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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사단장 죽이기 - 전2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 단언컨대, 지금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그의 이름을 언급할 것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시작으로 그의 문체에 강렬한 이끌림을 느낀 나는, 세간의 평이 어떠하던 그의 책을 구매하여 읽었고, 머릿속 어딘가에 폴더를 만들어 그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1Q84>이후 7년여의 공백을 깨고 그는 장편 소설을 출간하였다. 당연히 나는 역시 끌림에 의해 <기사단장 죽이기>를 살 수 밖에 없었고, 오늘 두꺼운 책장의 가벼운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수 많은 이야기가 얽히고 설킨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헤어진다. 음악과 글이 장면을 만들고, 인물들은 위에서 열정적으로, 때로는 무감정으로 연기한다. 하루키의 책에서 항상 느끼는 점이다. 공통되게 느끼는 것은 딱 하나. “주인공은 어딘가 상실된 인간”이라는 점 정도다. <기사단장 죽이기>역시 상식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자신의 주위 환경에도 쉽게 체념한다. 명백히 어딘가 상실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을 빗대는 걸까. 아니면 그 자신의 결핍감이 하나의 인간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주인공은 36세의 미술작가, 엄밀히 말해 초상화를 그리는 남자이다. 그는 6년간의 결혼 생활을 이어온 부인에게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 받는다. 주인공은 상심하고 의문은 갖지만 거기서 끝이다. 안에서의 끝없는 질문과 고통은 안에서만 오롯하게 머무른다. 그러다 절친한(책 내용을 따르면 유일한)그의 친구가 유명한 화가인 자신의 아버지에 집에 머무는 것을 허락한다. 그의 아버지는 노환으로 요양병원에 가 있는 상황이다. 그 집에 머무르며 평화를 누리던 주인공은, 우연하게 어떤 그림 하나를 발견하게 되고, 이후 그의 세상은 급격하게 몰아치기 시작한다.
하루키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스토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느낌은 바로 이 “갑작스러움”이다. 딱딱 제대로 맞춰진 시계처럼 돌아가던 주인공이 어떤 물리적, 정신적 원인으로 인하여 무너지고 잃고, 회복한다. 이 플롯은 정말 소설로서 완벽한 구도로 나에게 느껴진다. 일상의 변화, 본인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행하며 벌어지는 내용 전개는 최대치의 설렘과 긴장감을 나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일단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남녀의 관계를 멈추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아.” 내가 말했다. 정말로 간단하지 않다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것은 힌두교 교의에서 말하는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온갖 것을 숙명적으로 짓밟으며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비단 남녀의 관계만 그러할까. 모든 시작을 멈추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거대한 수레바퀴, 그것도 언덕을 구르는 수레바퀴처럼. <기사단장 죽이기>역시 그러하다. 주인공의 시작한 별 것 아닌 것 같은, 아주 사소한 행위도, 눈이 가득 쌓인 가파른 언덕에서 굴리기 시작한 작은 눈처럼 것 잡을 수 없이 불어나 모든 것을 삼킨다.
“그 그림들은 모조리 폐기했다. 누가 발견할지도 모르고, 그런걸 보관해야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ᄁᆞ. 그래도 한 장쯤은 남겨뒀어야 했는지 모른다. 그녀가 정말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
나를 돌아본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때문에 관계를 맺는다. 맺어진 관계는 느슨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강력하게 묶어져 스스로 푸는 것이 고통을 동반한다. 매듭의 단단함은 한 쪽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누군가 강력하게 풀고자 하면 나의 매듭은 금새 풀어지고 말 것이다. 나의 매듭을 떠올린다. 분명, 그렇게 세게 묶었다고 생각했건만, 어느덧 풀린 매듭 사이로 떠난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럴 때마다 느낀다. 과연 그들은 실존했는가. 아니, 매듭은 정말 세게 묶었던걸까. 사진을 찾아본다. 남은 사진이 없다. 기억은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를 스쳐 흩어진다. 이 문장에서 조금은 답답하고, 크게는 아련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많은 평가들은 솔직하게 안 좋은 구석이 많다. 쓸 데 없는 스토리가 길다는 의견이나, 표현의 모호함을 짚는 의견이나, 풀리지 않은 많은 실마리들의 미결이나.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하루키의 책에도 나와있지 않은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호흡,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간의 현실적이지 않은 대사와 스토리의 진행들. 하루키의 소설을 일종의 “환상문학”이라고 여기는 나의 입장에선 <기사단장 죽이기>는 100점만점에 120점을 주어도 모자라다. 문장에 울림이 있다. 그 깊은 울림은 문장을 지나는 순간 아지랑이처럼 흩어진다. 중요한 것은 많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어디에도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덮고 한참을 생각했다. 타인의 평가와 나의 느낌에 대해서, 그 극렬한 대척의 평가에서. 그래도 나는 이데아와 메타포. 그 두 가지만 있다면, 글쎄, 아무래도 나는 하루키를 결코 미워할 수 없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