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행동사전 - 당황하지 않고 새 시대를 사는 법
김병권 외 지음 / 산현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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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과 부제가 좋았다. <기후위기 행동사전: 당황하지 않고 새 시대를 사는 법>. 기후위기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예전과 다른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을 전제하기에, 자연히 우리는 어떻게 새롭게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맞닥뜨리게 된다. 삶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했던 것들을 떠나보내고 나와 우리 공동체가 새로운 규칙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일텐데, 변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이 어떻게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줄까 기대했다.


해양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이 책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시선은 빙하와 영구동토, 기후재난, 식량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지금 지구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설명한다. 지구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그게 왜 인간의 활동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설명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지구의 역사에서 지금이 얼마나 예외적인 시기인지, 그리고 그 예외적인 일이 인간 종의 활동에 의해서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자들은 그 책임에 대해 단순히 인간 집단 전체에게 있지 않으며, 생산주의적이고 성장주의적인 경제체제 자체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론에 동의하면서, 그 결론에 이르기까지 설명을 더 듣고 싶었다. “왜 인간 사회는 그런 경제체제를 가지게 되었는지?”, “왜 우리는 이런 특수한 시기에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은 기후위기가 지구라는 시스템의 어떤 원리에 의해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명쾌하고 훌륭하게 해낸다. 그런데 인류가 어떻게 그 시스템의 버튼을 잘못 눌러서 기후위기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2부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시도한다. 그린뉴딜과 기후정의,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탈성장, 도넛 경제, 순환 경제와 같은 경제 체제의 전환에 있어서 어떤 전환이 필요한지 큰 그림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RE100, 그린택소노미 등 실행되고 있거나 논의되고 있는 기후위기 대응정책들에 대해서 다룬다. 꼭 알아야하는 정보들을 잘 선별해서 소개해주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앞에서 이야기한 ‘전환의 큰그림’과 아래의 정책들에 대한 설명이 어떻게 연결되어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모호함을 느꼈다.


기후시민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 다루는 마지막 장은 책의 모든 부분 중에서 가장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충실하게 답하고 있다. 우리의 세계관, 라이프스타일, 소비와 돌봄, 식생활, 그리고 기후소송과 시민불복종이라는 정치적 방법론의 사례들까지 잘 정리해낸다. 우리는 이 장을 읽으면서 앞에서 다룬 학문적이고 정책적인 이야기들과 나의 삶의 이야기를 잘 결합해낼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모순처럼 보이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기술주의를 경계하는 동시에 탄소포집기술에 대해서 중요하게 이야기하기, 탄소환원주의를 경계하면서 생물다양성과 원시림을 이산화탄소 흡수원으로만 바라보기,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연서비스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과학적 예측을 중시하기.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저자들 간에 디테일에 대한 토론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여겨지는 부분들이 이런 부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후위기 교과서의 역할을 톡톡히 잘 해낼 것 같아 보인다. 서문에서 저자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신뢰할 만한 정보나 정책, 행동 제안이 일목요연하게,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는 콘텐츠는 찾기 어렵다. 즉, 교과서는 찾기 어렵다. 한국적 상황까지 함께 조망한 기후위기 교과서라면 더욱더 그렇다. 우리가 빚고자 한 책은 바로 이러한 꼴의 기후위기 교과서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한 장 한 장을 넘기면서, 진정으로 ‘이러한 꼴의 기후위기 교과서’를 만들고자 한 저자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느낀 아쉬운 지점들은 이 책 자체만의 아쉬움은 아닐 것이다. 기후위기를 마주하는 보다 너른 관점을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곳에서 사회적 토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이 책은 충분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책을 만들어준 저자들에게 감사하며, 나도 기후시민의 한 명으로써 더 목소리내고 행동하기를 다시금 다짐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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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이냐 삶이냐 - 팬데믹 시대의 사유
장 피에르 뒤피 지음, 이충훈 옮김 / 산현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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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분노로,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하여”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국회 정문에 자전거 자물쇠로 목을 걸기도, P4G 서울정상회담이 열리는 동대문디지털프라자 앞에서 녹색 물감을 뿌리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유심히 살펴본다. 결연하게 굳어 있는 얼굴들, 긴장하고 있던 걸까?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터뜨리며 목이 터져라 호소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 안는다. 등을 토닥이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준다. 재앙을 예고하는 사람의 얼굴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해 보인다. 사랑과 분노는 이렇게도 함께 있을 수 있구나. 그렇게 나는 멸종반란을 만났다.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장 피에르 뒤피는 임박한 파국의 도래를 경고하는 자의 역할에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불행이 닥칠 것을 예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힘, 불행이 다가오지 않게 할 수 있는 힘을 깨우려고 한다. 그는 한스 요나스와 귄터 안더스를 인용한다. “불행의 예언은 그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피하고자 행해졌다.”, “우리가 묵시론자인 것은 오로지 틀리기 위해서이다. 매일 다시금 그곳에 존재할 기회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우스꽝스럽지만 항상 서 있어야 한다.” 위기를 경고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고가 실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울부짖는다. “우리는 멸종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위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그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의 기후 단체들은 연달아 직접행동을 하고 있다. 명화에 물감을 뿌리고, 자동차에 밀가루를 붓는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이상해. 너희들이 더 폭력적인 거 아냐?”,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알겠는데, 수단이 잘못되었어.” 하지만 편하게 느껴지는 말은 우리가 이미 충실히 따르고 있는 권력의 문법을 용인하는 말일 따름이다. 잘못된 것은 수단이 아니라 그 수단을 거부하는 사회다. 듣지 않는 귀는 복종하는 귀이며, 읽지 않는 눈은 종속당한 눈이다. 폭력적인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몸은 폭력을 바라보지 않고 폭력이 아닌 것을 폭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싸우지 않는다. 대신, 들리지 않는 비명에 집중한다. 보이지 않는 학살을 찾아낸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비명과 학살을 막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힘을 응시하는 일이다. 그것만이 절멸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이며, 생명을 지키려는 행동이다.

“생명을 보호하는 행동이란 정확히, 생명을 주어진 사실로 다루고, 그것을 자기 필요를 채우기 위해 제멋대로 가공하는 재료로 환원해 버리는 생명 권력을 일리치가 고발하면서 했던 바로 그 행동이다. 일리치의 주장은 생명을 ‘우상화’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생명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가 그랬다. 세상은 한편 너무나도 슬프고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풍요롭고 감사하다고. 사실 아픔과 풍요는 늘 함께 존재해왔다. 세월호가 전복되고, 역병이 돌고, 이태원에서 죽음의 축제가 열릴 때조차. 슬픔과 감사는 분리되지 않는다. 평화로운 일상을 전쟁이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평화 속에 전쟁이 있고, 전쟁 속에 평화가 있다. 안전한 공동체는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공동체가 아니라 갈등을 투명하게 대하는 공동체이다.

모든 생명이 무너져내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명을 지켜야 할까? 생명과 죽음이 화해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죽음은 무엇일까? 늘 우리 안에 살아 숨쉬는 생명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을 가르쳐준다. 생명은 이렇게 말한다. “무기력과 냉소와 좌절과 슬픔과 고통 또한 나의 모습이야. 그러니 그것을 거부하기보다는 어떻게 잘 아파하고 외로워할지 고민하자. 수백의 노동자가 죽는 세상에서, 수억의 돼지들이 학살당하는 세상에서, 가덕도와 새만금과 강정이 파헤쳐지는 세상에서 우리 무기력해 있지 말자. 그들이 마땅히 향유할 죽음을 취할 수 없게 하는 세상에 분노하고 사라져가는 것들과 그 속에서 오염되어가는 우리를 사랑하자.”

생명을 망가뜨리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파국의 세상 속에서 태어난 우리가 파국의 바깥에서 죽을 수 있기를.

“박애, 그것은 언젠가 자신도 예외 없이 죽을 운명인 형제요 자매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산현재 출판사의 서포터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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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
현요아 지음 / 핑크뮬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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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강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화할줄 아는 사람이다."
언젠가 김영하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다. 진심으로 동의한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그저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한다면 우리의 기억은 아주 미련해서, 많은 순간들을 잃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기억들을 언어라는 틀 위에서 짜낼 수 있다면 그 어떤 불완전한 순간도 아름다운 진주가 되어 단단하게 남을 것이다. 단단해진 기억들은 결국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현요아 작가님은 부지런히도 그 작업을 해내신 것 같다. '기적처럼 같은 시기에 머물다 가는 동료'에게 선뜻 용기를 내어 준 작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떠오르는 노래의 가사로 짧은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어쩌면 헛된 걸 좇듯이 허겁지겁
달려온 그날들은
어찌나 그리도 허무하게 흩어져 버렸는지
난 이제 높다란 나무 밑 벤치 위에 앉아
하늘만 바라봐요
말없이 한참을 안아줄 이토록 따뜻한 햇볕 아래
꿈꾼다는 건 좋은 거라
그렇게 얘기들 하죠
하지만 부디 잠깐만 날 내버려 둬줘요
날 내버려 둬줘요
<쉼표>_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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