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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 - 인류의 삶을 뒤바꾼 공진화의 힘
피터 J. 리처슨.로버트 보이드 지음, 김준홍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7월
평점 :
미리 밝히자면, 이 책은 쉽지 않다. 마치 논문을 여러 편 엮어둔 듯한 글의 전개는, 매우 논리적이지만 그 논리를 따라가기 위해 집중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p.52부터 적힌, 글에서 제시하는 주제들은 한 번쯤 의문을 가져봤을 내용이다.
1. 어떻게 문화와 유전자가 상호 작용하여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가?
2. 왜 인간은 특별나게 성공한 종인가?
3. 개인적인 작용과 제도적인 구조, 집단의 기능은 어떻게 연관되는가?
4. 문화적 다양성의 근원은 무엇인가?
5. 인간은 성공한 종임에도 불구하고, 왜 때때로 우리의 행동은 약간(때로는 매우) 비정상처럼 보이는가?
등등의 여러 질문을 제시하는데, 이러한 미해결 의문들을 풀어가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었다. 물론 모든 의문에 정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이 의문에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제시한다. 우리가 그 제시된 답에 동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 책이고, 그렇기에 굉장히 많은 예시와 숫자들을 동원한다. "사회과학"에 관해 마지막 장에서 잠시 언급되는데, 사회과학 분과는 분명 인문학, 과학의 모든 면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특이점은 '통계'다. 그만큼 이 책에서도 예시와 통계 분석이 많이 나와서 오히려 더 즐겁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에서는 문화와 진화에 관해 밝힌다. 이 분야를 읽으며 들었던 의문은 '정상적인 삶은 무엇인가?'이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여러 문화의 다양성은 적응/비적응으로 나눌 수 없는 기묘한 진화와 문화권의 공명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한 국가, 집단에서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정상성'을 파괴하며 그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관하여 가장 흥미로웠던 예시는 코만치족에 갔던 여성에 대한 것이다. 포로가 되어 갔던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p.86-87
1860년에 그녀는 텍사스의 삼림 경비관에 의해서 "구출되었고" 삼촌과 함께 살도록 송환되었다. 그녀는 여러 번 삼촌에게서 탈출하려고 했다. 비록 그녀는 다시 영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유럽식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코만치족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를 "구출"한 것은 두 번째 납치나 다름없었으며, 영국식 생활에 다시 적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다. 그녀는 함께 "구출되었던" 어린 딸이 죽자, 깊은 상심에 빠졌고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이 안타까운 일화는 "정상성"의 빈틈과 오만함을 보여준다. 한 노숙자에게서 개를 뺏으려던 동물인권운동가들의 오만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각 문화를 계급을 나누며, 비정상적인 문화권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오만한 태도들은 문화의 진화와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삶을 삶으로 바라봤다면 또 다른 생각을 하며, "구출되었다"는 말 외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위 사건 외에도, 여러 예시들과 의문들이 남는다. 최근 전 세계를 힘들게 만든 인구수의 감소라든가,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의 의문에 답해주기도 한다. 의외로 부모가 자식의 문화권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말이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부모가 큰 영향을 끼칠 때는 아주 어린 시절뿐이며, 다 자라서는 아이가 속한 집단이 큰 문화권의 영향을 미친다. 그것을 밝히는 점이 굉장히 재밌었다.
이렇게 이 책은 한 번쯤 살아가며 가졌을 유전자와 문화에 관하여 다양한 의문을 가지게 하고, 저자의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해결책에 동의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아닌 것 같다며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이 책은 성공적이며,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느꼈다. 책 p.215에서도 나오듯, '왜 - 아마도'식의 대답은 진화생물학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스스로를 왜라고 질문하여,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진화는 이루어지며, 그것을 적응/부적응의 가치판단에 두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디론가 나아가게 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읽기 전 읽어보면 좋을 책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나는 사놓고 읽진 않아서, 이 책을 읽으며 후회한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이고 다른 하나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이 두 권의 책은 <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에서 계속 언급되며, 책을 이해하는 것에도 좋을 듯하다. 비록 나는 두 권을 읽은 후에 읽진 못했지만, 이후에 두 권을 읽으며 이 책을 다시 이해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만약 저 두 권을 재밌게 읽었다면, <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 이 책이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통합하며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이다. 진화와 생물학, 사회 과학에 관심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