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야, 히가시노 게이고

[세트] 환야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0년 3월

환야. 책을 읽기 전 제목의 뜻이 궁금해진 나는 검색을 한다. 헛보일 환으로 쓰이는 한자는 헛보이다. 미혹하다. 괴이하다. 현혹시키다의 의미로 밤 야 가 붙어 간단하게 헛보이는 밤, 신기하지만 괴이한, 허깨비 같은 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제목이 이렇게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여러 작품들이 유명하지만 단 한 번도 읽어보진 않았다. 일본의 지명이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읽다 가도 헷갈려서 완벽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 2004년에 나온 이 작품이 최근까지도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사랑받고 있다니. 이 책을 펼치는 내내 더없이 궁금해졌다.

이 소설은 1995년 1월 오사카 인근의 소도시 니시노미야의 동네에서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의 소멸 이후 2002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경제 불황을 배경으로 기인한 특유의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아버지의 빈소를 지키던 마사야와 고모부인 도시로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그가 조문을 오며 함께 꺼낸 누런 봉투, 그것은 차용증서였다. 아버지의 사망보험을 받으면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한 새벽, 엄청난 지진으로 그 동네의 거의 모든 건물이 무너지게 되고, 몸을 피하려던 마사야의 눈에 공장의 잔해에 깔린 고모부가 들어오지만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옆에 있던 기왓장으로 살해한다. 그리고 그곳을 뜨려던 마사야를 본 한 여성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 소설을 중점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인공 미후유다.

마사야와 미후유는 대피소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다시 한번 마주치게 되고 미후유가 치한에게 폭행 당할뻔하지만 마사야가 그녀를 도와준다. 그 이후 마사야가 곤경에 처하게 되자 미후유의 도움으로 상황을 모면하게 되고 서로에게 서로가 조력자로써 도움을 준다.

“환한 낮의 길을 걸으려고 해서는 안 돼.”

미후유가 정색하고 말했다.

“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설사 주위가 낮처럼 밝다 해도 그건 진짜 낮이 아니야. 그런 건 이제 단념해야 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궁극적인 그녀의 목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하나야 보석점의 대표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미후유가 그 사장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마사야는 탐탁지 않아 한다.

“미후유는 우리 둘의 행복에 관해 생각해 본 적 있어?”

“행복?”

“이렇게 숨어서 몰래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삶, 풍족하지는 않아도 늘 함께 누리는 평온한 생활, 그런 걸 꿈꿔 본 적이 있느냔 말이야.”

“안타깝지만 마사야, 그건 환상이야.”

“환상이라고?”

“두 가지 의미에서 그래. 하나는 그런 가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점. 행복한 것처럼 보여도 어느 부부에게든 복잡한 문제가 있어. 다들 가면을 쓴 채 숨기고 있을 뿐이지. 또 하나는 만에 하나 그런 가정이 있다 해도 우리가 그걸 원하는 건 너무 뻔뻔한 짓이라는 점.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잊지는 않았겠지?”

미후유의 대화에서 책 제목인 환야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가 누리고자 하는 행복의 기준은 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그 허황된 것을 누리기 위해서 그녀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미후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사건들, 그리고 그녀에게서 풍기는 사건의 냄새를 맡은 형사 가토.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좇기 위해 그녀가 타고난 아름다운 외모와 지력, 그리고 마사야의 든든한 조력으로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어간다. 또한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자신이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녀의 아찔한 사고들은 소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환야의 1권에서는 그녀와 마사야 위주의 사건들로 전개된다면 2권에서는 그들을 좇는 형사 가토와 마사야가 그녀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동요들을 긴장감 넘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주인공 미후유는 이유가 어찌 되었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일종의 소시오패스로 성공지향적인 사회 분위기와 잘못된 가치관으로 스스로 만든 환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