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와 테우리 - 현기영 동화집 천천히 읽는 책 3
현기영 지음 / 현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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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세요???

관광지, 여행, 성산일출봉, 한라산, 비행기 등

제주도하면 우선 제일 떠오르는 단어가 제주도 여행일거예요.

오늘 소개할 책은 제주도이야기인데

조금은 무거운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할 역사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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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선생님의 동화로 읽는 제주의 삶과 자연 그리고 파란만장한 근현대사,

일제 강점기부터 8.15 해방까지

질곡의 역사를 통과한 제주 여연의 이야기 '해녀'와

소를 치는 노인의 회상을 통해 제주 4.3의 기억과 상처를 다룬 '테우리'

두 편으로 이루어진 동화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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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의 배후에는

슬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해녀의 딸로 태어나 이름은 따로 짓지 않고 그냥 간난이라고 불러

호적에 오른 이름은 간난이를 한자로 '양유아'

아버지는 그녀가 열 살 나던 해에 낚싯배 한 척을 사서 부리다가

 석 달도 못되어 그만...

아버지가 낚싯배를 사느라고 진 빚은 밭을 팔아서 갚고

 한창 뛰놀아야 할 나이에 간난이는 어린 동생을 업고

집안일을 돌봐야 합니다.

고생끝에 팔았던 밭을 되사들이게 되자 간난이는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되고,

마을 밖 여덟 살이나 어린 얌전한 공부꾼에게 시집을 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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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으로 화약의 원료인 감태라는 해초를

해녀들로부터 강제로 공출하고,

물자 조달을 강요당하고, 창씨개명에, 조선글을 읽는 것은 물론

조선말 하는 것도 금지.

징용, 군대, 탄광.... 그리고 해방

토벌대,불온분자, 감옥... 그리고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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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우리라는 말은 목동의 뜻을 가지고 있어요~

마을의 최연장자인 고순만 할아버는 마음에서 운영하는

공동 목장에서 소를 기르는 테우리랍니다.

일흔여덟 나이에 쓸쓸한 목장에서 홀로 테우리 노릇을 한다고

마을 사람들이 뒤에서 흉도 보고,

아들이 이제는 목장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라고 하지만

쉰다는 것이 죽음처럼 느껴지지요.

그래서그런지 할아버지는 해변 마을에서 사는 것보다

초원에서 사는 것이 더 좋아요.

60여 년 전의 그 4.3 사태에 친구들이 다 죽고

남은 친구라곤 현태문 할아버지뿐인데 다른 마을로 이사 가버려

더욱 친구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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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태 때 나이 많는 남자들도 나이 적은 남자들도

다 죽임을 당해 자신과 홀로 산 여자와 노인만 살아남았을 뿐....

고순만 할아버지는 그 사태 이후 사람들을 믿지 않았고,

그 사태 이후에 주어진 할아버지의 삶은 그냥 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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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와 테우리는 <거룩한 생애>와 <마지막 테우리>를 아이들을 위해

쉽고 부드럽게 고쳐 쓴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그때 제주 섬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요?

일제 36년간의 지배에서 많은 괴로움을 당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면서

삼팔선을 가운데 두고 남북이 둘로 나뉘어

이북은 소련의 지배, 이남은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우리 국민은 미소의 외세가 그어 놓은 삼팔선을 지우고

통일 한국을 강렬히 원했는데

단독 정부를 반대하는 국민운동이 전국에 크게 일어나

그중 제주도민의 저항이 가장 굳세었답니다.

당시 제주도는 육지에서 고달프게 생계를 꾸려 가던 사람들이 들어오고,

일본에서 돌아온 항일 운동가, 유학생, 젊은 사상가가 많아서

청년 운동도 다른 지방보다 활발한 진보적인 섬이 되었답니다.

제주도민이 6만이였는데 총인구가 대략 27만 명으로 불어난 까닭이지요.

단독정부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군경 토벌대의 민중에 대한 무거운 응징과 보복 작전이 벌어져

200여 개 중산간 마을들이 불길 속에 초토화되고,

주민들은 닥치는 대로 총살당하고,

불 태워 없애고, 죽여 없애고, 굶겨 없애는 이른바

삼광 전략의 무시무시한 대량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무려 3만 명 가까이 인명이 희생당했는데

그중에 청년들이 1/2, 어린아이들이 1/10이 학살되었다고 하네요...

2000년 4.3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어 4.3 기념관, 제주 4.3 국가 추념일,

제주 4.3 평화공원이 만들어져있는데

이제 제주도에 가면 4.3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원과 기념관에 들러

슬픈 제주 역사를 이해하면서 되짚어 볼 수 있는,

4.3 사태를 바로 알게해주는 고마운 해녀와 테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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