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전사의 탄생 - 분쟁으로 보는 중동 현대사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강신주 교수나 김정운 교수,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움베르토 에코 같은 글쟁이들의 글을 읽을 때면 숨이 막힐듯한 지식의 향연에 주눅이 들 때가 많다. 현란한 글솜씨는 그러한 숨막힘을 더욱 가중시키곤 한다. 그러나 주눅드는 마음을 가듣 안고서라도 그들의 책을 손에 들게 되는 것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함정이 있다. 엄청난 지식의 향연에 빠져들어 즐겁게 앎의 홍수를 경험하고 나서 뒤돌아보면 내 것으로 남아있는 지식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나게 책을 읽었는데,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어찌된 일일까?


내가 생각해 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다.

첫째, 그 책들이 쏟아내는 지식들은 사실 수많은 공부와 연구, 고도의 종합과 선택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그렇게 책으로 만들어 내서 지식을 정리할 때 들인 노력과 공은 범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리라. 그 결과물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지식의 꽃봉오리들이기에 읽는 이들에게 향기로운 꿀맛을 선사하지만, 독자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은 거기까지일 때가 많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어도 그 책들이 보여준 지식들을 얼마간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쾌락적 읽기"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그런 지식의 향연에는 대개 내러티브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러티브가 없는 지식은 화려한 수사와 깔끔하고 유려한 문체로 무장을 했더라도 일종의 '백과사전스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관된 의식의 흐름과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성, 그리고 잘 짜여진 구조는 내러티브가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들이다. 내러티브는 인과관계를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예측가능성을 내포한다. 화려한 지식의 한상 차림은 읽는 쾌감은 대단할지 모르지만, 영양가는 높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내러티브가 살아있는 글은 읽는 일이 다소 고되고 답답하더라도 그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해서 지식의 축적이 일어난다. 내러티브의 흐름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책을 읽은 후에 훨씬더 영양가 있는 결과를 허락하는 것이 내러티브가 살아있는 글이라 할 수 있겠다.


<이슬람 전사의 탄생>이라는 이 책은 우선 무엇보다 풍성한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슬람의 역사와 종교, 문화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대단히 돋보인다. 오랜동안 중동문제 전문 기자로 살아온 그의 역량이 잘 녹아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이슬람 문제에 관한 백과사전스러운 책은 아니다. 


20세기의 중동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화약고이자 전쟁터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중동 분쟁문제를 그 근본에서부터 파헤치고 있는 저자의 접근방식은 그 자체로 "역사"이면서 내러티브다. 저자는 중동의 분쟁을 세계 3차 대전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는 중동의 분쟁들이 언뜻 보기엔 국지적이고 파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큰 줄기에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하나의 전쟁임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특히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빈 라덴과 탈레반, 이슬람 국가(IS)와 미국 등...

저자가 풀어 놓는 이야기들은 흥미진진하고 숨막히는 첩보전이기도 하고, 유혈이 낭자한 전쟁 액션이기도 하다. 익숙한 이름들과 나라들, 첩보기관들이 등장하지만, 낯익은 내용은 거의 없다. 저자의 투철한 기자정신 덕분이리라. 이렇게 디테일하게 쓸 수가 있는 것인가 의아한 장면이 하나 둘이 아니다. 얼마나 진지하게 이 내용들을 공부하고 정리했을지 고개가 숙여지고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다.



두말할 나위없이 전쟁은 너무나 큰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 준다. 21세기에 들어왔지만 한 해에 1만 건 가까이 발생하는 테러들과 여전히 진행중인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분쟁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결코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더구나 우리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휴전국의 국민이다. 거리마다 풍요와 쾌락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세대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우리는 이 땅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전쟁중인 사람들에게 너무나 무심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로운 삶, 안전한 삶을 누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전쟁은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앗아간다.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게 된다. 보잘 것 없는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만 한다고 ...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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