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걷는사람 시인선 27
안상학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이라는 제목에 끌려서 집어 든 시집, 걷는 사람 시인선의 27번째 작품으로 안상학 시인이 제목을 이리 지은 이유는 <고비의 시간>이라는 구절을 읽을 때 알 수 있었다.

지나온 날들을 모두 어제라 부르는 곳이 있다

염소처럼 족보도 지금 눈에 있는 어미나 새끼가 전부

지나간 시간들이 모두 무로 돌아간 공간을 보며 살아가는

황막한 고비에서는

그 이상의 말을 생각할 그 무엇도 까닭도 없으므로

남은 날들을 모두 내일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펌프가 있는 어느 작은 마을

사람이라곤 물을 길어 가는 만삭의 아낙과

뒤따라가며 가끔 돌아보는 소녀뿐

시간이 오고 있는 것이 보이는 황황막막한 고비에서는

굳이 그 이상의 말을 만들 어떤 필요도 없으므로

--- 「고비의 시간」중에서

여기서

나오는 고비라는 단어는 굽이의 제주 방언으로 보이는 데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듯하다. 막다른 절정, 위험한 시기라는 뜻으로, 말을 생각하거나 말을 만들 까닭과 필요가 없다는 문장으로 유추해보았다. 지나간 시간이 무로 돌아간 현재를 살고 있는 이에게 거칠고 아득하게 넓은 굽이는 위기의 순간인 고비를 맞이한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 안상학의 과거와 현재, 미래인 내일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구절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고비의 시간’을 느끼게 만든다.

비어 있는 곳으로 몸이 옮겨갈 수 있듯이 비어 있는 곳으로 마음이 옮겨가는 여기, 비어 있는 곳을 확실하게 채워가며 바람이 불어간다, 불어온다.

그의 시에서는 마음에서 비롯한 과거의 나로부터 스스로 돌이켜보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또한 지독하게 외로운듯하면서 제주 4.3 사건, 4.16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 시, 슬픔을 기반한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계속해서 읽다 보면 특정한 대상을 주제로 애정으로 관찰한 듯한 느낌을 주는 시 몇 편과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애착 어린 물건을 주제로 시를 쓰기도 한다. 그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세상 모든 슬픔의 출처는 사랑이다 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과연 사랑이 형체를 잃어 가는 꼭 그만큼 슬픔이 생겨난다.는 그의 시구절에 깊은 공감의 순간을 느낀다. 그의 시구절은 다시 되새겨 곱씹을수록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이 계절에 이토록 잘 어울리는 시집이라니. 안상학 시인 특유의 슬픔과 마치 지구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외롭고 쓸쓸함이 담긴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