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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 숭배와 혐오, 우리 모두의 딜레마
클레어 데더러 지음, 노지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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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세상이 위주가 된 사회. 수많은 담론들이 오프라인에서 거론되는 시대는 끝났다. 대학의 대자보, 얼굴을 마주하고 진행하는 토론 등. 거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 순간 상대에게, 담론에게 한순간 몰입하게 되던 오프라인 토론. 인터넷이 보편화되며 우리에게는 허상의 공간이 남았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토론할 수 있게 되었으나, 과연 이것을 한 단계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괴물들>에서도 언급되지만, "캔슬 컬쳐"와 "불매"는 인터넷 세상의 담론이 익숙해지며, 자주 등장하게 된 단어들이다. 우리는 인터넷 속에서 수많은 담론을 마주하며, 빠르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겪는다. 그 선택은 아주 단순하다. 선하다, 악하다. 얘는 우리 편이다, 아니다. 얘는 잘못했다, 아니다. 이렇게 흑백논리로만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인터넷 속도 때문이다. 빠르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야 하기에, 하루에도 우리는 몇 번이고 선택하고, 버리고 취득함을 정해야만 한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딜레마를 마주한다. "내가 사랑한 문화(영화, 그림, 소설 등) 창작자가 비윤리적 행동을 했을 때, 나는 그것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두고 <괴물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 질문 때문에 여러 글을 읽었으나, 그것들은 하나의 해답을 주지 못했다. 아마 이 저자가 그러하듯 그들도 답을 찾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이 책은 나와 함께 고민한다. 수많은 거장들을 언급하며 자신이 느낀 것을 에세이 형식으로 적어간다. 그래, 나도 이런 고민을 했어. 이런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그 고민들에 끝이 있을까. 이 책에서 찾은 나름의 해답을 밝히겠다.


p. 297

당신이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이 당신을 나쁜 사람 혹은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아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왜 계속 선택하며, 비윤리적 창작자의 작품을 소비하길 꺼렸을까? 결국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비윤리적 행동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의 앞으로의 미래를 지지하는 듯 보여서. 그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러나 위 인용한 글처럼, 단순히 소비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거나, 좋지 않은 사람이 되진 않는다. 그를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괴물들>에서 저자가 끊임없이 고민했듯, 나는 위처럼 나름의 답을 얻었으나 고민을 멈추진 못할 거이다. 계속해서 소비 앞에서 머뭇거릴 것이다. 이걸 선택해도 괜찮을까? 이런 생각에서 더 나아가, 빠른 속도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한순간 처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발자국 떨어지는 법을 차근차근 배워보고 싶다. 느린 속도감을 스스로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며, 나를 살피고 속도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 도움을 분명히 줄 책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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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우맨 암실문고
마틴 맥도나 지음, 서민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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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인간에게 이야기란 무엇일까?

이 질문으로부터 독서는 시작된다.


오랜만에 아주 재밌는 희곡을 읽었다. 물론 마틴 맥도나의 <필로우맨>은 읽은 후 재밌는 희곡이었다,고 하기엔 찜찜한 구석이 있다. 그만큼 이 희곡은 잔혹하며, 윤리적 생각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한다. 그렇기에 이 희곡은 아주 조심스럽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필로우맨은 총 3막 구성으로, 막간극처럼 장이 존재하는 구성이다. 주인공은 두 형사와 두 형제. 투폴스키, 아리엘 형사와 카투리안, 마이클 형제. 이렇게 총 4명이다.


희곡은 이야기를 쓰는 작가인 카투리안이 두 형사에 의해 취조실에 갇힌 채로 시작된다. 카투리안은 단지 자신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며, 정치적인 이야기는 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투리안이 잡혀온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카투리안이 쓴 이야기와 똑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이 살해된 것이다. 카투리안은 혐의를 부정하며, 자신은 단지 이야기를 썼을 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아이들이 존재하며, 죄의 자백을 위해 지적인 장애가 있는 형 마이클을 옆 방 취조실에 잡아온다. 죄를 부정하며 고문 당한 카투리안은 마이클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마이클에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보자고 말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마이클이 죽인 것이었다. 카투리안의 이야기를 빌려서.


단순하다면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 희곡이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야기"에 있다. 이 희곡에는 메인 이야기, 네 명의 등장인물이 진행하는 이야기 외에도 카투리안이 작성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면도날을 입에 넣어 죽은 여자아이, 피리 부는 사나이에 의해 발이 잘린 남자아이, 예수의 고난을 모두 겪고 죽은 여자아이까지. 이 잔혹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발화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쓴 카투리안과 마이클의 과거 이야기 또한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카투리안에게 잔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게 만들기 위해서, 부모는 마이클을 고문하고 그 소리를 밤마다 카투리안이 듣도록 만들었다.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된 카투리안은 마이클을 살리고 자신의 부모를 죽인다. 이 이야기는 이야기에 집착한 부모와, 실제의 경험이 이야기에 반영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도록 한다.


내 개인적인 답으로는, 맞다고 본다. 현실은 이야기에, 이야기는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 이야기와 인간은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고, 상호작용하며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필로우맨>은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이다. 특히나 쓰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인데, 속한 이야기 자체가 재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읽는 내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필로우맨>이 극이 올라와 극장에서 볼 수 있다면, 언젠가 꼭 보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희곡이었다.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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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 - 인류의 삶을 뒤바꾼 공진화의 힘
피터 J. 리처슨.로버트 보이드 지음, 김준홍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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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밝히자면, 이 책은 쉽지 않다. 마치 논문을 여러 편 엮어둔 듯한 글의 전개는, 매우 논리적이지만 그 논리를 따라가기 위해 집중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은 아주 흥미로운 주제를 다룬다. p.52부터 적힌, 글에서 제시하는 주제들은 한 번쯤 의문을 가져봤을 내용이다.


1. 어떻게 문화와 유전자가 상호 작용하여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가?

2. 왜 인간은 특별나게 성공한 종인가?

3. 개인적인 작용과 제도적인 구조, 집단의 기능은 어떻게 연관되는가?

4. 문화적 다양성의 근원은 무엇인가?

5. 인간은 성공한 종임에도 불구하고, 왜 때때로 우리의 행동은 약간(때로는 매우) 비정상처럼 보이는가?


등등의 여러 질문을 제시하는데, 이러한 미해결 의문들을 풀어가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었다. 물론 모든 의문에 정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이 의문에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제시한다. 우리가 그 제시된 답에 동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 책이고, 그렇기에 굉장히 많은 예시와 숫자들을 동원한다. "사회과학"에 관해 마지막 장에서 잠시 언급되는데, 사회과학 분과는 분명 인문학, 과학의 모든 면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특이점은 '통계'다. 그만큼 이 책에서도 예시와 통계 분석이 많이 나와서 오히려 더 즐겁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


책에서는 문화와 진화에 관해 밝힌다. 이 분야를 읽으며 들었던 의문은 '정상적인 삶은 무엇인가?'이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여러 문화의 다양성은 적응/비적응으로 나눌 수 없는 기묘한 진화와 문화권의 공명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한 국가, 집단에서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정상성'을 파괴하며 그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에 관하여 가장 흥미로웠던 예시는 코만치족에 갔던 여성에 대한 것이다. 포로가 되어 갔던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p.86-87

1860년에 그녀는 텍사스의 삼림 경비관에 의해서 "구출되었고" 삼촌과 함께 살도록 송환되었다. 그녀는 여러 번 삼촌에게서 탈출하려고 했다. 비록 그녀는 다시 영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유럽식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코만치족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녀를 "구출"한 것은 두 번째 납치나 다름없었으며, 영국식 생활에 다시 적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다. 그녀는 함께 "구출되었던" 어린 딸이 죽자, 깊은 상심에 빠졌고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이 안타까운 일화는 "정상성"의 빈틈과 오만함을 보여준다. 한 노숙자에게서 개를 뺏으려던 동물인권운동가들의 오만함이 떠오르기도 한다. 각 문화를 계급을 나누며, 비정상적인 문화권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오만한 태도들은 문화의 진화와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삶을 삶으로 바라봤다면 또 다른 생각을 하며, "구출되었다"는 말 외에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위 사건 외에도, 여러 예시들과 의문들이 남는다. 최근 전 세계를 힘들게 만든 인구수의 감소라든가,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의 의문에 답해주기도 한다. 의외로 부모가 자식의 문화권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은 굉장히 흥미로운 말이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부모가 큰 영향을 끼칠 때는 아주 어린 시절뿐이며, 다 자라서는 아이가 속한 집단이 큰 문화권의 영향을 미친다. 그것을 밝히는 점이 굉장히 재밌었다.


이렇게 이 책은 한 번쯤 살아가며 가졌을 유전자와 문화에 관하여 다양한 의문을 가지게 하고, 저자의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해결책에 동의할 때도 있으며, 때로는 아닌 것 같다며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이 책은 성공적이며,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느꼈다. 책 p.215에서도 나오듯, '왜 - 아마도'식의 대답은 진화생물학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스스로를 왜라고 질문하여,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진화는 이루어지며, 그것을 적응/부적응의 가치판단에 두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디론가 나아가게 될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읽기 전 읽어보면 좋을 책들을 소개해보려 한다. 나는 사놓고 읽진 않아서, 이 책을 읽으며 후회한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이고 다른 하나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이 두 권의 책은 <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에서 계속 언급되며, 책을 이해하는 것에도 좋을 듯하다. 비록 나는 두 권을 읽은 후에 읽진 못했지만, 이후에 두 권을 읽으며 이 책을 다시 이해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만약 저 두 권을 재밌게 읽었다면, <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 이 책이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통합하며 재밌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이다. 진화와 생물학, 사회 과학에 관심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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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김헌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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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는 상식처럼 여겨진다. 다들 매일 신화 이야기를 읽는 것인지, 아무렇지 않게 신화 속 등장인물로 비유하고 심지어는 농담을 나누기도 한다. 우리나라 신화도 아니고 저 멀리 바다 건너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


나는 운 좋게도,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이 유행하던 시기에 어린아이였다. 도서관에서 늘 만화책이 닳도록 읽었고, 나도 모르게 서양 고전의 중심인 신화를 학습하게 됐다. 어느 정도의 기반이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뒤죽박죽 섞여 있는 이야기와 헷갈리는 이름들에 힘들 때가 있다. 특히, 상식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나 홀로 신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신화 공부를 해보려 시도해도, 그마저도 쉽진 않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로 이 책을 읽게 됐다.


여러 신화와 관련된 책을 읽어왔지만, 원전인 <변신 이야기>를 비롯한 여러 책은 어려워서 읽다가 멈추길 반복했다. 그러나 이 <김헌의 그리스로마신화>는 어렵지 않게, 마치 옆에서 옛 이야기를 들려주듯 쉽게 읽힌다. 입문서로 추천할만한 재밌는 책이다.


특히 재밌었던 챕터 몇 편을 뽑아보자면,

- 카오스, 천지 창조의 하품을 하다

- 야누스, 세상의 문을 열다

- 클뤼타임네스트라, 자식들의 손에 죽다

- 사랑의 비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위 네 파트가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 책은 챕터별로 이루어져 있고, 파트별로 강의처럼 진행된다. 딱딱한 인문학 서적처럼 쓰인 것이 아니라, 말하듯 보이는 자연스러운 어투이다. 또, 파트마다 신화에서 궁금했던 것, 얘 누구지? 싶은 사건과 등장인물 위주로 짤막하게 설명해준 것이 매력이다. 바쁘고 집중력이 안 좋은 사람이라면 이 짧은 챕터를 한 편씩 읽으며 학습하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좋았던 건, 뒤죽박죽 섞여 있던 사건과 등장인물을 정리해준다는 것이다. 또, 이게 신화였나... 싶었던 것들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심지어는 몰랐던 사건까지 소개해주어 즐거웠다.


아쉬운 점을 한 가지 뽑으라면, 가계도나 표로 정리되었으면 좋겠다고 여겨진 것들이 없는 점이었다. 등장인물이 많고, 특히 앞부분 신들의 계보를 정리하면 좋은 곳에도 한눈에 파악하기 좋은 가계도는 없었다. 이게 추가되었다면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을 듯하다.


이 책은 단순히 신화만을 소개한 게 아니다. 인문학적 지식, 그 시대 그리스 사람들의 생각, 철학자들의 말까지 신화를 설명하는 동시에 인간을 탐구한다. 이것은 고대 신화를 만든 사람들의 마음과 공명하는 일이다. 어떻게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의 주위를 둘러싼 것과 인간 그 자체는 무엇일까. 이 끝나지 않는 의문들을 답하려는 수많은 이야기들의 공명이 느껴지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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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바다 암실문고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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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음악가인 아버지와 언어학자인 어머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파스칼 키냐르. 그의 소설 <사랑 바다>에는 음악, 예술, 사랑, 도박의 쾌락이 자주 보인다. 이 쾌락에서도 자꾸만 느껴지는 것들. 허무함을 드러낸다. 그를 통해 이 소설은, 삶의 허무함과 살아감을 말하며 결국 삶을 파헤친다.


p. 33

형태 없는, 아무런 형태 없는 무한한 바다로 달아나는 거야. 내킬 때마다 발을 물에 담그고, 배를 물로 밀고 나가는 거지. 세상의 아름다움 속에서 길을 잃고 싶은 욕구가 솟구칠 때마다 말이네.


바다의 밀려 들어오고 나가는 것. 그 동력과 형태 없음의 무한함을 말한다. 책 <사랑 바다>는 사랑, 바다, 음악, 죽음을 통해 삶을 말한다.


1. 카드를 쥔 손

그가 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걸 어떤 존재가 추정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는 매일 물러나면서 그 이후에도 지각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길까?

우리가 사는 시간 내내 무엇을 축적하건, 무엇을 고백하거나 고백한다고 주장하건, 우리는 자연도, 몸도, 심지어 우리 자신이 지나간 날에 남겨 놓은 발걸음조차 알지 못한다.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건, 자기 삶에 어떤 움직임을 바라건, 우리는 그 방향을 알지 못한다. 꺼져 가는 끄트머리조차 방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운명은 관측되지 않는 비밀이다.

실존의 토대를 이룬 모든 것이 그 장본인에게 그토록 완벽히 감춰진다는 건 참 경이로운 일이다.


이렇듯 파스칼 키냐르는 각 챕터마다 깊이 있는 사유의 문장들을 보여준다. 이 책은 챕터별로 분절된듯 보이지만, 그만의 매력이 있다. 몰입감 있게 이어지는 감정선, 그렇지만 각 챕터마다 묵직하게 치고 나가는 문장의 매력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며, 때문에 몇 편의 챕터는 전문을 기록해 두었다.


비가 오고, 어두운 이 날씨에서 이 소설을 몰입하며 읽어나가면 아주 매력적일 듯하다. 책에는 앞서 말했듯 음악가가 소개되며, 그 예술적 감각들이 느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이 책에 몰입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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