점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호전적인 성질을 간직할까?  모든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테고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은 각자가 다를 것이니 기억의 양과 관련 없이 전쟁은 일어났을 것이다. 'StarWars'에서도 여전히 쌈질이고 'Avatar'에서도 여전히 파괴적인 것을 보면 미래에도 인간의 습성은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상태를 유지할까?

영화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변화들이 언제고 생겨날 일이라면 인간의 욕망을 영화에서만 있을 법한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생각 아닐까?

 

질병이 없는 세상. 죽음을 통제하고 싶은 욕망. 에너지의 전쟁에서 해방된 인류. 전쟁을 잃어버린 민족.

 

이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인본주의적인 희망은 과학자들에게 사명감을 주기도 하겠지만 사람이 어디 그런 사명감과 윤리 도덕으로만 존재할까! 리미트리스에서 향상된 뇌의 기능으로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보겠다고 하는 주인공이 있으면 그 기능으로 돈과 권력을 갖고 암흑가의 보스로 크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갱도 있는 것처럼

과학을 이용하여 부를 거머쥐고 싶은 목적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냉전시대의 핵무기가 지금 잠자고 있다고 해도 강대국에 끼고 싶어하는 어느 나라는 지금도 강력한 핵을 만들고자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SETI" 프로그램이 지구와 같은 행성을 찾아냈다는 소식을 듣기도 전에 인류는 되살아 군비경쟁으로 종말을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과학의 발전이 양날을 번뜩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어디에서건, 또 어떤 목적으로든 탄생된 신과학기술은 지금으로선 상상도 하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생명과 창조물과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아니면 그런 경계가 무의미하게 생각 될 미래를 향하고자 하는 것이 과학 기술의 본능이라면

오히려 첨단과학의 집합체인 우주개발로 집중력을 몰아주도록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이제 막 읽기를 마친 책은 천문학을 다룬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천문학 교수이면서 우주 생물학을 한다는 저자는 여러 방면의 학문을 다루면서 인간의 고민이 우주적 관점에서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기우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우주로 향하는 인간의 노력이 결국 인간의 생명을 궁극적으로 연장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주장하는 듯 하다.

 

책은 사람들이 어떤 사유를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지구는, 우주는 제 갈 길을 가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우주에 대한 시선도 지구의 환경에 대한 시선도 결국은 이 세계가 각 개인의 사고에 투영된 관념에 불과하다는 주관적 관념인 유아론(唯我論)적 사고일 뿐임을 생각하게 해준다.

  

서양과 동양의 사상적 출발점은 우주를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는가에 있는 것 같다.

 

“신의 마음속에는 존재 가능한 우주가 무수히 많았으나, 실제로 존재하는 우주는 단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신이 지금과 같은 우주를 선택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같은 책: 제12장 새로운 우주로>

 

그런데 과학자들은 그런 관점을 바꾸어 평가하는 것 같다.

 

 “우리는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우주만을 관측할 수 있다.” -브랜든 카터

“그것은 아주 간단한 역설이다. 우주는 매우 크고 오래되었지만 인간은 그에 비해 너무나 작고 아주 최근에 등장했다.

그런데 우주가 크고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여기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임을 잘 알고 있다.” -마이클 프레인

“우주가 생명체에게 알맞게 미세 조정되어 있다는 주장은

소시지가 핫도그용 빵에 들어가기 알맞도록 길고 가늘게 생겼다며 무릎을 치는 것과 같다” -스티븐 제이굴드

< 같은 책: 354p>

 

나는 앞으로 과학이 발전되어 사이보그인지 사람인지 구별이 힘들어질 정도로 변화된 세상에서 사는 상황이 오더라도 사람들의 사회는 Nomos를 잃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아무리 인간과 타 생물과의 이종교배가 이루어지고 로봇이 자기 복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사회는 스스로 통제할 것으로 본다.

물론 그 통제력도 진화 할 수는 있겠지만, 2~3천 년 전의 윤리와 도덕의 개념이 지금 시대에도 따라야 할 덕의 본질로서 여겨지는 것처럼 인간 스스로 타락의 행렬을 따르진 않을 것으로 희망한다.

 

“우리는 지금 이상한 꿈을 꾸고 있다.

기술이 미천한 상태에서 살았던 과거의 인간과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살게 될 미래의 인간 사이에서 짧은 과도기를 거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지구는 성능이 더욱 개선되고 뛰어난 경쟁력을 갖춘 생명체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간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생체 공학의 혜택을 받는 것은 물리적 외형뿐이기 때문이다.” 

 

<제 4장 진화의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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