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배심원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 1
존 그리샴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미국에는 매년 한 권씩 베스트셀러를 내놓는 작가들이 있다. 살인으로 범벅이 된 범죄추리소설, 잘난 남자가 여자한테 믿을래야 믿기지 않을만큼 헌신적으로 반하는 연애소설 등등. 존 그리샴은 그런 다른 작가들에 비해 아주 담백하고 산뜻하며 인간미 넘치는 법정소설을 쓴다. 그렇지만 법정을 멀고 겁나게만 느끼는 우리에겐 그만큼 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드디어 이 책도 번역되었다.

전작들에 비해선 기발하고 톡톡 튀는 편이다. 미국에서 판결은 전문법조인인 판사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단이 내린다. 일류변호사들은 이들에게 현란한 언변으로 유리한 증거를 제시해서 설득하고 판사는 교통순경처럼 규칙에 어긋나는 변론을 제지한다. 배심원단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건전한 시민들로 이루어지며 긴 재판기간 동안 방청한 뒤 승자를 결정해준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문법조인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배심원의 선출 과정에서부터 법조인들은 갖은 방법을 써서 보다 유리한 인원을 뽑는다. 재판 동안에도 결격사항이 있는 배심원은 탈락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광고기획처럼 사람의 심리를 세세히 분석해서 배심원을 감정적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내내 발휘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전문법조인들의 머리 위에서 한수 앞선 전략으로 배심원을 조종할 수 있다면? 아주 오랜 기간과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누가 그런 일을 할까? 이 책은 여기서 착안해서 살을 붙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어느 영리한 젊은이가 배심원을 조작해서 대박을 터뜨리는 것만으로는 뭔가 미흡하겠지만, 보다 큰 다른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적의 돈을 챙겨서 튀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밉지만은 않은 소악당같다. 존 그리샴이 내내 그리는 주인공들은 이런 모습이다. 거대한 부패에 맞서서 자기 생존을 지키면서 활약하는 현대의 다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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