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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센셜 시네마 - 영화 정전을 위하여
조너선 로젠봄 지음, 안건형.이두희 옮김 / 이모션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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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7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탈 애커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건 나에게 영화의 한 세기가 지고 있음을 선언하는 소식 같았다.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영화관을 떠나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건 미술이 자신의 영역을 잃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대한 징후들이 있었고, 한 영화사의 독점화가 가속되고 있는 2015년의 한국에서 내가 느낀 것은 영화가 영화관에서 "쫒겨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탈은 갤러리와 영화관을 자유롭게 오가던 첫 번째 영화감독 중 한 명이었다. (여담을 빌어 고백하건대, 상탈이 구조영화-structure movie-를 벗어나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있음을 알았을 때, 난 그녀를 맹렬히 비난했었다. 영화관을 떠난 작가가 어떻게 영화작가일 수 있겠냐는 어린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올 해 초에 상탈의 <노 홈 무비>를 보고, 다시 영화가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영화를 보고 슬펐다면, 단지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때를 이제 떠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하스미 시게히코가 『영화의 맨살』에서 거창하게 한 그 질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곧 이어, 영화는 왜 떠나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의 진화는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그 거대한 흐름의 입구에 서 있다고 느끼게 된 사람으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 전의 폐허를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폐허는 무너진 정전(canon)이다. 고다르는 이 무너진 정전 위에서 새로운 영화를 새웠고, 여전히 그 폐허 위에 서있는 소수의 명민하고 예민한 작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다르는 여전히 새로울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영화적"일 수 있다.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폐허야말로 영화의 고향이면서 영화가 있었던 곳이다.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는 미래없는 발명"이라고 말했을 때, 거기서 멜랑콜리가 느껴지는 것은 아주 단순히 거기에 멜랑콜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적 이미지의 탄생은 회화의 이미지를 훔치고 살해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영화는 지금껏 "집이 있던 적이 없다"(No Home). 히치콕의 <현기증>이 위대한 것은 영화의 그러한 떠돎의 상태를 명민히 포착했기 때문이다. 

로센봄은 그 폐허의 궁전을 만들고자 하는 자이다. 로젠봄이 "정전"(canon)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꺼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영화가 떠돌아 다니는 기체(氣體)이기 때문이다. 이 기체는 유연하지만, 또한 연약하여 "기체(氣滯)적 현상"을 일으키기 쉽다. 로센봄은 그 연약한 아름다움 앞에서, 고대인들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영화를 신화화시키고 경의로움을 재현하고자 한다. 이는 영화를 애정하는 자로서 굉장한 모험이며,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영화를 신화화시킨다는 것은, 그 위태로움에 자신 뿐만 아니라, 영화를 안고 뛰어내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necessary) 애호가로서의 길이며, 필연적인(necessary) 것이다. 나는 로센봄의 글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의 로센봄에 대한 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다. 다만, 별로 읽지도 않은 그의 글들에서 그런 것을 아주 조금 느꼈을 뿐이다. 

나의 예상이 맞다면, 그의 길이 맞을 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다만, 그 폐허에서 로센봄이 바라는대로 정전이 "문화적 야만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는 현재"를 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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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7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탈 애커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건 나에게 영화의 한 세기가 지고 있음을 선언하는 소식 같았다.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영화관을 떠나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건 미술이 자신의 영역을 잃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대한 징후들이 있었고, 한 영화사의 독점화가 가속되고 있는 2015년의 한국에서 내가 느낀 것은 영화가 영화관에서 "쫒겨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탈은 갤러리와 영화관을 자유롭게 오가던 첫 번째 영화감독 중 한 명이었다. (여담을 빌어 고백하건대, 상탈이 구조영화-structure movie-를 벗어나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있음을 알았을 때, 난 그녀를 맹렬히 비난했었다. 영화관을 떠난 작가가 어떻게 영화작가일 수 있겠냐는 어린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올 해 초에 상탈의 <노 홈 무비>를 보고, 다시 영화가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영화를 보고 슬펐다면, 단지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때를 이제 떠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하스미 시게히코가 『영화의 맨살』에서 거창하게 한 그 질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곧 이어, 영화는 왜 떠나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의 진화는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그 거대한 흐름의 입구에 서 있다고 느끼게 된 사람으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 전의 폐허를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폐허는 무너진 정전(canon)이다. 고다르는 이 무너진 정전 위에서 새로운 영화를 새웠고, 여전히 그 폐허 위에 서있는 소수의 명민하고 예민한 작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다르는 여전히 새로울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영화적"일 수 있다.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폐허야말로 영화의 고향이면서 영화가 있었던 곳이다.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는 미래없는 발명"이라고 말했을 때, 거기서 멜랑콜리가 느껴지는 것은 아주 단순히 거기에 멜랑콜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적 이미지의 탄생은 회화의 이미지를 훔치고 살해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영화는 지금껏 "집이 있던 적이 없다"(No Home). 히치콕의 <현기증>이 위대한 것은 영화의 그러한 떠돎의 상태를 명민히 포착했기 때문이다. 로센봄은 그 폐허의 궁전을 만들고자 하는 자이다. 로젠봄이 "정전"(canon)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꺼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영화가 떠돌아 다니는 기체(氣體)이기 때문이다. 이 기체는 유연하지만, 또한 연약하여 "기체(氣滯)적 현상"을 일으키기 쉽다. 로센봄은 그 연약한 아름다움 앞에서, 고대인들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영화를 신화화시키고 경의로움을 재현하고자 한다. 이는 영화를 애정하는 자로서 굉장한 모험이며,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영화를 신화화시킨다는 것은, 그 위태로움에 자신 뿐만 아니라, 영화를 안고 뛰어내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necessary) 애호가로서의 길이며, 필연적인(necessary) 것이다. 나는 로센봄의 글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의 로센봄에 대한 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다. 다만, 별로 읽지도 않은 그의 글들에서 그런 것을 아주 조금 느꼈을 뿐이다. 나의 예상이 맞다면, 그의 길이 맞을 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다만, 그 폐허에서 로센봄이 바라는대로 정전이 "문화적 야만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는 현재"를 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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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7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탈 애커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건 나에게 영화의 한 세기가 지고 있음을 선언하는 소식 같았다.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영화관을 떠나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건 미술이 자신의 영역을 잃고 있다는 것이기도 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에 대한 징후들이 있었고, 한 영화사의 독점화가 가속되고 있는 2015년의 한국에서 내가 느낀 것은 영화가 영화관에서 "쫒겨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탈은 갤러리와 영화관을 자유롭게 오가던 첫 번째 영화감독 중 한 명이었다. (여담을 빌어 고백하건대, 상탈이 구조영화-structure movie-를 벗어나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있음을 알았을 때, 난 그녀를 맹렬히 비난했었다. 영화관을 떠난 작가가 어떻게 영화작가일 수 있겠냐는 어린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올 해 초에 상탈의 <노 홈 무비>를 보고, 다시 영화가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영화를 보고 슬펐다면, 단지 내가 영화를 좋아하게 된 때를 이제 떠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하스미 시게히코가 『영화의 맨살』에서 거창하게 한 그 질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곧 이어, 영화는 왜 떠나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의 진화는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다. 그 거대한 흐름의 입구에 서 있다고 느끼게 된 사람으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 전의 폐허를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폐허는 무너진 정전(canon)이다. 고다르는 이 무너진 정전 위에서 새로운 영화를 새웠고, 여전히 그 폐허 위에 서있는 소수의 명민하고 예민한 작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다르는 여전히 새로울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영화적"일 수 있다.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폐허야말로 영화의 고향이면서 영화가 있었던 곳이다.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는 미래없는 발명"이라고 말했을 때, 거기서 멜랑콜리가 느껴지는 것은 아주 단순히 거기에 멜랑콜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적 이미지의 탄생은 회화의 이미지를 훔치고 살해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영화는 지금껏 "집이 있던 적이 없다"(No Home). 히치콕의 <현기증>이 위대한 것은 영화의 그러한 떠돎의 상태를 명민히 포착했기 때문이다.
 
로센봄은 그 폐허의 궁전을 만들고자 하는 자이다. 로젠봄이 "정전"(canon)이라는 오래된 개념을 꺼내야 겠다고 생각한 것은 영화가 떠돌아 다니는 기체(氣體)이기 때문이다. 이 기체는 유연하지만, 또한 연약하여 "기체(氣滯)적 현상"을 일으키기 쉽다. 로센봄은 그 연약한 아름다움 앞에서, 고대인들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영화를 신화화시키고 경의로움을 재현하고자 한다. 이는 영화를 애정하는 자로서 굉장한 모험이며,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영화를 신화화시킨다는 것은, 그 위태로움에 자신 뿐만 아니라, 영화를 안고 뛰어내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necessary) 애호가로서의 길이며, 필연적인(necessary) 것이다. 나는 로센봄의 글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나의 로센봄에 대한 이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도 모른다. 다만, 별로 읽지도 않은 그의 글들에서 그런 것을 아주 조금 느꼈을 뿐이다.
 
나의 예상이 맞다면, 그의 길이 맞을 지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다만, 그 폐허에서 로센봄이 바라는대로 정전이 "문화적 야만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는 현재"를 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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