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마리 유키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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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활을 영위하는 장소로 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집은 울타리와도 같이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외부의,

이를테면 자연재해나 범죄 같은 위험에서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이 느닷없이 가장 위협적인 곳이 된다면?

이 책은 작가 마리 유키코가 이사를 하며 낯선 공간에서의 심리적 불안감과 공포감을 그려낸 작품이다.

익숙하던 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한 경험은 누구나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이사를 하면서

친숙하지 않은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며 일어나는 총 6개의 단편적인 이야기가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짜여있다.

문, 수납장, 책상, 상자, 벽, 끈의 제목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소재만으로도 독자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고 경계하게 만든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면서도 보고 싶지 않은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지만 짧고 간결한 문체와 빠른 진행, 그리고

일본 특유의 기괴한 공포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책은 한 번 읽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없이 빠져들었다.

<문>

살인범이 살던 집에서 이사하기 위해 짐을 싸는 기요코에게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이사할 새 집을 보러 간 그녀는 안에서 열리지 않는 비상구에 갇혀버리게 되고, 현실을 부정하는 그녀의 마음이

더해진 건지 꿈과 현실을 분간할 수 없게 이어지는 장치가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안쪽에서는 열리지 않습니다. 비상시가 아니면 들어가지 마십시오.'

뺨에서 뭔가가 꿈틀거린 기분이 들었다.

<수납장>

아버지가 없는 가오리의 어릴 적 회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소재는 수납장이다.

어머니 나오코가 집을 이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며 수납장을 정리한다. 그녀는 유치원에 다녔던 가오리가 그린

한 남자의 그림을 발견한다. 바로 옆집에 사는 야마시타 씨다. 항상 쫓기듯 이사를 준비하는 어머니를 보는 가오리의 시점과

이사를 준비하는 나오코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 살인사건에 관련된 무더기의 짐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

엄마가 또 뭔가를 저질렀다.

나는 수납장을 올려다보았다.

<책상>

세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 마나미가 '데이토 이사센터'에 취업하며 시작된다. 그녀는 전임자가 쓰던 책상에서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사무실 공용 냉장고의 수상한 생고기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된다. 전임자의 동료 A 씨가

인육을 먹는다는 내용도 함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소름 돋았고 공포감을 느낄 수 있었던 구간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 이야기는 다시 페이지를 넘겨 앞 부분을 확인하고 페이지를 넘겨야 했다.

내가 뭘 본거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싹한 이야기였다.

어떻게 인육인 줄 알았냐고요? 눈알과 혀, 그리고 손가락이 있었거든요.

<상자>

유미에는 직장 내 따돌림에 의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삿짐이 담긴 골판지상자를 잃어버리게 된다.

함정에 빠져 억울한 그녀는 상자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다가 결국 육교에 떨어져 죽게 된다.

작가는 어쩌면 여러 공포 이야기보다 가장 무서울지도 모를,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상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옆을 보자 파견사원들이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으으으으으으.

또다. 또 함정에 빠졌다.

<벽>

가정폭력의 기억으로 악몽을 꾸며 잠에서 깬 기타가와 하야토.

직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 이토에게서 옆집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왼쪽 옆집에 사는 부부의 불화와

집주인인 노인이 둔기로 맞아 살해당했다는. 옆집 부인이 걱정되어 경찰을 불러준 이토는 어느 날 찾아와 초인종을 누른

옆집 부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손에 뭔가 들고 있었다.

"아아, 마음에 두실 것 없어요. 그것보다, 이제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그때 빛나는 뭔가가 허공을 갈랐다.

<끈>

한 인터넷 사이트 중 '호러 게시판'을 자주 이용하는 사야카.

이사 후 새 집에서 오랜만에 접속한 '호러 게시판'에서 흥미로운 게시글을 읽게 되지만 더 이상 새 글이 올라오지 않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거리 뷰 기능을 통해 새로 이사한 동네를 둘러보게 되는데...

마음 내키는 대로 거리를 둘러보다 자신이 이사한 맨션까지 다다르게 되고 거리뷰로 자신이 사는 7층까지 보게 된다.

마우스를 클릭하자 화면이 바뀌게 되고 그때 비상문 틈새로 뭔가가 보였다.

사야카는 정체불명의 '끈'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게 되고, 바깥 복도 현관문 옆의 비상구를 확인한다.

'겟 업 겟 업 겟 업'

사야카는 문틈 사이에 비어져 나온 '끈'을 확인하기 위해 좀 더 가까이 다가서고 비상구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나타난 새카만 문.

그건 대체 뭐였을까.

혹시 비상문 안쪽에 누가 있는 거 아닐까.








탄탄하게 잘 짜인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을 받는다.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아니면 경험하게 될 이야기라 생각하니 더욱 오싹한 기분이 든다.

이사를 하면서, 이사와 관계되어 겪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익숙한 소재로 전개되어 일상의 공포로 다가온다.

또한 스토리상에 숨어있는 반전을 알게 되며 얻는 충격과 공포는 이 책을 집어 들게 된 순간, 끝까지 완독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작품 해설을 읽게 되면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도시괴담과도 같은 느낌을 주면서

더욱 그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이해하고 나면 공포감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한 여름 느닷없이 빠져들게 되는 공포소설을 읽고 싶다면 <이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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