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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
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평점 :
최근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장르를 알게 되어 마가릿 애트우드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참신한 설정 속에서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디스토피아 소설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소설 <창백한 말>은 또다른 디스토피아 소설로 느껴졌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3명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어 나오고 서로의 사건들은 얽혀있다.
'좀비'라는 제재는 처음이었다. 사실 무서운 것을 못보는 소심쟁이이기에 공포영화도 제대로 못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나 드라마같은 시각매체보다 글로 이루어진 책이 더 많은 긴장감과 공포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글만 있기에 독자의 상상에 전적으로 달려있고,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좀비에 대한 이미지, 사람들에 대한 공포 등등이 이 책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켰다.
요즘 대부분 서양 소설을 읽었기에 주인공 이름이 한국인인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게다가 디스토피아 세상이 바로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니. 그래서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세영, 수진 등 <부산행>이 떠오르면서도 <워킹데드>의 좀비 이미지를 겹치게 하는, 독특한 소설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좀비 바이러스로 인해 정립된 하나의 계급제도이다. 이것이 디스토피아로서의 현실을 더욱 부각시킨다. 사람의 이기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권력욕이 얼마나 끝없이 인간을 추락하게 하는지를 보여준다. 크게 좀비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 보유자, 그렇지 않은 면역자로 나뉘어 이들의 생활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아주는 약을 주기적으로 먹어야하는 보유자는 그 약값을 대기위한 직업을 가지기에도 한계가 있다. 반면, 면역자들은 보유자들의 공간인 남쪽과 반대되는 북쪽에서 상대적으로 유토피아적인 삶을 영위한다. 가장 모순된 점은 보유자들을 혐오하면서도 그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행위 그 자체이다. 이것이 사람의 이기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처음으로 읽어본 좀비 소설이었다. 사실 장르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많이 접해보지 않았는데 이번 소설을 통해 인간 심리를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신선한 소재와 그 배경이 한국이라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