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누군가로부터 배워야 하는 사회는 개인이 만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행동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문화에서 나온다. 이런 문화에서 소비자는 스스로 배우기보다 만들어진 필요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사람을 데려다 필요를 배우는데 유능한 학생으로 만드는 사회에서는 스스로 경험한 만족에 기반해 자신의 욕구를 만드는 능력은 보기 드물어진다.
이 소설에서 돈은 에로스를 가로막고 야성을 거스르는 문명세계의 가장 큰 허상이다. 라캉이 말했듯이 돈과 언어는 문명세계에서 가장 절대적이면서도 그렇기에 가장 허구적인 텅빈 초월기표이다. 문명의 이기가 없을때(야성) 인간은 동물보다 나약하다. 문명은 불안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 두려움으로 인간은 필사적으로 야만성을 배제하며 문명화된 인간간의 체계인 이성을 중요시해왔다. 그러나 야성의 세계에서 편협한 이성이 얼마나 무력한지는 작품에 잘 묘사되어있다. 이 책에 수록된 두 작품에서 개와 인간이 돈으로 매개되어있을때에는 친밀한 교감(사랑)이 단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야성의 부름>에서 손턴과 벅의 사랑(돈으로 맺어지지 않은)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후에 돈이 개입되자 끝나버렸다. 어쨌든 사랑 또한 문명의 일부였고, 그길로 벅은 야성으로 회귀한다. ˝바닥은 언제 갈라질지 몰라요. 그러니 바보들이나 눈먼 행운을 믿고 그런 길을 가죠. 한마디로 나는 알래스카의 황금을 다 준다고 해도 저런 얼음 밑으로 내 시체를 던지지는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