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여자들
안트예 빈트가센 지음, 홍은진 옮김 / 한문화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독재자보다도 한수 위인 독재자의 연인들


‘내가 공주나 왕비가 될 수 있다면?’

이런 허황된 공상을 현실로 실현한 배짱 두둑한 여인네들이 있더군요. 왕정 시대의 왕비 버금가는 권력을 거머쥐고 20세기를 이끈 독재자들의 퍼스트 레이디들요. 그러니까 무솔리니, 마오쩌둥, 스탈린, 장제스, 차우세스쿠, 티토 등 이름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한 세기의 역사를 쥐락펴락했던 독재자들의 여인들 말입니다. 


여인천하를 통하면 세계사 공부가 재밌더라~

<권력과 여자들>은 바로 남자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여인네들을 20세기의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고 흥미로웠어요. <에비타>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 에바페론, 그리고 마오쩌둥도 컨트롤 할 수 없었던 아내 장칭, 뛰어난 영어 실력과 미모, 세련된 매너로 미 의회를 사로잡은 장제스의 아내 쑹메이링, 또 끝까지 무솔리니의 곁을 지키다가 함께 사형당한 철부지 뮤즈 클라라 패타치 등. 권력을 향한 열정과 의지에서 남자들에 뒤지지 않는 쟁쟁한 여인들의 이야기가 다채롭더라고요.

그런데요, 이 독재자들의 여인네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더군요. 우선, 아버지뻘 되는 나이차를 사랑으로 극복한다는 점이죠. 특히 무솔리니의 조강지처 라켈레는 무솔리니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며 한결같이 헌신적이었다고 해요. 죽는 날까지 무솔리니의 명예회복을 위해 투쟁하기도 했다죠. 글쎄요, 그녀가 권력을 직접 휘두르거나 조종한 적은 없지만 권력자를 숭배함으로써 권력을 숭배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쨌든 무솔리니는 여러 여자를 거느리긴 했지만 가장 가정에 충실한 독재자였어요.

또 이들 여인네들이 보이는 특징은 권력을 얻기 위해 창부나 요부의 역할을 마다않는 다는 점이죠. 에바페론,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 등의 경우, 하층민에서 권력의 중심으로 진입하기 위해 여러 남자들에게 몸을 바치는 과정을 거치죠. 에바페론은 권력에 굶주린 창부이다와 빈민을 위해 평생을 바친 성녀이다로 죽은 뒤에도 인물평이 극과 극으로 엇갈리더군요.

또 이 여인네들은 권력지향적인 감각이 본능적으로 발달해 있다는 거죠. 권력을 얻기 위해 사람들을 어떻게 쥐락펴락하면 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타고난 사람들 이라고 해야할까요. 여자는 섹스파트너로 여길 뿐인 괴물 스탈린의 세 번째 아내인 로자 카가노비치의 경우 매우 영악한 여인이었는데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얻어낼 줄 알았다고해요. 또 문화적 허영심이 강했던 그녀는 ‘로자의 살롱’을 만들어 놓고 다양한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스탈린이 이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그를 홍보하기도 했다고요.  


바꿔, 바꿔, 이젠 다 바꿔

야사여서 재미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허무하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이렇게 권력욕에 눈먼 사람들이 이루어낸 역사 속에서 희생당한 많은 대중들은 무엇이란 말인가하는. 사실 정치 문제에 관심도 없고 문외한인데다, 정치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적극적으로 피하고 싶어하는 저로선 말이죠.

그런데 인간의 욕망과 질투, 공포와 분노 등 이런 감정의 드라마가 바로 우리의 일상이더란말이죠.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권력지향적인 욕망이 남보다 더 강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요. 그네들을 이 여인네들에 대입해 다시 한번 이해하는 계기가 되더군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여성의 정계 진출이 활발해지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무조건 여성이라고 두 손들 일은 아니라는 거죠. 독재자들의 여인들을 보니, 권력에 대한 욕망이 독재자들보다 한 수 위인걸요. 중요한 것은 이제 독재의 잔재를 씻어내고 그야말로 반짝반짝하는 민주주의를 우리 모두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건데요. 그런 점에서 최근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 체험은 희망의 씨앗이 되었어요.

암튼, 흥미유발 만점인 <권력과 여자들>을 통해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동독 등 잘 모르는 나라들의 현대사도 새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역사가 따분하다고 여겨지시는 분들도 잼나게 읽을 수 있는 야사로 강추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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