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길 - 미혹과 불안의 시대, 예수를 어떻게 따를 것인가
헨리 나우웬 지음, 가브리엘 언쇼 엮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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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길서평

 

나에게 성경 곁에 놓아두고 오래도록 음미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바로 헨리 나우웬의 저서들이다.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 하버드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장애인 공동체로 들어간 헨리 신부님. 이 지구상 어딘가에, 명문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장애인 공동체로 들어가 정신지체장애인들과 벗하며 살다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인의 관심은 집중되는데, 그의 행보는 겉으로 보이는 인간적인 선행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내밀한 고통의 흔적이 승화된 기록을 통해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살아있다.

그가 남긴집으로 돌아가는 길(The Road to Daybreak, 포이에마),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Life of The Beloved, IVP),영적 발돋움(The Three Movements of the Spiritual Life, 두란노),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 두란노) 등의 책을 집어 드는 순간, 그의 기록, 그에 관한 기록들은 나의 내면에 스며들어 위로와 치유의 선물로 현재화 된다. 책의 행간마다 녹아있는 부드러운 목소리, 그의 삶에서 내 영혼의 구세주 예수가 걸어 나온다.

불안한 시대를 사는 법이라는 주제 강연 아래 여섯 편의 세부 주제로 나뉜 사순절 강연록예수의 길은 때마침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잠식당해 불안한 때, 우리가 끝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이웃을 향한 긍휼을 실천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기에 더없이 소중하다.

여섯 편의 소주제 핵심어는 초대, 부름, 도전, 대가, 보상, 약속으로 다음과 같다.

 

CHAPTER 1. 초대 - “와서 보라

나의 길을 떠나 예수의 길에 들어서다

 

CHAPTER 2. 부름 - “나를 따르라

익숙한 두려움에서 일어나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다

 

CHAPTER 3. 도전 -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

충만히 사랑받고 자유로이 사랑하게 되다

 

CHAPTER 4. 대가 - “너희 십자가를 지라

답 없는 내 실상을 예수 십자가에 잇대다

 

CHAPTER 5. 보상 -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으리라

마음이 시린 날에도 생명의 하나님을 누리다

 

CHAPTER 6. 약속 -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와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살아 내다

 

여섯 개의 챕터에서 내게 가장 다가온 것은 원수에 대한 이야기. (3번째 챕터), 그리고 5,6번 챕터에 있는 기쁨과 죽음에 대한 말씀이다.

내 마음 속에도 원수가 있었다. 미숙한 진료와 실수로 노모를 중태에 빠뜨리고는 사과 한 마디 없이 중환자인 노모를 다른 병원으로 가게 했던 무지한 의사, 그리고 보험사의 뇌물에 미혹 당했는지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는 환자를 퇴원하게 만들었던 정형외과의를 저주하며 마음에서 지워내는 데 수 년이 걸렸다. 그때, 용서의 유익을 알고는 있었지만 감정과 이성은 내 뜻대로 분리되지 않았다. 돌아보건대, 용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차오르고서야 나는 매일 생각나던 증오의 감정을 조금씩 잊었고 의지적으로도 차츰 내려놓을 수 있었다.

헨리 나우웬은 성경 말씀이니 무턱대고 원수를 용서해야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심리학자답게 가해자를 용서하지 못했을 때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억울한 대가를 치러야하는 현실적 손해를 인지하게 한다. 말하자면, 증오의 굴레에서 산다는 것은 계속 자신의 내면을 원수의 지배 아래 두는 일이 된다. 원수의 지배에 사로잡혀 예수의 사랑과 인도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헨리 나우웬은 성경 말씀과 심리학에 기초를 둔 처방으로 독자가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크든 작든 용서의 문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문제일 것이다. 나라도 구제 못한다며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만 치부되었던 예전의 가난한 생활에 비하면 현대의 가정 경제는 정말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콩 한 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인정이 넘쳤던 옛날에 비해 현대의 가정은 더 많이 붕괴되고,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는 더욱 계산적이고 이기적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홀로 격리된 내 일상 속으로는 인간에 대한 긍휼, 진정한 사랑의 부재로 발생하는 인간관계의 삭막한 이야기들이 숱하게 들려오고, 나는 저마다의 가슴에 죄와 원수가 동시에 사는 것을 보곤 한다. 그로 인해 가장 아픈 것은 결국 자기 자신. 관계의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이 책의 용서챕터를 읽어주고 싶다.

 

또 한 챕터, 밑줄 그은 말씀들은 기쁨과 죽음에 대한 헨리 신부님의 해석들이다.

코로나로 전 세계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나는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일마저도 참으로 미안하게 느껴졌다. 서서히 물속으로 침잠해 죽어가는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만 했던 세월호의 고통이 고스란히 되살아나서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세월호 사건이 우리사회의 부실을 전 세계에 드러낸 수치였다면, 이번 코로나19는 전 세계 사람들이 죽음의 바다로 침몰하는 코로나호 사건이라고나 할까. 세계 각국 특히, 아름다운 음악과 유적과 낭만의 나라 이탈리아가 매일 수백,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내며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뉴스에 경악했다. 봄이 되면서 서서히 바이러스 종식의 기미는 보이고 있지만, 어쩌면 지난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진 소리 없는 전쟁이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 누구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이번 전쟁이 무사히 끝난다 해도 언제 출몰할지 모르는 또 다른 신종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대비해 이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해야 할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건으로, 사는 곳은 달라도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의 운명 공동체임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누군가의 안부를 챙기며 잘 살아있자고 파이팅을 외치는 일이 참으로 미안하게 여겨졌다. 이미 많은 이들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온 신종 바이러스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누군가는 아직도 철저하게 격리된 병동에서 외로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우리만 미안하게 살아있거나, 우리라도 겨우겨우 살아있거나, 그러자고 몰래(?) 결의하는 일이라니.

그런데 헨리 나우웬은 나의 이런 안타까운 심정을 위로해 준다. 헨리가 죽음을 통해 가리켜 보이는 것은 성령님의 임재였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편지를 쓰는 동안 우리 안에서 친밀함이 자라나듯, 이 세상에 부재한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이라는 걸 새삼 알게 했다. 보혜사 성령처럼 이 세상 삶을 마친 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 곁에 머물며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킨다는 말씀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 예수님처럼, 내 육신의 아버지처럼, 죽음의 이름으로 이 세상 삶을 마친 이들은 기실 죽지 않고 언제나 내 안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죽음은 우리가 이제야 막 익힌 사회적 거리 두기의 가장 심화단계가 아닐까. 비록 보이지 않는 사회적 거리를 두게 되었으나 마음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져 마침내 내밀한 영혼의 교감이 이뤄지는 죽음의 신비!

 

죽음으로 우리를 떠나간 이들은 마음속에 남아 계속 우리를 양육한다. 계속해서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 삶을 심화시킨다. 이는 위대한 신비다. 이 신비를 예수님이 가장 적나라하게 계시해 주셨다. --158

 

만일 코로나 이후에 우리 사회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죽음의 대가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우리 안에 바람직한 성장이 이뤄진다면 먼저 간 사람들이 일러주는 영혼의 속삭임에 대한 반응일 것이다. 죽음의 의미를 성찰하다보면 죽어서도 누군가의 내면에서 성장의 밑거름으로 움틀 수 있는 한 알의 밀알이 될 삶에 대한 의무가 마음을 조금은 무겁게 한다. 그래서 다시 앞장을 넘겨 헨리 나우웬이 가장 중요하게 일러준 말씀들을 살핀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21:18

헨리 나우웬은 이 말씀을 네가 정말 사랑 안에 있으면 스스로 택하지 않은 곳이라도 능히 남에게 이끌려 갈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곳에도 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풀어준다.

세상 논리라면 늙어서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느니라라고 나와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정반대인 네가 젊어서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나 늙어서는 원하지 않는 곳으로 이끌려 가리라.” 한다.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고 남이 데려가는 자리로 가는 삶의 선구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이었다는 것을 헨리 나우웬은 짚어 준다. ‘영적 삶은 점점 더 남에게 잘 이끌려 험지로 가는 삶이라는 말씀에 이어 예수의 십자가 삶, 베드로, 바울과 모든 제자에게 찾아온 고난의 삶을 펼쳐 보이면서 말이다.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라면 이것은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상처와 고통을 초월하기에 험지로 가는 삶은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부모가 아픈 자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아이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어떤 고통 속에서도 자녀의 곁에 남을 수 있는 힘을 얻듯이 우리가 사랑 안에 머물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참사랑 안에 있으면 우리의 시선은 상처에 머물지 않고 사랑의 대상에게 머문다는 것이다. , 헨리 나우웬은 이 세상에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을 때, 우리의 관심은 고난에 집중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고난을 이기는 위대한 힘은 그리스도의 사랑임을 설파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처음부터 어떤 대단한 결심을 하고 한 알의 밀알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를 따르다보니 두려움 없이 그 사랑 안에 머물게 되었고, 예수의 길을 따라간 한 발 한 발이 모여 거대한 영적 발자취를 일궈낸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감사함으로 현재의 고통을 경축하는 일이다. 코로나19가 가져다주는 현실적인 난관에 시선을 집중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그 고통을 경축하는 일의 사례를 나는 어제 주일 예배에서도 들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 이 지구상에서 잔혹하게 지속되어온 전쟁이 사라졌다고 한다. 인간의 덧없는 욕망이 만들어낸 끔찍한 전쟁, 그렇게 끝내라고 빌어도 듣지 않고 전쟁을 일삼던 자들이 총성을 멈추었다는 것이다. 고통을 경축하자니,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유명을 달리한 분들과 유가족을 생각하면 이런 말마저 언어도단이 될까 조심스럽다. 그러나 부활의 하나님, 죽음이 영생의 다른 이름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누군가가 먼저 들어선 새로운 삶의 방식에 경축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조금 더 일찍 영혼의 집에 다다랐을 뿐이고 이 땅의 우리는 아직도 영혼의 집을 찾아가는 길 위에 있다.

헨리 나우웬은 영혼의 집을 찾아가는 도상에서 맞닥뜨리는 인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문제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쁘게 살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북돋워 준다. 나에게 헨리 나우웬은 기쁨과 평화의 사도이다. 20200427.

 

 

 

-------------밑줄 긋기-----------------------

긍휼이란 주님만 우리와 함께 고난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분과 함께 고난당하도록 초대받았다는 뜻이다. --105



십자가를 지는 삶도 나를 따르는 제자도의 일부니 네 십자가를 나와 연결하라. 네 모든 짐을 하나님의 길과 연결하라. --108



예수님은 우리를 불러 강권하여 고통을 십자가 앞으로 가져요ㅘ 치유받게 하신다. 이것이 기도 생활이다. --108




영적 삶은 점점 더 남에게 잘 이끌려 험지로 가는 삶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고 남이 데려가는 자리로 가는 삶이다. 예수님께 그곳은 십자가였다. 베드로에게도 십자가였다. 바울과 모든 제자에게는 많은 고난이 있었다. 이는 성향이나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는 자학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 안에 머무는 삶이다. 철두철미하게 사랑 안에 있다 보니 원하지 않는 곳에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


사랑 안에 있으면 아무리 험한 곳으로 가도 고통이 사랑을 앞서지 못한다. 나는 고난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이 고난에 집중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114~116



당신이 말하는 모든 문제가 내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예수님을 따를 뿐이에요.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나 역시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 발 한 발 주님의 사랑의 인도함을 받아 왔을 뿐입니다. -116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순전히 그분을 사랑해서 따른다는 뜻이다. 우리는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117쪽



참으로 사랑 안에 있으면 우리의 눈길은 상처에 머물지 않고 사랑의 대상에게 머문다. --115



영적 삶은 점점 더 남에게 잘 이끌려 험지로 가는 삶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더라도 남이 데려가는 자리로 가는 삶이다. --115

기쁨이란 움직이지 않는 자리, 곧 죽음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꾸준한 운동이다. ……기쁨이란 정체된 곳에서 벗어나 생명을 향해 뛰어오르는 것이다. 기쁨은 늘 새로운 삶의 경험에 관한 것이다. --127



순종이란 온몸으로 듣는다는 것 ----134



"내 아버지는 결코 나를 혼자 두지 않으신다." 이것이 바로 기쁨의 닻이다. 기쁨의 닻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소통에 연결되어 있다.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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