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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프레드릭
베크만, “일생일대의 거래”, 2019, 다산책방
개인적으로 책에 밑줄을 긋고, 때론 진하게 형광펜을 칠하고, 모퉁이를 마구 접는 등 험하게 다루면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책은
관상용 종이 묶음이 아닌,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들 마음속에 박혀야 할 활자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예쁜 책의 겉모습만 보고 소장욕이 발동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역시 인간에게 시각적, 미적 자극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인 것인지, 이 책의 예쁜 표지와 따뜻한 일러스트를 보니 서둘러 책장을 펼쳐들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분량이 매우 짧다. 많은 여백을 남겨두고 본문이
페이지 정가운데에 큰 글씨로 쓰여있다. 그림도 꽤 많고, 두께도
얇아서 동화책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외적 측면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책의 색감과 일러스트, 그리고
종이였다. 종이로 된 겉표지를 벗겨내면 양장본 표지가 드러나는데, 선명한
보라색이 참 예쁘다. 전체적으로 연한 분홍, 보라 색감으로
통일되어서 읽는 동안 포근했다. 일러스트는 파스텔톤의 여러 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읽는 내내 눈이 즐겁다. (일러스트가 있는 페이지를 따로 뜯어 엽서처럼 보관하고 싶기도 했다.) 또한
책이 굉장히 두껍고 매끈한 종이로 인쇄되어있다. 개인적으로 빳빳하고 매끈한 종이를 만지는 것을 좋아하는
괴상한 취향이 있어 즐겁게 독서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손가락으로 뽀드득 거리면서 읽는 것은 정말
재밌는 일이다.)
소설은 편지 형식을 띠고 있다. 엄청난 성공을 이루었으나
가족과의 관계는 잘 가꾸지 못한 한 부자가 죽음을 앞두고 그의 아들에게 말을 건네는 식으로 서술된다. 주인공
부자는 매우 속물적이고 이기적이며, 보통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문장이 편안하다. 그런 문장들과 포근한 일러스트가 합쳐져 따뜻한 독서 경험을 도와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이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 부자가
그런 자신의 태도에 당당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 있다는 점이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생 전체를 부정하는 일은 너무나 암울할 것이다. 후회에 가득 찬 시선으로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닌, 자신이 쌓아 올린 업적을 인정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 <데미안>에서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도둑 중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도둑 한 명을 옹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부자는 정말 재수없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그
모습이 멋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분량이 짧아서 그런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따지려 드는 성격이라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개연성을 중시한다. 그래서 개연성이
부족하면 그 스토리에 대한 평가가 전체적으로 부정적이게 된다.
시점의 서술 순서가 일관되지 않아서 처음 읽을 땐 많이 헷갈렸고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읽으며 무엇에 대한 서술인지 파악했지만, 여전히
무슨 뜻인지 명확하지 않은 구절들이 조금 있다. 앞서 말했듯 이해하지 못하면 굉장히 답답해하기 때문에
그 점이 아쉬웠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사실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윤곽 있게 전해지는 것은 ‘시간이 있을 때 가족에게 잘 하자’인 것 같다. 부자가 자신의 삶을 크게 후회하지도 않고, 마지막까지 그는 그였다.
본인은 비관적, 속물적,
이기적인 인간인지라 크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다만 확실히 가족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본인같이 감성이 메마른 사람에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을 책이고, 감수성
풍부한 사람들은 마음에 잘 와닿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