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지원 - 글쓰기의 혁신과 새세상 만들기 ㅣ 창비 한국사상선 10
박지원 지음, 김혈조 편저 / 창비 / 2026년 2월
평점 :
불안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으려는 고집, 믿음대로 될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 후회는 나중 일이고 이 순간만 지나면 된다는 식으로 버텨왔다.
집안 내력이니 내 불안도 어지간히 뿌리 깊은 편이다. 나이 들면 무뎌진다는 거짓말을 믿었다. 허황된 바람이었다. 나는 쉴 틈 없이 흔들렸고 수시로 휘청거렸다.
나를 의심한다는 건 타인을 의심하는 것보다 몇만 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옳다고 믿어온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나를 지탱해 온 것들마저 무너질 것 같았다.
창비에서 한국사상선을 펴내었다. 내게 인연이 닿은 것은 '하필' 연암이었다. 마치 내 불안에 공명하듯, 모르는 척 아닌 척하던 내게 말을 걸어왔다.
연암 박지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학창 시절 배웠던 실학자, 『열하일기』를 쓴 사람,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북학파의 대표적인 인물. 내가 아는 연암은 그 정도였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그가 무엇을 주장했는가 보다 무엇을 의심했는가에 자꾸 관심이 갔다.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을 의심하고, 익숙한 세계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청나라는 오랑캐의 나라였다. 적어도 당시 조선의 지식인 상당수에게는 그랬다. 그런데 연암은 그곳에서 배울 것을 찾았다. 양반들이 내세우는 명분보다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였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권위를 뒤집어 놓기도 했다.
그에게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눈이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려 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의 글에서는 그런 태도가 읽혔다.
나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왔다. 낯선 것을 경계하고, 아는 것에 기대고, 이미 내린 판단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것이 얼마나 불안정한 믿음인지 알면서도 말이다.
물론 연암이 의심했던 세계와 내가 의심하지 않으려던 세계는 전혀 다르다. 그는 시대의 관습과 권위를 문제 삼았고, 나는 내 안의 오래된 믿음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을 읽는 동안 자꾸만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 내가 옳다고 믿는 것 가운데, 정말로 의심해 본 것은 얼마나 될까.]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에 가는 낯선 사람을 붙잡고서라도 물어봄이 옳다. 부리는 종복이라 하더라도 나보다 한 글자라도 많이 안다면 우선 그들에게 배울 것이다. 자신이 남보다 못함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이는 종신토록 고루하고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 자기를 가두어 놓는 것이다. (130쪽)
이 문장 앞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다.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해 불안했던 것도 같다.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을 확신하려 애쓰느라 정작 알아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비로소 물을 수 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를 뒤늦게 생각했다.
연암이 살던 시대와 지금은 다르다. 그가 보았던 청나라의 수레와 벽돌, 양반들의 허위의식은 오늘의 내 삶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익숙한 세계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아는 세계 안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만큼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의심은 불편하다. 믿었던 것을 다시 살펴야 하고, 때로는 내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의심하지 않는 삶이 반드시 평온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오래된 불안이 사라질 리 없다. 여전히 나는 아는 것에 기대고 싶고, 내가 내린 판단이 옳기를 바란다. 다만 그 마음이 꿈틀거리면 한 번쯤 물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정말 그런가!]
어쩌면, 의심하는 마음은 불안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갇히지 않으려는 작은 시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