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철학사 강의
존 롤스 지음, 바바라 허먼 엮음, 김은희 옮김 / 이학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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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을 신뢰할 수 없었던 흄에게 이 세상은 실재의 대상이 아니라 실재에 대한 사실들의 총합이었다. 따라서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구현하고자 했던 전통적인 미메시스의 방법은 무의미해진다. 오히려 인식을 가능케 하는 그 관념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그 관념은 믿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합리적 추론이라 여겼던 인과성 역시 실재가 아닌 관념일 뿐,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흄은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 ‘정념‘을 불러온다. 합리적 이성의 결과가 올바른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도덕적 행위로 이끄는 힘은 과연 무엇인지가 흄에게는 중요했다. 흄은 이러한 힘을 정념이라 칭하며, 이는 인간본성의 자연스러운 발로가 아닌 숙고에 의해 통제되는 ‘인위적 덕‘으로 규정한다.

칸트에게 도덕은 실천이성의 결과물이 아닌 정합성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롤즈는 말한다. 즉 도덕은 건축물의 이맛돌로 실천이성 구성에 자기충족적인 역할을 한다. 인간이 악을 저지는 것은 실천이성의 자기충족이 모순을 일으킨 것이지 실천이성 절차적 오류는 아니다. 그럼에도 칸트의 실천이성에 의구심이 드는 건, 인간의 이성이 과연 언제나 옳으냐하는 것이다. 흄이 합리적 이성이 올바른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 건, 그 이성을 구성하는 인과성이 여전히 모호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에서 발견되는 인과성을 제외하고는 사회 현상에서 불리는 인과성이라는 것이 실은 숱한 데이터의 축적물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흄은 반문한다.

칸트는 여전히 인간 ‘이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지닌 듯 보인다. 인간이 인간답게 만드는 건, 이성이 순수이성(사실, 앎의 영역)과 더불어 실천이성, 즉 실천적, 반성적이기에 가능하다. 여기서 실천은 행위라기보다는 숙고에 보다 가깝다. 그리고 그 숙고는 도덕이라는 이맛돌이 있어야지만 정합성을 획득할 수 있다.

흄, 칸트, 롤즈 모두 ‘도덕‘을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산물로 본다. 여기서 인위적이라는 것은 인간이 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숙고하고, 숙련해야 하는 행위에 가깝다. 도덕적 행위는 개인의 선한 마음에, 합리적 이성에 기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사유와 학습의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도덕‘이라는 관념은 그 당대 총체적 산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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