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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밖에 들리지 않아
오츠 이치 지음, 서승연 옮김 / 나무와숲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꽤 이름을 많이 들어본 작가 '오츠 이치'.
그의 작품 중 처음 읽어본 책이다.
책을 읽게 된 경위는 좀 단순한데,
아는 사이트에서 '어릴 때 읽은 보라색 표지의 책을 찾습니다. 콜링 유 였던 것 같아요'
라는 글을 봤다. 난 내가 모르는 책일지라도 누군가를 돕는 걸 좋아하는지라
어떻게든 제목을 알아내려고 정보를 찾아보다가 이 책을 찾아냈다.
그래서 혹시 이 책이 아니냐고 답변해주면서 고맙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다... 괜시리 나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읽게 됐다.
개인적으로 단편, 초현실적 소재를 좋아하는데,
그렇다보니 초현실적 소재를 가진 단편집을 제일 좋아한다.
그리고 이 책이 바로 그러했고, 세 단편 모두 초현실적인 소재가 나타나서
몹시 만족했다. 하지만 꼭 읽는 게 즐겁지만은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게 세 단편이 모두 뒷맛이 암울하다고나 할까...
일단 소재 자체는 신기해서 확실히 흥미가 간다.
실제로 타인과 통화가 되는 상상 속 전화기,
누군가의 상처를 자신에게로 옮길 수 있는 소년,
노래를 부르는 소녀 머리가 달린 꽃 한 송이.
하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인물들을 보면 어둡다...
외롭고, 고통받고,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세 단편 모두 소재도 배경도 주인공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이 작품은 '상처받은 자들의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그 증거인지 세 단편 모두 꼭 병원이 나온다...)
그렇다보니 초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하지만 그 속 인물의 이야기 자체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실적이라 더욱 암울하다...
그 와중에 세 단편 모두 후반부에 극적인 전개나 반전을 넣어주고,
그 덕분에 의외로 작품을 읽는 재미는 제법 충분한 편.
사람마다 엇갈리겠지만, 내 눈엔 주제, 소재, 스토리 모두 만족스러웠다.
다만 꼭 장점만 있는 건 아닌데, 단점은 솔직히 번역 쪽에서 문제가 된다...
너무 직역체로 적은 듯한 문장이 적지 않은 것이 문제인데,
이를테면 어린 아이들끼리 대화를 주고 받을 때는 가볍고 단조로운 어조를
사용하는 게 보통일 것이다. 특히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면서 놀리는 말투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등에 난 흉터를 보고 놀리는 아이가
그 흉터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너의 그 반점, 아빠한테 당한 거라면서?"
아마 이 대사를 보고 '전혀 문제 없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의'라는 부분이 무척 부자연스러웠다...
뭐랄까... '그거 내가 안 그랬어!' 라고 잡아떼는 대사를,
'그건 내가 그러지 않았어!' 라고 쓰는 느낌? 둘 다 문법적으로는 맞지만
대사의 현실성을 고려한다면 역시 '너의' 보다는 '너'가,
'그건' '그러지 않았어' 보다는 '그거' '안 그랬어'가 자연스럽지 않나 싶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역시 직역체 때문에 생긴 부분이다.
일본 서브컬쳐, 특히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 사람들이라면
등장 인물들이 강하게 부정할 때 '치가우(ちがう)!'라고 소리치는 걸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직역하면 '틀려!' '달라!' '잘못됐어!' 정도로 해석되는데,
상황과 문맥을 맞추면 한글로는 보통 '아니야!' 정도로 번역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번역자 분은 '틀려!'라고 번역하셨다...
문맥에만 맞으면 상관 없겠지만 아쉽게도 맞지가 않는다...
본문에서 이 직역이 나온 부분을 좀 두루뭉술하게 발췌하자면,
"너, 무슨 일 생긴 거지?"
"틀렸어!"
"그게 바로 나야."
"틀려!"
정도 쯤 된다... 발췌문만 놓고 보면 잘 안 와닿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틀려'보다는 '아니야'를 넣어야 더 자연스럽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째서인지 역자 분이 '쫓다'를 절대 안 쓰시고 전부 '좇다'라고만 쓰시던데,
꿈, 이상을 추구한다는 의미 말고 정말 '시선은 ~을 쫓고 있었다'라고 할 때도
'좇다'라고 써버려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결론은, 글 자체는 매우 마음에 들었으나 역자 분이 살짝 아쉬웠던 케이스.
하지만 나온지 10년도 더 된 책이니 그냥 시대가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