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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BL] 고요한 밤, 사악한 밤 (총2권/완결)
장목단 / 웨일노블 / 2024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반은 전래동화에 나올만큼 착하게 사는 서복이에 대한 인간적인 끌림으로 읽었어요. 누군가는 비현실적이고 답답하다 하지만, 착한 주인공은 어쨌든 매력을 먹고 들어갑니다. 초반에는 울프의 태도가 너무 퉁명스러워서 독자도 갈피를 못잡았어요, 근데 울프가 겪은 '길치'라는 저주가 '길치'라는 한마디로 축약해버리기에는 너무 처절하고 괴로운 저주였어요. 평생을 어디로 갈지 모르는 상태면 늘 공황 상태일거 같아요. 사람을 이렇게 말려죽이는 저주라니ㅠㅠ
아주 어릴적부터 몇백년을 홀로 살다보니 인간관계도 감정발달도 미숙한 울프였어요. 그래서 서복을 안타까워 하고 답답해하면서도 존경하고, 인정하지 못해 우습게 보고 경멸하면서도. 나좀 살려달라고 서복을 붙들어 끌어내리려 했지만.... 결국 사랑하고. 와 이게 바로 입덕부정하며 까다가 빠가 되는 과정이군요. 모순투성이지만 적확한 심리묘사로 알기 쉬웠어요. 장목단 작가님 글 잘 쓴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런 데서 필력이 진가를 보이네요.
서복이도 마냥 순진하게 착한게 아니고, 본인이 하는 선행에 가끔은 허무함을 느끼지만 크리스마스와 산타에 대한 믿음으로 견뎌온 거라서 더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어요.
쿠키와 캔디 겨울냄새가 나는 산타마을 묘사도 좋았고, 크람푸스의 소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섬뜩한 동화같아서 좋았어요. 울프가 홀로 지냈던 집의 묘사, 몇백년간 서복을 지켜보던 시간들의 묘사가 기억에 남네요. 서복이 울프에게 유일하게 의미있는 타인이었다는게 너무 잘 느껴져서요. 울프가 오래동안 자신을 지켜봤음을 서복이가 알게 되었을 때도 좋았어요. 인간이 하면 좀 기분나쁜 스토킹이겠지만 반신이 하면 음...신이 나를 늘 지켜봐주었구나 그런 안도감이 있잖아요. 내가 해 온 일이 헛된게 아니었구나, 라는 감정.
로맨스적으로 보면 외롭고 괴로운 삶에 수를 지켜보는 것만이 의미있는 일이었던 공이 진짜로 수를 만나 자기 마음을 뒤늦게 깨닫고 수의 평생 산타가 되어주는 이야기인데요. 결국 우리가 믿을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이야기였던거 같아요.
울프가 걸린 저주, 내가 가야할 길을 몰라서 고립되어 외로워하고 감정적으로도 비뚤어진 상태가 많은 보통사람들도 겪을 수 있는 상태를 극대화해서 상징해둔거 같았거든요. 그렇게 착하게 살던 서복이마저도 그를 버티게 해줬던 산타에 대한 믿음을 잊게되자마자, 인생에 지치고 마음이 각박해진 요즘 우리들 모습처럼 바뀌어버렸잖아요ㅠ 다행히 서복이는 산타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산타의 존재를 영영 체감할 수 있게 되었지만요. 사라진 믿음과 사랑의 자리를 이제 우린 뭘로 채워야할까,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였어요.
사족1. 모솔과 모솔이 하는 연애라서 본격 연애 에피소드가 나온다면 재밌을거 같은데 과연 외전이 있을까.
사족2.산타 가문은 애가 한번 실수했다고 팽하냐. 그러니까 애가 이 모양이지. 하긴 산타 전설도 좀 결벽적인 면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