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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과, 그 미래 1 - L Novel
모리하시 빙고 지음, 이진주 옮김, Nardack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줄거리부터 말하자면...
나는 원래 스포일러를 최소화해서 설명하는 타입이지만,
이 책은 내가 표지와 제목에서 기대한 것과 내용이 너무나도 판이했기 때문에
혹시 나 같은 오해로 책을 집을 사람들을 위해서, 도입부 설명을 좀 자세하게 해야 겠다.
우선 책 소개에 적힌 시놉시스는,
'완전 불합리한 세 누나 밑에서 불우한 가정생활을 보내던 마츠나가 시로.
그 지옥에서 도망치기 위해 신설된 기숙 학교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그는 기대를 품고 히로시마로 향한다.
알지 못하는 지역, 낯선 언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나들과의 부조리한 나날에서 해방되었다는 고양감에 젖은 시로였지만, 룸메이트가 된 오다 미라이는 복잡한 마음을 가진…… 여성?!
시로와 미라이, 두 사람의 기묘한 공동생활이 시작된다─.
『시노노메 유우코』 콤비가 보내는 망설임과 애절함 가득한 청춘 스토리.'
이렇게 돼 있는데,
이것만 봐선 '아, 남자 기숙사로 들어갔는데 룸메가 여자구나! 로맨스 싹트기 딱 좋군!'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그게 맞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그 히로인이자 룸메이트인 여학생은, 정신이 남자다.
요즘은 자주 못 보는데, 과거 TV 재연 프로그램에서
가끔 그런 사례를 보곤 했다.
몸은 남성이지만 정신은 자신을 여성이라고 인식,
성정체성에 혼란이 오고, 남학교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명 '성동일성장애(GID)'!!!
그리고 이 작품의 히로인이 바로 그 유형이었으니...!
그녀는 몸은 여성이지만 정신은 남자,
남들한테는 여성이라는 것을 숨기고,
본인도 일단 몸은 여성이긴 하지만 남자라 생각하며 당당히 남성스럽게 살아가고,
나아가 여색을 밝히는 정도까지...ㅋ
어쨋든...
난 이 작품이 당연히 룸메이트 여성과 남주의 사랑 이야기라 믿고 기대했는데,
룸메이트는 정신이 남자라서 애인이 아니라
그냥 친한 동성 친구 사이 정도의 위치가 됐다.
더불어 남주도 여주의 몸이 여성이란 걸 의식하지만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역시 연모의 감정을 품는다고 하긴 애매한 실정.
게다가 여주는 다른 여학생들을 홀리며 다니고,
남주는 동급생인 다른 여학생과 썸타는 전개가 나와서
'주인공 둘이 사랑을 할 수는 있는 거야...?' 하는 걱정까지 든다...ㅋ
흠.
어쨌거나, 위의 설명은 '기대와 달라서 좀 아쉬웠던 부분'이라
조금 길게 운을 뗀 것이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우선 다른 서평에서도 자주 거론되듯 이 작품은 흔해빠진 하렘/뽕빨물과는 다르다.
남주에게 여성 캐릭터가 그렇게 얽히지도 않고
실제 장소를 모티브로 한 덕인지 작품 배경과 분위기도 매우 사실적이며
타 작품에선 지긋지긋한 '어이쿠! 넘어졌더니 가슴을 만져버렸네?' 하는 것도 없다.
실수로 히로인의 알몸을 보고 부끄러워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은 남주가 여주를 남성으로 대할지, 여성으로 대할지 곤란해하는
내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장치라서 나름 자연스러운 느낌.
학교 생활을 하고, 가끔 가족들 얘기도 하고,
남주와 여주가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등, 전개도 잔잔하고 차분한 느낌인데다
요리하는 모습과 대중교통 이용 과정이 제법 자세하게 서술되는 덕분에
일상적인 색체가 매우 강하다.
학교 생활을 하는데 무슨 심각하거나 웃기는 사건이 터졌다거나
어떤 별난 학생과 얽힌 소동 같은 건 없고,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탓에 돈을 스스로 벌어야 해서 알바를 찾는다거나,
기숙사의 밥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밥 먹을 시기를 놓치면 끼니를 어떻게 챙길지 고민한다거나,
누나한테 기념품으로 지역특산물을 선물해줘야 하는데 뭐가 좋을지 고민한다거나,
그런 소소한 이야기가 가득, 히로인이 '남들은 남자로 알지만 사실은 여자!'인 것도
사실 그렇게 큰 사건으로 다뤄지지 않아서(큰 사건이 되기 직전에 멈추는 느낌)
무척 소소하고 일상적이다.
게다가 배경이 히로시마라서 주인공들 외 지역 토박이들은 사투리를 구사하는데,
작가님이 사투리를 나름 찰지게 번역해주신 덕분에 제법 자연스럽고
작중 캐릭터들이 '그거 여태 표준어인줄 알았는데 우리 지역 사투리였어?!'
'아무리 여기 주민이라지만 노인들이 쓰는 사투리는 못 알아듣겠더라'
'여자가 사투리 쓰면 왠지 귀엽지 않냐'
라며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 말을 하는 걸 보니,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배경이 일본임에도 무척 친숙하게 읽혔다 ㅋㅋ
(그래도 '시급이 700엔이었으면 지금쯤 폭동이 일어났을 거다'라는,
2017년 최저임금이 6470원인 시점에서 보니 참 희한하고 부러운 것도 있더라ㅋ)
번역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난하다.
낫토, 오코노미야키 처럼 알 사람은 다 아는 일본 음식도 주석을 달아서 설명해주고,
'일본은 친한 사람은 이름을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성으로 부른다'라는 것도 주석이 달려서
일본 서브컬쳐를 접하지 못한 사람도 이 책은 무리없이 진입할 수 있는 편.
헌데 낫토를 주석 달아줄 정도의 친절함은 있으면서 '야키소바'는 주석이 없어서
조금 의아했으며, '단풍만쥬'를 '단풍만두'라고 번역한 게 아쉽다.
'만쥬'는 그 자체로 달콤한 일본 과자를 칭하는 용어이자, 만두의 일본 발음으로 알고 있는데
역자님은 후자로 번역하신 것.
게다가 이 '단풍만두'라는 게, 주인공이 '달콤한 과자'를 찾고 있을 때
'그렇다면 만두가 딱이지!'하는 식으로 대답이 돌아와서 무척 어색하다 ㅋㅋ
보통 라노벨을 읽어보면
한 권 안에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다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부제목이 '1년째, 봄'인 것처럼 1학년의 사계절 중 오직 봄만을 배경으로 했고,
위에서 말했다시피 큰 사건이 터지지도 않아서 '절정'이란 게 존재하지 않으며
작품 끝부분이 끝이란 느낌도 없다.
아니, 앞으로 계절도 많이 남아 있고, 1권이 완결권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보통 라노벨에선 후속권이 있다 해도 한 권에 사건 하나가 시작, 마무리되면서
속편암시는 적당히만 해주는 일이 잦은 걸 생각해보면
이 책이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난 이런 청춘 스토리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정리하자면,
우연히 같은 방을 쓰게 된 남학생과 여학생의 사랑 이야기인가 싶었으나
여학생 쪽이 성동일성장애라서 남성으로서 사는 캐릭터라
둘 사이의 로맨스가 애매하고,
큰 소동이나 사건 없이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이 주를 이루며,
아직은 1권이라 그렇게 크게 로맨틱한 파트는 없는 편.
하지만 확실히 다음 권 부터는 로맨스가 주를 이룰 느낌.
히로시마 토박이들의 말투는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돼 있으며
남주와 썸타는 여학생도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는 덕에
단 둘이 이야기할 때도 뭔가 구수한 느낌이 있음 ㅋ
요리하는 과정, 전철을 타고 목적지까지 과는 과정이
무척 상세하게 나와 있으며, 이게 소소한 전개와 더불어
사실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흔한 하렘물과는 다르게 주인공에게 그렇게 여성이 많이 얽히지도 않고
뽕빨을 노린 듯한 장면도 없거나 적은 편.
문체나 묘사가 단순해서 아쉽긴 하나, 그 덕에 가독성은 좋음.
이러나 저러나, 기대와 달라서 아쉬웠던 몇몇 사항을 빼면 만족스러운 작품.
주인공들의 사랑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니
다음 권을 사봐야 겠다.
P.S.
난 서평을 '책을 살지 말지, 읽을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을 위한 지침서' 정도의 용도로 쓴다.
그래서 한 가지 일러두고 싶은 것이, 바로 아래의 광고 영상.
작중 주인공이 히로시마 지역 특산물을 사려 하는데
뭘 사야할지 난처해한다.
그러자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누님께서 '카와도오리모치'가 딱이라고 추천하며,
갑자기 '어린 시절 그 광고를 볼 때마다 인형이 무서워서 트라우마였다'라고 얘기하신다.
소설을 보면 광고 영상에 대한 아주 짧은 설명만 지나가서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영상을 직접 찾아본 것이 바로 위 광고 영상.
확실히 어린 나이에 트라우마가 될 법도...ㅋ
책을 읽긴 했는데 광고 영상을 보진 못하신 분들,
아직 안 읽었지만 읽다가 '대체 무슨 광고기에 이렇게 반응하지?'하고 의아하신 분들은
위 영상을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