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14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에 앞서, 필자는 재미를 추구하고

 

그렇다보니 순문학보다는 장르소설이나 만화를 더 많이 본다는 것을 밝힌다.

 

즉, 이 서평은 '이 책이 재미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대한 평가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매하다.

 

재미가 있다고 말하긴 힘든데, 그렇다고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우선 좋았던 점은 다음과 같다.

 

모비 딕이 '내 이름은 이슈마엘.(어떤 판본에선 '나는 이슈마엘이다.')'로 시작된다는 것과

 

주인공의 이름이 이슈마엘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인데,

 

말로만 듣던 그 구절을 실제로 읽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고,

 

(마찬가지로) 말로만 듣던 '모비 딕', '에이허브 선장'이라는

 

캐릭터를 본 것 또한 즐거운 경험이었다.

 

 

또한 번역가 분의 세세한 주석 덕분에 캐릭터 이름에 얽힌 이야기나

 

작중 언급되는 장소, 작가인 멜빌이 잘못 표기한 부분 등을 알 수 있어서

 

책과 번역자 하나는 잘 골랐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초반부는 상당히 재밌게 읽었다. 

 

소설의 첫 부분은 주인공 이슈마엘이

 

포경선에 오르기 전에 묵을 여인숙을 찾아 헤매는 과정,

 

동료가 될 '퀴퀘그'라는 인물을 만나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부분이 몹시 재밌었다. ㅎㅎ

 

'퀴퀘그'는 식인종 출신에, 덩치는 크고, 작살의 날카로운 면으로 턱수염을 밀고,

 

아침엔 그 덩치와 힘으로 주인공을 와락 껴안은 채 코를 골고,

 

영어가 어색해서 말투가 어눌하고

(예 : "너 누구냐, 말 안하면 나 너 죽인다" "나 너 잘 안다" "너 여기로 들어온다")

 

그러면서 거칠거나 사납진 않고 심성이 올곧은 모습 등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읽으면서 계속

 

"나름 세계적인 고전 작품에 이렇게 귀여운 캐릭터가 나와도 되나?"

"내가 지금 고전 읽고 있는 거 맞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릴 정도로 퀴퀘그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ㅋㅋㅋㅋ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요즘 장르문학이나 만화에 내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ㅎㅎ

 

 

또한 포경선에 대한 정보나 고래에 대한 지식도 무척이나 자세해서

 

고래를 찾기 위해 망루에 올라가 있는 동안은, 경치 덕에 기분은 좋지만 무척 외롭다든가,

 

배에는 '8점종'이란 게 있어서 4시, 8시 12시마다 종이 울린다든가 하는,  

 

평소엔 잘 모르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즐거웠던 부분은 위가 전부다.

 

아쉬웠던 부분을 살펴보자면,

 

우선, 재밌었던 초반이 지나가면 그 다음부턴 지루해진다.

 

아까 '포경선에 대한 정보나 고래에 대한 지식도 무척이나 자세'하다고 말했었는데,

 

그게 문제다. 작품 중간중간에 포경선의 고증 정보나 고래에 대한 박물학적 지식을

 

낱낱이 보여주는데, 이게 너무 길고 자세하고 복잡해서 지루하다...

 

대체 배에서 무슨 일이 생기고, 모비딕은 언제 만나게 될지가 궁금한데

 

이야기 진행이나 인물 행동 묘사가 아니라 고래, 포경선 정보만 가득 나타난다.

 

그래서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소설인지 사전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

 

당장 책 소개를 보니

 

"고래와 포경에 대한 박물학적 지식을 한데 어우른 파격적인 형식으로 당시 평단과 독자들에게 외면당했지만"

 

이라는 문구가 있던데, 아무래도 당시 평단과 독자들이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글이 너무 복잡하다.

 

서술 한 문장에 수식어가 대량으로 들어간 경우가 많아서,

 

가뜩이나 포경선, 고래에 대한 정보 때문에 복잡할 지경인데

 

글과 말이 너무 복잡해서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이는 내가 원래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고, 머리가 나쁜 탓도 있겠지만

 

최근 읽은 소설들 중 문장이 가장 읽기 힘들었던 것 같다.

 

 

 

또한, 그토록 매력적인 '퀴퀘그'라는 캐릭터가

 

막상 고래잡이를 위해 출항한 이후론 비중이 대폭 감소한다.

 

항해사나 선장 등의 뱃사람을 서술하고 심리묘사를 하는 통에

 

퀴퀘그가 낄 틈이 없다... 고래잡이 장면은 ('상'권 기준으로) 한 장면 뿐인데

 

그 장면 외 일상 파트에서 퀴퀘그가 웃음을 주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권에선 좀 괜찮아지길 기대 중...

 

 

 

다음은 작품의 재미와는 별개의 것인데,

 

인종차별적인 느낌이 많다...

 

퀴퀘그가 숭배하는 우상의 모습을 보고, 주인공이 '검둥이'라고 칭하는 것은 기본이요,

 

그 무시무시한 모비딕의 피부가 흰색임을 서술할 때  

 

'예로부터 흰색은 고결함, 숭고함의 상징이었다'라면서

 

고대부터 흰색이 들어간 것들을 예시로 든다.  

 

그런데 갑자기 '백인은 다른 유색인종을 지배할 수 있는 이상적인 인간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중엔, 포경선에 쓰이는 밧줄이 두 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잘 안 쓰이는 밧줄)는 아랍인 같고,

 

다른 한 종류(잘 쓰이는 밧줄)은 백인 같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실망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일단 '고전'이니까 재미가 없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고,

 

난 원래 영미소설 번역본은 문체가 눈에 잘 안 읽히는 타입이라

 

문장이 잘 안 읽히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토록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산재한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이게 작품이 나온 시기상으로 어쩔 수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멜빌이 인종차별자인지 모르니 더욱 답답할 노릇...

 

하지만 작품 중간에 

 

'고래의 모습을 완벽히 그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래를 완벽히 그리려면 포경선에 오를 수밖에 없다' 라며,

 

사진과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시점으론 우습게 들리는 서술이 나오는 걸 보면,

 

작품이 나온 시기가 원래 차별이 당연시되던 사회이겠거니 하고 생각해야 하려나...

 

 

 

 

정리하면, 주인공 캐릭터는 매력적이고 주석도 디테일하고

 

작품에 드러난 지식 정보도 무척이나 자세하지만,

 

그 매력적인 캐릭터는 출항 이후론 비중과 캐릭터성이 거의 죽어버리고

 

지식 정보가 지나치게 많고 복잡해서 지루하다.

 

그러니 재미, 모험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일단 '하'권 까지 다 보고 제대로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