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일하고 싶은 농장을 만듭니다 - 장애가 있어도, 나이가 들어도 함께 일할 수 있는 스마트팜 케어팜 이야기
백경학 외 지음 / 부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두 한 번 지금 주변을 둘러보자. 무엇이 보이는가? 누군가는 나무가 보일 것이고, 누군가는 친구, 가족, 건물 등등 수많은 여러 것들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당신 주변에서 장애인을 볼 수 있는가? 아마 대다수가 본 적이 없다고 답할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간혹 한 번씩 마주칠 뿐, 거의 장애인을 마주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장애인이 없단 말인가? 결코 아니다. 사회와 단절된 채 살고 있기 때문에 마주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점점 초고령 사회가 되어가면서 노령 인구수도 증가하고 있다. 장애인이나 노인들은 정상적인 노동을 할 수 없는 취약 계층으로 사회에서 고립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이 질문에 해답을 찾기 위해 국내외 사회적 농업 현장과 그 속에서 더 나은 복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중요한 키워드 두 개가 나온다. 케어팜과 스마트팜이라는 단어다. 케어팜이란 사회적 돌봄을 뜻하는 '케어(Care)''농장(Farm)'을 합성한 것으로, 치매 노인이나 중증 장애인처럼 사회적 약자가 농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치유와 재활 서비스로 인정해 국가가 비용을 지불하는 새로운 유형의 복지 시스템이다. 스마트팜은 온실 농업에 IoT, AI 기술을 접목해 작물에 필요한 환경을 컴퓨터로 측정하고 통제하는 자동화 농장을 의미한다. 컴퓨터로 데이터를 축적하고 작물마다 최적의 환경을 정밀하게 제어하는 스마트팜은 노련한 농부의 감보다 더 정확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1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케어팜 사례를 소개한다. 유럽과 일본 등에서는 케어팜이 장애인이나 치매 노인을 위한 복지의 한 형태로 보편화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선 분야다. 이제 막 걸음마를 내딛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낯선 분야인 케어팜을 국내에 도입하고자 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푸르메 재단이다. 푸르메 재단은 크게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활 영역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어린이 재활병원을 건립한 푸르메 재단은 병원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많은 어린이가 재활 치료를 받으며 청소년으로, 청년으로 자람에 따라 새로운 과제를 생각하게 됐다. 바로 성인 장애인의 일자리와 돌봄 문제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의 다양한 장애인 일터를 탐방했고, 그 결과 푸르메 소셜팜이라는 답을 얻게 된다.

 

스마트팜은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개념이 아니다. 그나마 최근 언론에서 농업의 미래로 언급되면서 조금씩 알려졌을 뿐,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도 아직 낯선 분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르메재단은 장애인이 행복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고 여러 선진국들에서 시행하고 있는 케어팜 모델을 국내에 도입하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다양한 부처의 공무원과 씨름했고, 여러 지자체와 협의했다. 국내에선 한 번도 시행한 적 없는 새로운 일이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르메 재단 관계자들의 구슬땀 어린 노력으로 푸르메소셜팜이 여주시에서 출범한다는 기쁜 소식을 들려준다. 수도권에 마땅한 땅을 구하기 어려워 고전하던 찰나 여주시에서 우영농원을 운영해온 이상훈, 장춘수 부부가 토지 3600평을 기부한 덕분에 푸르메소셜팜이 출범될 수 있었다. 이 부부의 아들 또한 발달장애인으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고립된 발달 장애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며 땅을 기부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부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점점 이 사회가 팍팍해져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런 좋은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 같다.

 

일본과 유럽의 여러 케어팜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먼 나라 이웃 나라 일본의 사례가 눈에 띈다. 미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케어팜 쪽으로는 우리나라보다 앞서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장애인에 대한 복지와 농업이 결합된 '농복연계'로 유명한 농장인 시즈오카현에 위치한 교마루엔 농장과 급격한 노령화와 경쟁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의 새로운 대안 농업을 제시하고 있는 무몬 복지회, 토양이 없어도 얼마든지 농작물 재배가 가능한 식물 공장을 연구하고 있는 오사카 부립대학교의 식물공장연구센터 등 급격히 침체된 농촌 경제를 살릴 뿐만 아니라 장애인 고용을 확대함으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곳은 미에현 이가시에 모쿠모쿠 농장이다. 1987년에 작은 돼지 농장으로 처음 시작된 모쿠모쿠 농장은 일본에서 농업의 6차 산업화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 낸 사례로 꼽힌다. 토마토, 버섯, 채소류를 재배하는 것은 물론, 쌀이 유명한 지역답게 쌀농사도 짓고 있다. 농장에서 생산된 다양한 채소와 고기로 식당을 운영하고 포근한 시골집 같은 모쿠모쿠 방갈로에서 밤을 보낼 수도 있다. 이렇게 농업과 가공, 관광 프로그램과 숙박까지 모쿠모쿠의 서비스는 6차 산업을 설명하는 최적의 모델이다. 농장 한 곳에서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장애인들은 농업을 통해 돌봄을 받는 객체에서 돌봄을 주는 주체가 되어 자연 속에서 치유할 수 있고 지역 주민들은 농장을 함께 가꾸며 일자리를 얻을 수 있어 좋고, 농장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여러 체험들과 힐링을 얻을 수 있어 좋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더불어 가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에도 이곳을 벤치마킹해 만들어진 '상하농원'이 있다.

 

유럽은 케어팜 분야의 일인자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유럽인들에게 케어팜은 보편화된 복지 사업으로 장애인과 치매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함께 그들을 도우며 희망을 가꾸어 간다. 유럽은 일명 장애인 복지 천국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대체 우리나라와 무엇이 다르기에 이곳이 장애인 복지 천국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일까? 유럽의 여러 나라에 공통점은 장애인들을 무기력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자신보다 부족한 존재, 자신보다 떨어지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아예 사회에서 격리시킨다. 장애가 있다는 건 숨겨야 하는 것이고 남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한다. 장애를 감추고 숨기는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소외받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복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은 우리와는 다르다. 그들은 장애인들에게 알맞은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들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각자의 신체적 · 인지적 조건에 맞는 업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힘쓴다. 그들은 더 이상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다.

 

유럽의 여러 사례 중 인상 깊었던 곳은 바로 네덜란드의 토마토월드다. 네덜란드는 농업에 적합한 나라가 아니다. 기온은 연중 온난한 편이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땅은 소금을 가득 품어 척박하다. 국토 면적 또한 좁다. 토마토 재배에 최악의 조건을 가진 나라에서 토마토 재배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농업 환경이 열악한 우리나라가 롤 모델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비결은 바로 스마트팜 덕분이다. 첨단 스마트팜 기술로 토마토 재배에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면서 생산량이 점차 증가했고, 생산성이 안정되면서 시장이 커졌고 수요가 많아졌다. 이와 함께 생산에서 소매까지 체계적인 판매망을 갖추고 품질 관리와 마케팅 · 판매 전략을 일괄적으로 수립하는 시스템을 확립했다.

 

또한 네덜란드 농업의 중심축 중 하나는 환경 보존이다. 네덜란드 농가는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물을 아끼고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선한다. 토마토월드는 단순히 친환경으로 만든 토마토를 생산해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 아닌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작물을 키우고 자연의 순환 법칙에 따르며 함께 살아가는 미래의 농업을 준비하고 있다. 첨단 기술을 이용해 척박한 대지에서 토마토 재배 강국으로 발돋움한 네덜란드의 농업은 앞으로 바뀌게 될 미래 농업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여러 사례들이 말해주듯 농업은 이제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일손 부족으로 농촌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장애인이나 노인과 같은 취약 계층이 농사일을 하면서 치유 효과까지 얻는다면 큰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뿌리가 좀 꺾이거나 가지를 안 쳤다고 해서 쉽게 죽지 않는다. 다시 물을 주고 보살펴주면 열매 맺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케어팜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자리의 의미를 넘어서는 소중한 가치를 제공한다. 농업을 통해 돌봄을 주는 주체로 거듭나며 자존감이 상승하고 자신들도 사회의 도움을 준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가지게 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케어팜과 스마트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케어팜과 스마트팜 시스템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전에 앞서야 할 것은 우리들의 인식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들여와도 그에 걸맞은 사회적 인식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 것이다. 나 하나 잘 사는 세상보다는 나를 비롯한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이 더 좋지 않을까? 우리에겐 자연이라는 스승이 항상 존재한다. 자연은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다. 꽃은 꽃잎이 하나 떨어져도 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곳이 불편하다고 해서 사람이 아닌 게 아니다. 이제 우리들이 좋은 스승을 따라갈 차례다. 이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누군가는 소외받고 있기에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로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이 공유되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