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는 조선족 - 소수민족의 자기통치 AKS 번역총서 1
권향숙 지음, 신종원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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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반도를 떠나 현재 중국의 동북 3성에 정착한 이들과 그 후손이 조선족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 시작부터가 ‘아웃사이더’였다. 청 대에는 청나라 사람이 아니었고, 만주국에 수립된 이후에는 일본인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니었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이후에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 규정되었다.

본래 한반도에 살고 있었던 이들은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한반도와의 교류가 단절되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정한 ‘소수민족’의 틀 안에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한국에 뿌리를 둔 이들이라 가정에서 한국어를 배웠으며 중국에서 살아가기에 중국어를 할 줄 안다. 더불어 만주국의 잔재 혹은 유산의 영향으로 동북 3성에서는 일본어를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배우듯 제1외국어로 배우기 때문에 일본어에도 능통한 이들이다. 이러한 언어적 장점을 가진 조선족은 냉전의 붕괴와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자아실현을 위해 혹은 일자리를 찾아, 소수민족의 차별을 피해서 등 자발적인 선택이나 구조적 폭력에 인한 강제에 의해 중국의 동남해안으로, 한국으로, 일본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국가 간의 경계가 명확하고 단일민족 의식이 강한 이 동북아시아에서 마치 유럽연합에서처럼 국경을 넘나들며 여러 나라에서 살아가는 현대판 유목민이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이를 ‘과경(border-crossing)’이라고 표현하였다. 지리적으로는 반도이지만 분단으로 인해 이미 섬나라가 되어버린 우리에게는 낯설기도 하지만 일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개념이다.

그러나 조선족 내부에도 경제력, 학력 등에 의해 나눌 수 있는 다양한 계층이 존재하지만, 이들이 이동한 각 지역에서 겪는 공통적인 경험이 있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한족’이 아니었고 한국에서는 ‘한국사람’이 아니었으며 일본에서는 당연히 일본인도 아니고 ‘재일교포’도 아니고 ‘화교’도 아니었다. 그들의 시작이 그러하였듯, 여전히, 어디에서나 ‘타자’였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생존 방식으로 그들은 동북 3성에서는 자각하지 못했던 ‘민족의식’을 각성하여 자신들만의 상호부조 성격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하며 반면에 조선족이었던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새롭게 정착한 곳에 완전히 융화되려고도 한다. 또한 한곳에 정착하기 보다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무대로 이동을 거듭하는 삶을 살기도 하며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중국, 한국, 일본 각각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이동하는 조선족’이 ‘소수민족의 자기통치’로 동북아시아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재일교포 3세가 자신의 할아버지와 똑같은 본적을 가지고 있는 조선족을 만난 것을 계기로, ‘조선족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갖고 시작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일본의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 연구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함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건사고 뉴스에서 접하는 정보나 영화, 드라마 같은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만으로 조선족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조선족에 대한 이해를 돕고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조선족과의 ‘평화’와 공존을 꿈꾸는 저자의 바람이 (일본 사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구에서 일어난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는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면서, 자국 내의 외국인(특히 중국인과 조선족)에 대해 ‘박멸’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나아가 일부 정치인들이 그러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것은 무척이나 요원해 보인다. 현재 절판된 이 책의 2쇄, 3쇄를 이뤄지기를, 이 책이 조선족과의 평화와 공존이 가능한 포용적인 사회형성에 좀 더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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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깊이 읽기 - 우리 고전으로 벌이는 잔치 열 마당
신종원 지음 / 주류성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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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강원도 화천군을 넘나드는 광덕고개는 캐러멜 고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문화대전에 기록된 것이나 지역주민이 기억하고 있는 그 별명의 유래는 한국전쟁 당시에 이 고개를 넘던 미군 운전병이 캐러멜을 하나씩 먹어서 혹은 낙타(camel)의 혹 등처럼 생겨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그 외에도 김일성이 길을 닦던 인민군에게 캐러멜을 줬다는 등 여러 버전이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륵바위가 있어 미륵고개라고 불렸는데 일제 강점기에 미륵을 발음-기록하기 힘들었던 일본인들이 미루꾸라고 표기하였고, 일본의 유명한 캐러멜 상표 미루꾸 캬라멜’(아직도 어르신들 중에는 캐러멜을 미루꾸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을 만큼 유명한 제품) 때문에 캐러멜 고개로 불리게 된 것이었다.

이렇듯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좋아하는 설화적 존재이다. 그러나 설화라고 하여 그것을 전부 다 황당무계한 픽션으로 치부해버려서는 안 된다. 설화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망,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재미와 감동의 요소 등이 담겨있지만 그 이야기들을 얽어내는 뼈대 혹은 기본 모티브를 추적해가다 보면 역사적 사실에 일정 부분 기댄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며 때로는 그러한 설화가 역사서에 기록된 사료들이 보여주지 않는 당대의 모습을 일면 비춰주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는 이러한 설화들로 구성된 역사서이다. (역사서라기보다는 설화집에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저자인 일연은 여러 설화들을 역사와 부합하도록 혹은 역사서의 형식에 맞게 엮어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일연은 전문 역사가가 아닌 승려이며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데보다는 설화들을 통해 불교적 가르침을 전하고 중생 교화의 수단으로 삼는데 더 무게를 두었으며 저술된 당시가 몽골의 침략과 간섭으로 인하여 민족의식이 고양된 시기였다는 것까지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이 책을 역사서로 읽기 위해서는 사료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설화의 뼈대 혹은 모티브를 추적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종원 교수님께서는 이 책의 제목을 삼국유사 깊이 읽기로 정하신 것이 아닐까.

삼국유사는 신라 초기 불교사와 더불어 신종원 교수님의 가장 오래된 연구 주제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의 방대한 저서들과 논문 중에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또 인기 있는 삼국유사의 설화 열 가지를 주제로 뽑아 휴대하기 좋은 크기의 책 한 권에 담았다. 처음으로 대중서를 쓰겠다!’고 하셨던 저자의 선언과는 달리 이 책은 대중서로 읽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정년 퇴임 후 처음으로 평생의 업적을 갈무리하여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에서 허술하고 비약적인 논리 전개를 보이고 싶지는 않으셨으리라. 설화와 맞닿아 있는 역사적 사실을 추적해가는 저자의 논리는 이전의 저서들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이 물 한 방울 샐 틈 없이 치밀하다. 특히 과거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할만한 사료가 턱없이 부족한 고대사의 영역에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들을 제시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를 공부하는 후학들은 마치 무협지에서 무한한 깊이의 내공을 가진 고수를 만난 젊은 무림인의 기분과도 같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호랑이에 관한 우리나라의 여러 민담, 등산을 좋아하는 저자가 필드를 직접 뛰어 수집한 사진과 채증들, 고대 한국어에 대한 연구 등이 그러하지만 가장 백미는 이미 저서로도 낸 바 있는 한국의 대왕신앙이었다. 불교 수용 이전에 존재하였던 우리나라의 토착 혹은 무속 신앙에서 숭배의 대상인 ○○대왕들의 이야기가 실존했던 삼국시대의 왕들의 이야기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을 접착제로 맞닿았다는 것을 밝혔을 때는 정말 짜릿한 유레카의 기쁨을 맞볼 수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왕암과 서동요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와 같은 저자의 친절하고 꼼꼼한 안내 덕분에 삼국유사를 깊이 읽으며 과거로의 즐거운 여행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삼국유사를 읽는 데에 방해가 되는 것이 또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자신들이 보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군신화가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혀주는 유일무이한 진리이길 바라고 선덕여왕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기를 바란다. 또 경주 앞바다의 대왕암이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된 문무왕의 무덤이길 바라고 신라의 선화공주가 백제 미륵사를 지었기를 바란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었을까? 저자는 설화를 역사적 사실이라고 그대로 믿는 것도 또는 설화이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도 모두 성숙한 역사 읽기의 태도가 아니라고 한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는 태도를 잠시 접어둔다면, 설화와 역사를 상충하는 것으로 보고 그 결말에서 단 하나의 결론만을 내려는 단선적인 인식을 넘어선다면 우리는 역사적 사실과 설화가 서로를 돕는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고 각각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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