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와 <사피엔스>로 잘 알려진 세계적 석학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내놓은 책. 이 책은 앞의 둘과 달리 미국의 한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곱 번의 강연을 기초로 꾸며진 책이다. 하지만 강의록이라고 하기엔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구체적이고 체계적이라서 마치 하나의 완성된 논문이나 연구서적을 읽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의 간결하고도 단조로운 문체, 쉽게 풀어낸 사례들은 엉켜있는 듯한 주제들을 하나하나 쉽게 풀어준다. 문화인류학자이자 역사학자, 조류학자, 그리고 생리학자인 그는 자연과학의 일반적인 통제적이고 엄격하며 조작된 실험을 대신해 사회과학의 자연실험 방법론을 이용하여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7가지 중대한 문제를 설명하고 이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내놓는다.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 ‘제도적 요인이 국가의 빈부에 미치는 영향’, ‘중국은 세계 1위가 될 수 있는가?’, ‘개인의 위기와 국가의 위기는 어떻게 다른가?’, ‘위험 평가: 전통사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건강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며 오래 사는 법’, ‘세계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이라고 하는 저자가 인식한 초국적적 문제들에 대하여 저자는 지리적 요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시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역사적 요인들을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차원으로 자연적 실험 방법론을 상호 적용하여 초점과 무게를 그에 걸맞게 바꿔나가 문제들을 집요하게 살핀다. 특히 그가 지적한 일곱 번째의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직면할 문제에 대해 세 가지 유형, 곧 지구의 기후변화와 국가 내/국가 간 불평등, 그리고 환경자원의 급속한 고갈과 파괴로 나누어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과 현상을 연결 지어 문제의 심각성을 역설하는 부분에서는 그의 어조가 다소 격해진 게 내게 인상 깊게 남았다.
책 말미의 Q n A에는 제러드라는 인물의 확신에 찬 희망이 내비쳐졌다. 마치 Q, 질문은 인간 종이 만들어낸 디스토피아적 현상에 대한 회의와 고민, 우려가 담겨 있다면 그에 대해 제러드는 인간 개별에 대한 희망, 회복에 대한 확신을 그의 지식, 가치관, 세계관과 함께 버무려 내놓은 듯했다. “물론입니다.”, “해결책은 간단합니다.”하고 첫 문장을 시원하게 던짐과 함께 이후에 내뱉어지는 그의 이야기에는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그의 통찰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지식의 지평이 넓고도 단단히 다져진 세계의 몇 안 되는 석학이 내놓은 오늘날 세계문제에 대한 진단서는 어렵고 복잡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어투에는 호기심이 섞여있어 나도 함께 호기심을 갖고 이 책을 살폈던 것 같다. 이 호기심은 그저 그의 주장에 대한 단적 차원에서 인류, 국가, 사회,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나’라는 개인적 차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럼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러드는 ‘나’라는 개인, 그 개인이 모여 이룬 공동체, 사회, 국가, 인류가 나뉘어져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그로부터 나와 내 주위를 분리시키지는 않았는가 싶다. 관심을 갖고 나와 주변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가 말하는 ‘혁명의 시작’이다. 그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나와 내 주변에서부터 할 수 있는 일, 변화가 가능해 보이는 일부터 모색해 본다. 나아가 변화가 확장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