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가 글을 사용하여 기록을 남긴지 수천 년!

그 동안 대중들에게 인정받아 널리 지금까지 읽혀지는 글들.  

그 글을 작성한 저자들.

지금도 후세에 남기고자 자신만의 주장을 담은 글을 쓰고 있을 사람들.  

그 저자들의 개인적인 역사의식과 정치성향, 문화적 가치관등은 각자 다 다르겠지만

어떤 분야에서 진실을 알리려고 글을 쓰는 목적은 모두 같을 것이다.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작품은

사실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제약이 없으니 형식상 아무런 거리낌이 없겠지만

경험적 진실을 다루거나 실험적 사실을 다루어야 하는 저술들은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상태에 따라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주장을 펼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글 한번 잘못 썼다가 인생 망쳐버린 사람들도 꽤 많으니 말이다.

 

일부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저작을 향하여 반박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기 위하여

대상저자와 직접 만나서 해결하지 않고 글로써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때도 역시 개인의 성향이 좌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수많은 글을 자기만의 색채로 남기다 보니

누구의 글을 따라 한다거나 인용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 다반사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자기만의 개성이 담긴 글을 써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겠다.

 

언젠가 어디선 듣거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누군가 논문을 쓰려하는데 논문의 성격이나 나중의 효과 등은 관계없이 새로운 주장이어야 하고,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학설을 인용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풍토가 싫어 학교를 떠나 다른 직업을 가지려 한다.”

확실히 조합되지 않은 누더기 기억이 있다.

예술, 특히 미술은 누군가가 이전에 이미 발표한 형태의 작품은

음악에서의 표절과 같이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듯한 풍토가 있다는……

그런 이유 때문일까?

그래서 특이한 기법과 표현이 주목을 받으며 진부함은 도태될 밖에 없다는 잔인함이 판친다는……

바람에 인상파니 입체파니 하는 신조어만 생겨나고……

세월이 진화해가는 인간에게 주는 어쩌면 당연한 조류일 것이다.

 

스트

                 

                  포스트모더니즘은 지난 20세기에 걸쳐 서구의 문화와 예술, 삶과 사고를 지배해 온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서 196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통일된 사조나 운동은 아니지만, 그 중심적 동기는 모더니즘을 통해 수립된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엄격한 구분, 예술 각 장르 간의 폐쇄성에 대한 반발이다. (네이버 지식사전)

 

그런 예술분야에서의 시대적 흐름이 문학과 과학에도 영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주장을 표현하는데

남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기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관련학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풍토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최대한 어렵게 하려는 것은

자신들이 하고자 했던 주장이 대중들에게는 정작 도움이 되지 않는 저들만의 잔치 아닐까?

더군다나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부분까지 자신의 생각을 옮기려는 도구로 사용하며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은 지적 허영심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저자의 지적 허영심으로 오만을 휘두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꼬집은 학자가 있다.

 

지적 사기(Fashionable Nonsense):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 했는가.

 

사기라고 표현한 것은 약간 과장된 것이라고 보여지므로

다른 단어로 대체한다면 사치나 허영 같은 단어가 어울릴 같다.

 

글의 저자인 ‘Alan Sokal Jean Bricmont” 물리학자로서

일부의 프랑스 철학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표현하는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과학과 수학을 인용하는 것에 학계에 경각심을 주고자

미국<<Social Text>>라는 학술지에 [경계의 침범: 양자중력의 변형 해석학을 위하여]라는 논문을 보냈다.” 한다. 그런데 논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헛소리로 일관하고있다고 한다.

 

그리고 <악마의 사도>에는 그런 식의 태도를 꼬집는 프로그램이 있음을 소개해준다.

 

사이트의 프로그램은 결함 없는 문법 원리들을 이용해 이전에 번도 보지 못했던 기막힌 포스트모던 담론을 당신 앞에 자발적으로 생성해 내놓을 (106p)”이란다.

그러면서 그곳에서 프로그램이 만들어 내놓은 논문의 부분을 인용한다. 아주 어려워 보이는 말들이 조합된……

그리고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논문이 하나씩 만들어 준다는……

 

그런 사이트가 논문을 작성하는 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현실 속에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자 하는 지식에 대한 주체 못할 욕구와

이해 못할 난해함이 지식의 정점이라고 착각하는 현실의 유혹이 결합하면

얼마나 많은 지식의 왜곡과 방향을 잃은 지식들이 난무하게 될까

 

                  다루는 문제 자체가 까다롭기 때문에 어려운 담론과 의도적으로 난해하게 꾸민 뒤에 공허하고 진부한 내용을 조심스럽게 숨기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담론은 천지차이다.(이것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만 국한된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 물리학과 수학에도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언어로 씌어진 논문이 수두룩하다.) 물론 눈앞에 보이는 어려움의 종류를 항상 척척 구별할 있는 것은 아니다.” -< 239 p 에필로그>

 

 

학자들이라고 다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잘하지는 않을 것이다.

헤겔을 말투가 어눌하였다 하고 쇼펜하우어는 달변이었다지만 (그래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아직도 서문에 멈춰서 있지만……)학교에서의 인기는 의외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들의 표현력과는 관계없이 이해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들에게도 파벌은 생겼지만 말이다.

아니면 정말로 지식이 많고 경험적 사실을 증명할 있는 학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 자신이 보유한 지식의 양만큼 풍부하지 못한 언어구사력으로 하여

글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서 우리가 무수히 많은 애매모호한 글들은 가지 유형으로 집약된다. 하나는 맞지만 뻔한 주장이고, 하나는 과격하지만 뻔히 틀린 주장이다. 많은 경우 모호성은 의도된 결과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실제로 지적 전투에서는 모호성을 앞세우는 것이 대단히 유리하다. 과격한 해석은 경험이 부족한 청중이나 독자를 사로잡는데 안성맞춤이다. 이런 해석의 허무맹랑함이 폭로된다 해도 저자는 오해 받았다는 주장으로 자신을 변호하면서 말썽의 소지가 없는 해석으로 언제든지 물러설 있다.” (245p. 에필로그)

 

특히 이런 애매모호함은 인간정신을 다룬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되면서도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읽혀지는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이 아닌

형이상학이나 종교 관련 고전들을 읽다 보면

말이 같고 뜻이랑 뜻이 같은 주장인듯하고,

그러다 보니 같은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비하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모호함은 직접 만나서 저자와 같은 의미임을 확인 받지 못한 채로

옮기는 이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기도 하는 같다.

그런 모호한 성격으로 해서 오해와 왜곡, 자의적 해석 등이 많은 곳은 종교가 아닐까 한다.

 

                  이것은 상당수의 종교 텍스트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라캉을 따르는 제자들은 텍스트를 우러러 받들면서 주해를 달았다. 그러니 우리 앞에 새로운 종교가 나타난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겠는가.” -< 61p 자크 라캉>

 

 

그러니 성현들은 자신의 말이 후세에 글로써 오류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아서

자신의 손으로 글을 남기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염화미소의 뜻을 마하가섭만이 알았다고 부처는 말했다지만

회의 대중들 속에서 또한 알아 들었노라라고 사람들이 없었다고 있을까?

그렇게 직접 모인 자리에서 말을 것도 해석여하에 따라 남종, 북종으로,

수많은 지파로 나누어진 것처럼 서로간의 이해가 다른데

책으로 쓰여진 것은 얼마나 다른 해석을 만들어낼까!

해석이 여러 가지로 달라서 이견이 발전되고 진보되어 나아가는 것이지만

오해와 오류로 역사가 바뀌기도 하니까 남에게 단순히 이야깃거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만도 하겠다.

 

 

                  하지만 사회 현실에 대해서 발언하기 위해서는 그럴 듯한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특히 주류의 견해와는 동떨어진 입바른 소리를 하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대체로, 지적으로 탄탄한 내실을 갖추고 있는 분야일수록 자격증보다는 알맹이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할 있을 것이다.(촘스키, 1979 : 6~7).” -<29p 서론>

 

책에서 지적당하는 학자들의 글을 읽어 본적이 없으므로,

논박에 대하여 옳은지 그른지, 한쪽의 편견에 의함인지도 없고,

너무 나라이야기 같은 전문분야의 지적이라

스스로 이해하려면 세상을 다시 살기 전에는 없을 것이나,

책을 알게 계기가

악마의 사도라는 (<악마의 사도> 95p 벌거벗겨진 포스트모더니즘: 대한 서평)이었는데

저자인 Richard Dawkins 서평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 봤자 장님 코끼리 만지는 (群盲評象(군맹평상)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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