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향해 달리다 - 기억과 대면한 기록들
세라 폴리 지음, 이재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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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는 저자가 열 네살 때 참여했던 <겨울나라의 앨리>의 연극 공연에 참가했을 때를 다룬다. 그녀는 척추측만증에 걸린 앨리스였다. 척추가 60도 정도 기울여져 겪는 고통을 읽는 동안, 구부정했던 허리를 곧추세우게 된다. 그녀가 느꼈을 온 몸의 고통, 압박감, 외로움. 이미 그것을 통과한 자만이 쓸 수 있는 담담함. 나는 그것들을 책을 통해 오롯이 느낀다.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다. 그것들을 모두 겪어내고 지금의 세라 폴리가 된 그녀는 연기를 하고 영화를 만들고 책을 썼다. 앨리스가 멋진 성인으로 자란 것과 같은 성장이다.


책이 집에 도착하고, 이 책과 함께 일주일을 쭉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들떴다. 늘 새 책은 마음을 설레게 하니까. 일주일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직 나는 완독을 하지 못했다. 두 챕터를 겨우 다 읽었을 뿐이다. 결코 재미가 없어서, 난해해서 같은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과 가슴을 찌르는 장면들로 채워진 책이다. 인상적인 구절이 나올 때마다 책 끝 모서리를 접는 버릇 때문에 이 책은 귀퉁이가 울퉁불퉁해졌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한 편의 가슴 아프지만 감동적인 성장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꼭 세라 폴리가 다음 작품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 영화를 찍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세라 폴리라는 배우이자 감독은 타고난 재능으로 무난히 아픔도 없이, 열등감도 없이 창작을 해왔을 것이라고 쉽게 여겼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속내를 너무나 정확한 언어로 해부하며 써 내려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책의 제목처럼 ‘위험을 향해 달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게 얼마나 사람을 두렵게 하고 큰 용기를 내야 하는지 느끼게 했다.


에세이를 잘 쓰고 싶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 나는 그 모든 복잡한 감정을 당시의 그녀처럼 느끼지만 문장의 얼굴을 한 그녀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온갖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내가 에세이를 쓰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내면 깊은 곳에 굳게 닫힌 상자를 열기를 얼마나 주저했는지 반성하게 됐다. 저자는 르포를 쓰듯, 감정과 사실에 대해 솔직하게 써내려간다. 놀라운 것은 두려움과 안도감 사이,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그 사이 묘한 지점에 걸쳐져 있는 감정까지 세세히 짚어가며 글을 썼다는 것이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거나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정도까지 구체적일 수 있을까. 과연 배우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냥’은 없는 것이다.


몇년 전 세라 폴리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를 재밌게 보았다. 그 영화도 단순히 불륜이냐 사랑이냐를 이분법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새로운 사람에게도 끌리는 주인공의 감정을 차분하게 지그시 관찰하는 영화가 사랑스러웠다.

저자의 글과 영화에서는 차분한 강인함이 느껴진다. 사실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한 이유도 챕터마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 중 내가 한 번이라도 겪었다면 이만큼 다시 곱씹고 떠올리고 끝내 담담히 풀어낼 수 있을까. 아휴 머리 아파. 힘들어. 하면서 덮어둔 채 살았을 텐데. 물론 저자는 그 집요함과 강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이야기’를 숨겼다고 고백한다.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불가해한 인생의 갈피를 잡고, 자기 둘레에 서사를 쌓고, 혼돈 속에서 붙잡을 것을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 대답을 하는 나를 떠올리며 나는 내 잠재의식의 작용을 상상한다. 내 잠재의식이 그날 밤 그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것을 납득하려 애쓰고, 현재를 정상화한다. 그와 동시에 내게서 진짜 이야기를 숨긴다." - 127 p 


어떻게 이런 탁월하고 아름다운 에세이를 쓸 수 있었는가를 이어지는 내용에서 알 수 있다. 2017년 뉴욕 타임스에 기고했다는 글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고 서술한다.


“이런 일에 하나의 옳은 방법이란 없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자신의 방식으로 말하는 것. 이것이 자기 무력화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 있어서 내가 고수하는 개념이다.” 

“노골적이든 미묘하든 여성을 비하하는 모든 방식이 과거지사로 간주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이 실현되려면 먼저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마주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두려움, 무력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 이것들에 눌려 우리가 감수해 온 것은 무엇일까? 삶의 면면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외면하고 있을까? 마음속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용납한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140p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 쯤이면 나에게도 그런 강인함과 용기가 생길 수 있을까. 적어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이미 조금 자란 내가 과거의 나를 너그러이 바라봐줄 수 있을까. 힘들겠지만 저자가 해낸 것처럼, 이렇게 멋진 여성으로 성장한 것처럼 나도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피하지 않고 마주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는 ‘앨리스’ 공연을 끝내지 못한 나 자신을 자주 저주했다. 그리고 자주 자문했다. 만약 그때 남은 10회 공연을 마저 끝냈더라도 내가 여태까지 이런 불안에 잡혀있을까? 그랬어도 내가 밤마다 엉망진창이 된사춘기의 악몽에 갇혀있을까?

나는 고민했다. 나는 평생 해보지 못한 것을 해낸 학생들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여는 그들에게 내 공포를 밝히고, 그들의 눈앞에서 내가 그걸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94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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