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0
이장욱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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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통에 옷을 태우고 온 날 밤에 연은 모수의 유령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모수가 아니라 모수의 유령이 책상 앞에 앉아서 무언가를 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일기를 쓰는 모양이구나.’ 연은 생각했다.”(p.149)

모수는 (일기)쓰기에 중독된 나머지 쓰기라는 행위 자체는 이 세계에 남겨 놓았다. 이 모든 것을 모수의 연인인 연은 아는데, 그녀가 모수의 일기장을 보관하고 있고, 아직도 조금씩 읽고 있기 때문이다.

"'모르지. 노트가 그냥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하자면...... 누가 이어서 쓸지도 모른다고.’”(p.143)

죽은 사람의 노트를 누가 이어서 쓸지도 모른다는 착각. 이것이 바로 모수가 유령이 된 이유이다. 모수가 쓴 글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텍스트이기 때문에 글쓴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연이 그것을 보관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녀가 모수의 일기를 읽고 있지 않다면 모수는 유령이 될 수 있었을까? 작가가 쓴 글은 그것이 쓰인 시점에 작가 자신을 제외하면 읽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작가'라는 호칭은 부정된다.

즉 작가가 독자의 승인을 받으려면 일단은 그가 쓴 글이 읽혀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작가는 유령 작가이고, 그들이 쓰는 것은 작가라는 전체 집단의 운명인 텍스트라는 점에서 하나의 고유명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

“‘모르지. 노트가 그냥 있다는 것만으로도. 말하자면...... 누가 이어서 쓸지도 모른다고.모수의 유령이라든가 나같은 사람이라든가 또 다른 누군가.’”(p.143)

또 다른 등장인물인 천의 경우는 어떠한가? 모수가 글쓰기에 중독된 작가라면 천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중독된 배우이다.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의 장르가 소설이라는 점에서 모수를 소설가, 천을 소설 속 등장인물로 치환해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자의적인 해석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내가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이라는 '소설'을 읽은 독자이기 때문이다......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소설가=모수는 첫장부터 죽어 있고, 소설 속 등장인물=천은 연출자로부터 더 이상 자신과 일할 수 없을 거라는 통보를 받게 된다.

"천은 개성적인 연기자지만 더 이상 자신과 함께 일할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것은 일종의 통보였고 선언이었다."(p.136)

소설이 불가능한 세계. 파편적인 정보들의 나열에 불과한 세계에서는 "그런 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설명이 없어도 누구나 순식간에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p.109)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장욱은 오늘날 망망대해=데이터 사회에서 소설이라는 장르가 여전히 가능할 수 있을지 묻고 있는 것 같다. <뜨거운 유월의 바다의 중독자들>은 소설인 동시에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던지는 하나의 질문이다. 뜨거운 파도다. 이에 대한 답변은 물론 소설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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