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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장일순 지음, 이아무개 (이현주) 대담.정리 / 삼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망설이다가 추천합니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 이아무개 대담 정리 출판사 삼인
장일순은 서울대 미학과 중태 그 부인은 서울사대 출신 -- 지식의 허영은 어느 정도 충족
학교 재단이사장, 진보당 국회의원 출마, 약간은 좌파 -- 조봉암과 김삼용에 대한 호의
김지하의 스승
지학순 주교와 원주의 대부이자 원주 천주교 평신도 회장
필명 이아무개는 개신교 목사 이현주님
유신시절에 한문과 붓글씨를 친구삼아 살다 보니 그 후 대통령된 사람들이 그의 붓글씨와 서화를 구매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도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호를 여러 개 갖고자 했는데
죽기 전에 좁쌀 한알 일속자가 그가 좋아한 호이었는데
그래도 사치 스러운 인간들은 노자라면 무위당 정도 되어야 한다고 크게 써 붙였다고 저는 짐작합니다.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이 다음 입니다.
256쪽
성경에는 탕자는 처음엔ㄴ 아버지한테서 멀리 간단 말씀입니다. 원(遠)하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오는(反) 행위의 한 부분이 아니겠나 싶은데요.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친구가 만일 아버지를 떠나지 않았다면 '제 정신'을 차렸을 리도 없고 따라서 돌아올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맏아들이 바로 그랬지요.
257쪽
그래. 맏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지만 떠나 있었던 거지.
예, 맞습니다. 그런데 탕자의 경우에는 멀리 갔기 때문에 돌아오거든요. 그러니까 멀리 가는 것이 곧 돌아오는 것이지. 가는 것 따로 있고 돌아오는 것 따로 있고 그렇게는 볼수 없는 것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는 걸까요?
그런 거지. 그런 거야. 그런데 이제 결국은 여기서 말하려는 게 道 아닌가? 道란 이런 것이다 하고 여기서 말하려는 게 道 아닌가? 道란 이런 것이다 하고 여기서 설명을 하는 건데, 大니 逝니 遠이니 反이니 하고 말이야. 그런데 이런 모든 말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뭔고 하니 道라는 게 상대적인 무엇으로 나눠질 수 없다는 그런 애기라고 봐야겠지.
지난 번에 道者는 同於道하고 德者는 同於德하고 失者는 同於失한다고 했을 때, 그게 다 도덕이 있느니 없느니 得이니 失이니 그런 분별이 道의 세계에는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바로 그런 얘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