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CBS 방송의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의 55%,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67%가 진화론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또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인의 3분의 1이 성경이 글자 그대로 진실이라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2005년 1월 25일자 <초점> 美 언론 `지적 설계론' 부상 경고)

 

왜 미국의 정치. 종교인들은 21세기가 되도록 신국(神國)이 되려는 꿈을 갖고 있을까?

다른 민족이 신국(神國)이 되려고 하는 것은 악의 축으로 표현하고, 인권과 테러방지라는 이유를 들어 수천 년이나 된 그들의 문화를 파괴하려고 전쟁을 일으키면서까지 말이다. 

             “이 사태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한결같이 무기감찰관 한스 블릭스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의 주의 깊은 분석을 무시한 결과로 발생했고, 육군참모총장 에릭 K. 신세키 같은 군 전문가들의 말을 무시함으로써 더욱 악화되었다. 43p (반 과학에 대처하는 과학자들의 자세 / / Leonard Susskind)”

 

다윈의 <종의 기원>이 1859년에 발표되기 근 100년 전인

1755년에 Jean Jacques Rousseau는 <인간불평등기원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루소는 책 1부에서 인간의 발전을 추적하면서

동물적인 해부 구조를 통해 탐구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비교해부학은 아직 그다지 발달되어 있지 않고 생물학자의 관찰은 너무나 불확실하므로,

 우리가 갖고 있는 종교적인 학설에 의지하지 않으며, 아울러 인간이 점차 손발을 새로운 용도에 적응시키고 새로운 음식을 먹게 됨에 따라 인간의 외적. 내적 구조에 일어났을 변화 또한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의 대부분을 통해 인간의 의식이 미개인에서 현대인으로 발달하는 동안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게 되고, 존재간의 계급이 발생하는지에 관한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주장하는데 그런 설명 중에

           인간은 동포의 괴로움을 보고 싶지 않다는 선천적인 감정에서 자기 행복에 대한 욕구를 완화하게 된다. (1부 80P)는 대목이 있다.

나에게 이 부분은 역사 속의 여러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 본성에 관한 탐구중의 한가지 이론으로 도덕성을 말하는 맹자(孟子)의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 중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생각나게 한다.

             “성서에 인가된 가나안에서의 대학살에서부터 오늘날 이슬람교도들의 자살폭탄 테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신이 인간에게 분명한 악행을 하라고 명한 예를 숱하게 볼 수 있다. 191p”

             “반면, 인간조건에 대한 진화론적 이해는 도덕 감각과 양립 불가능하기는커녕, 우리가 왜 도덕감각을 갖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자연선택은 친척과 교역 파트너들에 대한 도덕적 배려를, 단지 자기 이익을 위한 냉소적인 전략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신념으로서 선호할 수 있다. 수천 년에 걸친 도덕적 진보는 사람들이 타인의 삶에 자신을 투영하여 공감의 범위를 넓히도록 장려하는 상황들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도덕성은 진화한 도덕 감각의 분비물에 지나지 않는다기보다는, (이성의 상호교환성에 뿌리를 둔) 내재적인 논리를 갖고 있을 것이고, 도덕 감각은 그것과 맞물려 진화했다. - 200p (우리의 도덕감각 역시 진화한다. Steven Pinker)

 

루소는 다윈처럼 종의 해부학적 기원을 밝혀내지는 않았지만 해부학적, 신체 구조적, 진화에 따른 의식의 변화를 통하여 인간이 적어도 동물에서 진화했으며, 창조에 의하여 변화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거나, 설계에 의하여 진화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아니고, 인간의 의식 또한 외부환경에 반응하도록 되어 있으며 도덕적 본성은 선천적으로 작용하는 의식의 표현 방법 중에 하나임을 말하는 것 같다.    

인류 역사 속에서 철학과 심리학 분야의 많은 학자들이 밝히려 했던 의식은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철학적인 의미에서 존재에 앞선 의식이란 증명될 수 있는가?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심리학자들에게 의하여 증명되고 있지만 그것이 보편적으로 같은 의미를 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의식은 환영이라는 설명으로 둘러대면 안 된다는 것이 의식이 환영이 아니라고 가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물리적 세계에 있는 그 무엇도 의식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면,

의식은 물리적 세계의 뭔가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의식의 주체인 우리가 물리적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이 적용되지 않는 뭔가가

우리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경험한다고 인정하는 한,

의식은 딱 그만큼 마음속에 있는 뭔가에 대한 경험 으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의식은 다윈주의의 아킬레스건인가?. Nicholas Humphrey>

 

그런데 의식은 경험하지 않은 것을 만들어 낸다.

사람이 꿈을 꾸면서 보인다고 표현하는 그 형상의 의미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에 대한 해석.

 

해몽이라는 방법에 있어서,

꿈을 꾼 자와 해몽을 하려는 각자의 의식 발전 상태와 의식의 발달단계에서 얻게 된

언어의 의미와 외부 환경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서로 다른 만큼,

다양한 내용을 표현할 것이지만.

그래도 그 해석의 중심에는 인간의 보편적 경험의 한계에서 벗어난 이해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꿈은 무의식적인 표현을 무한한 개념으로 상상할 수는 있을지라도, 이해하는 방법에는 경험이상의 것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관점이라면 ‘Paley의 시계

그것이 시계라는 경험적 관점을 적용할 때 설계자라는 개념을 대입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황망한 사막이던 울창한 밀림이던 그런 곳에서 당시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뭔가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이 시계라는 환원 복잡한성질의 것임을 안다면

이미 그 관찰자는 환원을 생각한다는 의미이며

그것은 그 존재에 대한 개념이 이미 그 관찰자의 의식에 환영으로라도 존재한다는 것 아닐까?

현대에서 U.F.O와 같은 형상은 우리의 경험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해를 줄 수 는 없다.

그래서 빛의 반사다, 풍선과 같은 기구다. 외계에서 온 물체다. 지구의 바다에서 사는 또 다른 지구인의 이동 물체이다 와 같은 추측을 하는 것 아닐까?

무엇인지 모르는 물체가 환영으로라도 보였다고 해서 그 무엇을 만든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면

우리의 환영을 만드는 의식은 누가 설계한 것일까?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당장 증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종교적인 표상이 되어야 하는가?

             과학이 종교를 대신하지 못한다 해도, 과학은 종교가 개개인의 마음()과 각 사회(문화)에서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또 엄격한 물질적 견지에서 왜 종교적 믿음(지적 설계자들의 믿음을 포함하여)이 사라지지 않는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진화생물학에 기초를 둔 심리학의 한 분과인 인지과학의 최신 연구들은 종교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의식을, 일상적인 일들을 해내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한 여러 가지 인지. 감정 메커니즘들이 한 곳으로 모인 결과 생긴 부산물로 본다. 175p 종교적 믿음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Scott Atran)

 

그런데 시계론 에서는 한 사물에 대하여 현재라는 시간에 미래의 존재를 알 수 없이 복잡한 것이라는 전제하에,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정하고 그 존재를 신이라고 한다면 말의 순서를 바꿔놓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는데 거기에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떤 것의 원인을 검증 불가능한 초자연적 힘으로 돌리는 반증 불가능한 주장을 하게 되면 자연적 설명들을 계속 찾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우리는 항상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299p<펜실베이니아 중부 미국연방 지방법원 판결문 발췌>

 

             불가능하다고 할 만한 수준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우연을 배제한다면, 우리가 알기로 특정 불가능성을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과정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그것은 지적 설계와 자연선택이며, 후자만이 궁극적으로 설명으로 쓰일 수 있다. 자연선택은 지극히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여 특정 불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지적 설계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설계자 자신이 특정 불가능성 수준이 매우 높은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 그리고 지적 설계는 어떤 것에 대한 궁극적 설명도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기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138p (만약 지적 설계자가 외계인이라면/ Richard Dawkins)

 

그렇게 지적 설계라는 주장은 책의 내용들처럼 상호간의 토론과 검증을 통한 일단의 결론이 없는 주장을 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창조론이라는 주장도 ()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이론(異論)을 수용하지 않는 일단의 주장을

자아의식이 확립되지 않은 미성년들을 대상으로 이런 이론도 있으니 비교 토론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학 과정에 개입시키려 한다는 것은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오만이 American Proud라는 자만에 가려져 신()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이 현대라는 개념을 대입시킬 수 있는 가장 오래되는 국가라는 것과

세계전쟁의 승리와 자본주의의 승리를 누리고 있는 중이라는 점 때문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의식이 유일한 세계인의 종교관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런 사람들은 미국이 지금껏 해온 과학의 성과를 바래게 하는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지금 이 시대에는

인류가 수 천년, 아니 수천만 년 전부터 이루어 온 과학적 결과물에 의존하여 살아 왔고,

전쟁에 승리하였으면서도, 그런 수천만 년의 경험이 증명해온 경험을 무시하는 행위를 하려는 것일까?

그들의 종교적 교과서에 쓰여있는 주장에 대한 의문도 아직 증명해 보인 적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말이다. 

 

          

지적 설계를 옹호하는 사람이 적절한 실험이나 계산에 의해,

생물학적 시스템의 지적 설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자세하고 엄밀한 설명을 제공하는,

동료 검토를 거친 논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적 설계는 동료 검토를 요구하는 학술지에 논문을 싣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과학적 연구나 검증을 한적도 없다."

위 판결문 중에서

 

나의 의문은 책의 내용에 비하여 현저히 유치하기 그지 없는 의문일지라도 아직 사라지지 않는다.

창조설에 의하면

우리의 형상대로라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그 문자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면

지적 설계론의 입장으로는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형상은 입자를 말하는 것일까?

 

그래서 문자대로 이해하지 말고 그들의 말대로 성령의 힘으로 이해해야 한다면

부처가 보여준 염화미소를 이해하여 전법을 했다는 가섭(迦葉)의 미소와 뭐가 다를까?

가섭(迦葉)만이 참뜻을 알았던 것이라고 한다면 나머지 제자들의 이해는 몰이해인 것일까?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종파의 의견은 그들 나름대로의 설()로 자기들끼리 인정하던지 하면 그만 아닌가?

과학의 능력에 무임승차하여 지구상에서 신을 찾지 않고

외계에서 증명하려는 신흥종교단체와 같이 몰염치한 양심을 퍼뜨리려 하지 말고 말이다.

 

종교와 정치 어느 것이 먼저였을까?

루소의 가설에 의한 인간의 발달사를 생각한다면

정치가 먼저이고 종교가 나중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정에서의 불안감이

정치적 위안보다 종교의 위안으로서 해결된다고 권력자가 불안해 했을 때 협잡이 이루어 졌다고 본다.

서양사에서 종교로 자리잡은 배경은 동양에서의 수용과는 달리 자연스럽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이다.

                           

종교가 정치와 협잡한 것이 서양의 종교사라면

역사적으로 국가간의 전쟁으로 희생된 사상자의 수는

종교라기보다는 유, , 선이 민속문화적인 인습과 협잡한 동양보다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는 그 이기심이,

네가 들어가는 땅의 ~ 주상을 깨뜨리고라는 파괴 성에 대한 의문은 나중으로 돌리더라도

다른 신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그의 질투는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일까?

존재하지 않는 의식의 환영을 향한 질투인가?

만약 존재하지 않는 환영이 맞는다면 무엇이 두려워 환영을 깨뜨려야 하는 것일까?

과학적으로 논쟁을 거쳐 증명하지 않는 철학적인 질문을 하지 않고 그런 질문에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 책으로는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실은 그런 이유들이 이제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내게 시간은 아주 먼 언제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고,

그 끝과 시작을 알려 함은 내가 현재의 시간 위에 있어 뭔가를 지금 확인해야 하는 강박적 개념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려 함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저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설을 주입시키려 하고 우주의 개념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기에

신국이 되려 하는 이유는 시간에 대한 조급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들의 추앙하는 존재가 무엇이던 간에 인간의 의식밖에 존재함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

그들이 지금 확인하려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현존에 대한 불안감을 잊고 보상받고자 하는 이기심의 가면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신이 아닌 한

여러분은 그 안에 존재하는 것보다 더 큰 개념을 떠올리는 마음을 설계할 수 없다.

 

의식은 무한을 상상할 수 있지만 상상이 모두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시간의 의식대로

- 우주가 의식이 있다고 할 때 시간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는 가정으로라도 

놓아 두는 것이 내가 무위를 이해하는 것이라면

궁금해할 다름 마음은 없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만들어 놓은 결론에 빙빙 돌아가면서 가정을 진실화하려는 답답함은 없이 읽어 내려간 책이었다.

 

 책의 차례

1.      지적 설계는 왜 과학이론이 아닌가? - 제리 A. 코인

2.      반 과학에 대처하는 과학자들의 자세 - 레너드 서스킨드

3.      지적 설계논자들은 어떻게 대중을 속이는가? - 대니얼 데닛

4.      의식은 다윈주의의 아킬레스건인가? - 니콜라스 험프리

5.      나는 어떻게 인류의 진화 증거를 발견하는가? - 팀 D. 화이트

6.      물에서 뭍으로의 ‘위대한’ 이행 - 닐 슈빈

7.      만약 지적 설계자가 외계인이라면…… - 리처드 도킨스

8.      다윈은 어떻게 창조론자에서 진화론 자로 변신했는가? - 프랭크 J. 설로웨이

9.      종교적 믿음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 스콧 애트런

10.   우리의 도덕 감각 역시 진화한다 - 스티븐 핑커

11.   우주의 자연법칙도 진화의 결과다 - 리 스몰린

12.   지적 설계에 대한 강력한 반증 - 생물의 자기 조직화 - 스튜어트 A. 카우프만

13.   아무 도움 없이 생명을 진화시키는 우주 컴퓨터 - 세스 로이드

14.   논쟁의 뿌리 - 오해를 낳는 용어들 - 리사 랜들

15.   학교에서 지적 설계론을 가르친다면 어떻게 될까? - 마크 D. 하우저

16.   생태-진화 중심의 대안 교육을 고민하자 - 스콧 D. 샘슨

 

17.   부록_펜실베이니아 중부 미국 연방 지방법원 판결문 발췌

 

1836년에 출판된 어린이 과학책<자연철학에 대한 첫 수업>에 나와 있는 다음의 대화에는 과학적 질문과 종교적 질문이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다

             공을 공기 중으로 던지면 어떻게 되죠?

던진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무엇이 그 공을 움직이게 합니까?

내 팔의 힘입니다.

여러분이 이 힘을 만듭니까?

아닙니다. 신이 만들었습니다.”

-      263p (논쟁의 뿌리 오해를 낳는 용어들/ Lisa Randall)

 

 이 책의 글들은 남의 나라 일이지만

미국인이 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는 일부의 사람들이,

미국을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앞서는 것이 그 대상과의 동질성을 갖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그런 것들 모두가 어쩌면 노예근성 때문이라고 생각되는,

이 땅의 사람들이 지금 이 나라에서 꾸미고자 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라를 판 것만이 매국적 행위는 아닐 것이라는 한숨을 만든다.

한국 교과서에서 진화론 내용 삭제 논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