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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배수아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적인 향기가 가득한 책을 오랫만에 읽어보리라 혼자 다짐아닌 다짐을 하며 손에 쥔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산책자라...산책이라는 것은 몸을 움직여 밖을 거니는 행위니만큼 그자체가 온전한 사색의 시간이 될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책, 산책자에서 작가의 사유를 마음껏 엿볼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다.
무려 42편의 소설이 실려있는 이 책은, 사실 정확한 스토리와 짜임새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나의 긴 호흡으로 빨려들어갈듯한 스토리에 익숙한 나로서는 적잖히 당혹스러운 스토리임에 틀림없었다. 한편씩 읽어나가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나, 마치 행간을 읽지 못하는 나의 우둔함을 대면하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다행인것은 아~!하는 깨달음 혹은 흥분의 감탄사가 터져나오는 글귀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번이라도 가난하고 고독한 신세를 경험해본 자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타인의 가난과 고독을 더 잘 이해한다.'
가끔 내가 생각했던 부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글귀다. 어릴적 가난은 그저 기억속에 웅크리고 있는 정도가 아니다. 뼈마디 마디에 새겨지는 주홍글씨이자, 손끝에 박히는 인이다. 시간이 훌쩍 지나,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고 해도, 가난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이 부정적인 기억이자 감정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나름의 결정을 해야한다. 부정에 잠식될것인가, 부정을 뒤엎는 긍정으로 맞설것인가.
후자의 맥락으로 저 문장을 이해하며, 주책맞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들은 아무리 상상하고 상상해도 흙수저의 인처럼 박힌 가난을 이해할수없다. 그저 상상이라는 한계를 벗어날수 없는것처럼.
책의 전반에서 느껴지는 우울감이 작가의 실제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정신적 고통으로 글을 쓰지 못했던 시간, 작가의 인생에서 그 시간은 손끝에 박힌 인일테다. 언젠가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려한다. 행간을 읽을수있는 지혜가 그때는 내게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