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탕집탕 -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아버지 품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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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건 돌아온 탕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메시지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잘 녹아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는 두아들이 있었다. 잘 자라주던 어느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청구한다. 왜 그랬는지 성경에는 아무 이유가 기록되어있지 않다. 큰아들의 반응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성경은 소설이 아니라서 아주 세세한 심리묘사를 하지 않는다. 팩트만 말한다. 유산을 받은 둘째는 모든 걸 뒤로하고 돈갖고 집을 떠나 먼곳으로 가버린다. 그런데 간곳에서 잘 살았더라면 좋을텐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큰아들의 말에 따르면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란 표현이 나온다. 그는 유산으로 그렇게 허랑방탕하게 살면서 재산을 다 허비하였다. 그후에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면서 저가 비로소 궁핍하게 된것이다. 이때부터 먹고살기 위해 취업을 해보지만 먹을게 없어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고자하되 주는 자가 없다고 나온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집을 추억한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품군이 얼마나 아버지집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는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아버지 집을 향해 나아간다. 그때 아버지는 뭘하고 있었을까. 떠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만 학수고대하지 않았을까. 아들이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면 다시 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기다리지 않았을까. 큰 아들도 둘째 소식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둘째가 돌아왔고 아버지가 버선발로 뛰어 가서 아들을 영접해주고 잔치를 베풀었고 큰 아들은 화를 내면서 잔치에 불참한다는게 주된 내용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15:31,32

김양재 목사님은 섬세한 부분이 있으시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말씀을 통해 잘 드러내는 좋은 달란트를 갖고 있다. <돌탕집탕>도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그속에 분명한 메시지를 심고 있다.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아버지 품이 있다는 걸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돌탕인가 집탕인가를 생각하면서 읽었다. 숫자적으로 보면 30년된 신자니까 집탕에 더 신경을 쓰며 읽었다. 하지만 역시 돌탕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책중간중간에 나오는 간증은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인생의 어려움 앞에 서지 않았더라면 아버지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 인생의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내버려 두실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부르신다. 관건은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사람이 얼마나 그 빚진자의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를 사랑하냐는데 있다.


아무런 기초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선교단체를 통해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낯선단어에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함께 공부하던 리더가 질문할때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머뭇거릴때가 많았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간이 모든걸 해결한다고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성경지식은 쌓여가는데 신앙이 자라가지 못하는 상태의 답답함이 있었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박차고 나가지 못한것은 아마도 그안에 깃든 사랑이었을것이다. 그러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버텼던것 같다.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로 진출을 앞둔 상황에서도 여전히 변화되어있지 못하는 모습, 자라지 못하는 자신때문에 실망감이 들고 함께 한 동료나 후배들은 잘 자라서 리더로 쓰임 받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안타까운 그런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그 안에서 보여지는 모습에 상처를 받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나오고 편애받고 잘 자라는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고 있었다. 그 이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나의 신앙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남들은 인내심이 필요했겠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맏아들이라서 그런지 결정을 쉽게 하지 못했다. 아마도 주변에 나를 아는 사람들은 이게 못마땅했을것이다. 동생은 사업을 한답시고 차를 8번 바꿨다. 그만큼 결정이 빠르고 신속하다는 말이다. 나와 다르게 동생의 신앙은 모든게 빨랐고 열정이 있었다. 한번은 기타를 배웠는데 동생을 아는 사람들은 동생의 독특한 뽕짝주법을 말한다. 모든 곡을 이 주법하나면 연주가 다 되었으니 신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이 기타를 마스터하기까지 기타 한대를 긁어대다가 버릴 정도로 너덜너덜해질때가지 연습했다고 한다.


<돌탕집탕>을 읽으면서 마음이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나는 집탕일까. 돌탕들이 집에 돌아오는 건 시원시원하게 다가 오는데 나같이 표현이 둔하고 잘있는 것 같지만 아닌 집탕들은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머리로는 잘 이해가 된다. 맏아들이 되면 안되고 아버지에게 저러면 안되고 바리새인처럼 되면 안되고 안되고 안되고 그렇다고 금욕적으로 살자신도 없고 그럼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늘 고민이었다. 그래서 이책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최근에 담임 목사님으로부터 한말씀을 듣게 되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고 거룩함이다" 머리를 탁 칠 말씀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은 행복을 위해 달려왔던 것이다. 결혼도 그렇고 자식도 그렇고 스포츠나 영화나 책이나 모두 내가 좋아하는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식은 많이 쌓인것 같은데 삶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거룩함이다. 나는 크리스찬이다. 주님을 닮아 가는 사람이란 뜻인데 과연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왔던가 돌아보게 된다. 세상은 말한다. 교인들이 더하다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중에 교인이 많다. 그 이유가 인생의 목적을 현재의 행복에 두기 때문이다.

우리는 돌아온 탕자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아버지를 기억해야한다. 언제나 돌아가면 맞아주시는 아버지가 있다. 하루를 바쁘게 보내지만 정작 아버지를 기억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새벽기도, 큐티, 성경읽기, 개인기도에 얼마나 시간을 들이고 있을까. 아주 조금이라면 우리가 만나는 시간을 통해 나는 영향을 받는다. 내가 보내는 시간에서 나의 행복을 찾고 있는 것이다. 거룩함을 지향한다면 나는 달라져야 한다. 달라지고 싶고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돌탕집탕>을 읽고 아버지의 은혜를 생각한다. 나의 목적은 거룩함이란걸 잊지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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