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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그리고 이후 500년 - 16세기 유럽부터 21세기 한국까지
라은성 외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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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실하셨으니, 우리도 그분 앞에 신실해야 합니다. 역사가 그 증인이 되어 줄 것이며, 우리의 거울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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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개혁신앙이다
라은성 지음 / 페텔(PTL)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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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나오길 기다렸다. 이 책보다 개혁신앙이 무엇인지 잘 설명한 책은 지금까지 절대 없다! 이 책은 이론의 책이 아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인생의 말년을 보내면서 ‘인생은 내가 살아보니 이렇게 사는 것이야’라고 하는 것과 같은 고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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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기독교강요다 (연구자용, 반양장) - 전4권 이것이 기독교강요다
라은성 지음 / 페텔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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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드디어 나오다니..모든걸 팔아 평생 간직할 대작이다. 연구자용이라 하여 신학자나 목사용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기독교강요 자체가 신앙입문을 돕기 위해서기 때문이다..이 책을 받아볼때 얼마나 떨리고 행복할까? 주문은 했으니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마치 선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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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종교개혁자 얀 후스를 만나다
토마스 부타 지음, 이종실 옮김 / 동연(와이미디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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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종교개혁자 얀 후스를 만나다] / 토마스 부타 / 이종실 / 동연 / 2015.05.15.

    얀 후스.. 이 책은 후스의 서신과 그의 생각, 설교 등을 모은 것이다.

​부록으로는 체코 종교역사와 프라하에 서려있는 후스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이 있다. 부록과 관련된 대한 자세한 내용은 [걸어서 가보는 프라하 종교개혁 이야기] / 이지 오르떼 / 김진아 / 한국장로교출판사 / 2012.07.17를 참조하면 더 좋을 것이다.

 [걸어서 가보는 프라하 종교개혁 이야기]는 이 책의 번역자인 체코의 이종실 선교사님의 사모님이 번역한 책이다. 김진아 사모님은 한국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신 분으로 체코 프라하 찰스대 한국학과 교수이시다.  [체코 종교개혁자 얀 후스를 만나다]의 번역자이신 이종실 선교사님은 장로교 통합 측 총회 세계선교부 간사로 계시다가 체코슬로바키아가 아직 공산국가였을 때 직접 선교의 현장으로 뛰어들으셨다.  약 20여년전 한국인 최초로 동유럽의 공산국가인 체코슬로바키아로 선교사로 가셨다. 처음에는 경제적으로도 언어나 문화적으로도 많은 고생을 하셨는데, 이제는 체코 형제개혁교단 총회 목사면서, 체코 프라하 꼬빌리시 한인교회 담임 목사이기시도 하다. 체코슬로바키아가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또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뉘게 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겼으면서도 한국교회와 체코교회와의 많은 가교 역할을 하신 분이시다. 

 

    올해가 후스 순교 600 주년이 되는 해이다. (1415년 7월 6일 순교)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더욱 기념비적인 책이다. 

  

  후스는 루터보다 약 백년전에 종교개혁을 한 전종교개혁자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허나 후스가 어떻게 사역을 했으며 어떤 글과 설교문을 남겼는지는 번역된 자료가 없어서 그저 막연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옴으로서 얀 후스의 사역을 조금이라마 알게 되어 기뻤다. 또한 얀 후스가 콘스탄츠 공의회로 가면서 어떤 심정으로 가게 되었는지, 가는 도중에도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후스가 남긴 편지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아프고, 그가 왜 죽음의 길을 택했는지, 또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가 남긴 편지를 볼 때, 글자 한자 한자 가슴이 먹먹함을 느끼게 했다. 또한 체코 개혁교회의 순교의 역사를 보면서 히브리서 11장을 익는 것 같았다. 교회사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앙의 순결성이 지키려고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눈물나는 일인지 고개가 저절로 숙여질 것이다.

 

   얀 후스(Jan Hus, 1372? ~ 141576)는 우리가 아는데로 보헤미야(체코)의 아버지로 민족의 추앙받는 목사요 신학자다. 지금도 프라하에 여행을 가보면 커다란 후스의 동상이 시내 광장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그것만 봐도 체코 민족에게 후스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상의 앞면에는 후스가 콘스탄츠 감옥에서 보낸 편지의 한 문장인 "나의 민족이여 부디 살아남으십시오. 당신의 나라가 당신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라고 씌여있고, 그 뒷면에는 후스가 감옥에서 체코인에게 보낸 편지 "신실한 체코인에게" 가운데 한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문구는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이에게 진리가 있도록 하십시오"라는 문장이다.

 후스는 영국의 전종교 개혁자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84)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존 위클리프의 예정구원론을 바탕으로 성경을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보았다. 결국 성경을 통해서 교회와 교황과 로마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교회로부터 파문당했고,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7월 6일 화형당했다. 그리고 그 유해도 라인강에 뿌져졌다. 하지만 그가 화형당한 이후 그의 신학사상은 체코 형제단으로 이어졌고, 후스의 사상은 마르틴 루터 등의 종교개혁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얀 후스는 프라하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1400년부터 대학에서 교양 학부와 신학부의 교수로 일했다.

사제가 된 후에는 프라하의 성 미카엘 교회 (Kostel sv. Michala)에서 설교를 했고, 1402314일부터 그 유명한 베들레헴 채플(Betlémská kaple)에서 설교를 시작했다. 1402년에는 체코 프라하대학의 총장이 되어 체코인들이 독일의 힘에 맞서 싸울 것을 독려한다. 얀 후스는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체코어 설교와 체코어 찬양을 시작했고, 체코어를 개량하고 체코어 철자법을 개혁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게 하였으며, 체코어로 찬송가를 보급하였다. 교회의 타락을 지적한 것과 개혁을 주장은 왕족은 물론이고 대중의 지지를 받았지만, 고위 성직자들과 프라하의 독일인들은 이에 반발하게 되었다.

프라하 대학 내의 독일인 교수와 체코인 교수의 갈등은 1409년 바츨라프 4세의 크트나호라 칙령이 있게 되었고, 1348년 카렐 4세가 체코인 교수에게는 3표, 독일인 교수에게는 투표권이 한표로 배분되게 따라서 대학의 주도권이 체코인 교수에게 돌아간 것이다. 독일인 교수들과 학생들은 이에 대한 항의로 학교를 떠나 라이프치히에서 새로운 대학을 설립했다.

 

  141410월 독일과 스위스 국경 지대인 보덴제(호수) 근교의 콘스탄츠에서 종교회의가 열렸는데,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바츨라프 4세의 동생인 지기스문트(Sigismund Luxcemburg)가 안전을 보장하면서 후스로 하여금 종교 회의에 참석할 것을 요구했다. 후스는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 콘스탄츠로 향한 것이다. 결국 후스는 콘스탄츠에 오자마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뜻을 버리지 않자 141576일 화형에 처해졌다. 1년 후 1416530일에는 후스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프라하의 예로님(Jerome of Prague)도 콘스탄츠에서 처형당했다.

 

   후스의 처형은 체코인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1415년 가을에는 여러 귀족들이 콘스탄츠 종교 회의의 결정을 거부하고 후스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결의문을 발표한다. 이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한 도전과 봉기의 신호였으며, 민중봉기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눈물 겨운 따보르파의 전투와 철저한 신앙을 고수하는 이들의 죽음이 이어지게 된다.

 

   후스는 교회와 사제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에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에 해당된다면 교황과 교회에게 대항하라고 설교했다.

   첫째, 만일 교황과 교회가 하나님의 율법과 복음을 아는 경건한 자들을 무시하고 인간적인 전통에만 눈을 돌린다면 이것은 교황을 거절해야 하는 표시가 된다.


   둘째, 교황과 영적인 고위층들이 경건한 삶을 벗어나서 세상적인 일에 얽매여 산다면 이것이 교황과 교회를 거절해야할 표시가 된다.

   셋째, 교황과 교회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세상의 장사꾼들을 내세우고 자신의 세속적인 삶에만 욕심을 내어 교회를 압박하는 경우 이는 교황과 교회를 거절해야 할 표시가 된다.

   넷째, 만일 교황이 자신의 명령서를 통하여 구원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탈취한다면 이것이 교황을 향하여 대항할 표시이다.


  후스는 교회의 부와 사치스러움은 사악함과 불신앙의 표징이라고 보았다. 그는 교회가 온갖 비싼 성화들과 성직자의 예전복, 성배와 종과, 오르간을 사용하여 행하는 의식들을 비판했다.

  1415년 후스의 처형 후 보헤미아 사람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를 향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어 농민·하층시민을 중심으로 한 과격한 타보르파가 프시네츠의 니콜라우스, 얀 지슈카 등에 의해 형성되었는데,  프라하에서, 독일 각지에 조직을 확대하였다.

​  이에 대해 교황 마르티누스 5세와 황제 지기스문트는 5차례에 걸쳐(14201431) 십자군을 일으켜 탄압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십자군과 개신교인들 사이의 전쟁을 후스전쟁이라 한다쿠트나호라(Kutná Hora)에는 이 전쟁 때 목숨을 잃은 개신교인 희생자들의 해골과 뼈로 장식된 '해골성당'이 있다. 199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로 지정되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이 해골성당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사람의 실제 해골과 뼈로 장식되었는데 약 4만명 가량의 해골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곳은 프라하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니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이들의 피와 죽음으로 아직 체코에는 소수이지만 개혁교회가 남아 있는 것이다.


 

   따보르파가 활약했던  체코의 남부지역에 있는 '진지'라는 뜻의 타보르(Tábor)라는 작은 도시도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당시 활약했던 애꾸눈 장군인 지슈카 장군의 동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또 동상에서 백비터 정도 전방에 있는 그곳 박물관에도 꼭 들러보면 당시 어떤 전투가 있었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다만 체코말를 몰라 글을 읽을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아울러 19세기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가 작곡한 교향시 '나의조국' 도 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이 음악은 1420년 경 전쟁 당시 후스파가 건설한 타보르를 배경으로 그들의 활약상을 노래하고 있다.

 

 

 

[체코 종교개혁자 얀 후스를 만나다] / 토마스 부타 / 이종실 / 동연 / 2015.05.15.

겸손하게 기도하오니 전능하신 주님이 내가 무엇을 할지 가르쳐 주시고 우리를 겸손하게 낮추어 주사 비참한 내가 현재의 상황에서 정의의 좁은 길을 벗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말할 때 믿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거할 것을 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12년 넘게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일에 열심을 내고 진실하고 신실한 회개를 많이 목격하였을 때 나는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여러분이 복음을 지키고 변호하도록 동시에 제가 숙고하는 모든 것을 여러분도 함께 지속해서 성공적으로 숙고할 수 있도록 간청합니다. 마음이 동요되거나 변하지 마십시오. 올바른 믿음과 확신하는 소망을 지키도록 노력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굳건히 서십시오. 간절한 갈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붙어 계십시오. 구세주가 복음을 설교하도록 보낸 자들에게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서 성장하십시오.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해 주십시오. 모든 곳에서 즉 필요로 하는 모든 곳에서 지역에서, 도시에서, 마을에서, 성에서, 숲에서, 할 수 있는 곳 어디에서나 성공적으로 설교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억압을 받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코지 흐라텍에서 141310월에 마무리한 그의 체코어 설교는 다음과 같다.

모든 신실한 크리스천은 나를 체코 왕국에 있는 이단이며, 매일 베들레헴에서 궤변과 이설로 설교하고 이단의 사제이며 이단의 두목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비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에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은 나에게 상처 되지 않으며 또한 나에게 슬픔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제들이 그의 거룩한 자비(그리스도)에게도 나쁘게 행동하였고 결국 잔혹한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주었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싸움을 거룩한 자비(그리스도)가 완성하도록 나의 싸움을 그에게 내려놓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굴욕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해도 내가 진리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당시 골치 아픈 교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414년 말에 보덴호수에 위치한 콘스탄츠공의회가 소집하였다. 후스는 그 해에 라코브닉 지방에 있는 크라코베츠 성에 거주하였고 콘스탄츠에 가기로 결정하고 여행을 준비하였다. 크라코베츠 성을 14141011일 떠났고 체코 귀족들의 안내로 14141014일 프라하에서 콘스탄츠로 떠났다. 콘스탄츠로 떠나는 자세한 이야기를 체코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역설적으로 독일인 쪽에서 우정을 보여주었고, 체코인 쪽에서 적대감을 드러냈다는 것을 시사했다.

 

나는 한 번도 수도승 후드를 입고 다니지 않았으며 얼굴을 드러내고 다녔습니다. 정말입니다. ... 체코를 떠나서 먼저 베르나우 도시에 도착하였고, 거기에 도착하기 전 사제가 자신의 사제 후보생들과 함께 나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곧바로 나에게 마실 것으로 매우 큰 컵의 포도주를 주었고 매우 친절하게 자신의 동무들과 함께 모든 가르침을 받아 들였으며 언제나 친구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 지금까지 내가 적이라고 한 번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모든 호스포다(옛날 우리 주막과 같은 개념)에서 하룻밤을 발 때 주인들에게 십계명을 설교하였고, 때로는 헛간에서 묵상기도를 했으며, 모든 여주인은 남주인과 함께 매우 친절하게 나를 받아들이곤 하였습니다. 성무금지가 모든 곳에 선포되지 않았는데 모든 사람이 독일 선포를 칭찬합니다. 매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체코왕국에 거주할 때보다 더 나에게 적대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후스는 113일에 콘스탄츠에 도착하였으나 1128일 체포되어 여러 곳에서 수감 생활을 한다. 내적 씨름과 콘스탄츠의 체류에 대한 그의 서신들은 소중한 원사료가 된다. 1415년 초 프라하 시민들에게 보낸 서신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감옥에 앉아 있으나 부끄럽지 않습니다. 주 하나님을 위해 희망 안에서 고통 받고 있고 사랑으로 큰 질병 중에 있는 나를 만났고 그래서 다시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전에 많은 좋은 일을 하고 진심으로 사랑했던 자들이 매우 거친 적대자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도록, 나를 위해 주 하나님께 간구해 주십시오.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희망이 하나님 안에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후스는 자신의 고통과 질병을 옥중 서신으로 콘스탄츠에서 친구들에게 알린다

 

나는 치통이 있고 그리고 고트리벤 성에서 각혈과 두통과 돌들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였소. 이것은 나에게 죄에 대한 당연한 징벌이오. 그리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오

 

죄에 동의하길 원치 않고 순교를 당한 신약 성경의 여러 남녀 성자 눈앞에서 인내심과 영원성에 대해 설교하던 내가 어떻게 많은 거짓말과 거짓 맹세에 넘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은 아들들에게 나쁜 모범을 어떻게 남겨 줄 수 있습니까? 이러한 말을 내가 듣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주 그리스도께서 풍성하게 나에게 보상해 주셔서 현재의 인내를 도와 미래의 영광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얀 후스는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선고를 받아 141576일 콘스탄츠 화형장에서 화형을 당한다. 그의 유골은 라인강에 뿌려졌다. 그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소식을 흘룸의 얀(Jan z Chlumu)의 서기관이었던 대학 마스터 믈라도노비츠의 페트르(Petr z Mladonovic)가 전해 주었다.

 

그 대성당에서 후스에게 모자(이단들에게 씌우던)를 씌워 끌어내렸을 때, 이 대성당의 묘지에서 같은 시간에 그의 책이 불태워졌답니다. 후스는 그들의 행동을 보고 웃었습니다. 후스는 자신의 최대 원수인 거짓 목격자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기만적인 이단으로 몰아가는 것을 믿지 않도록 자신 주의에 서 있는 사람들과 위데 따라 오는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이 도시의 거의 모든 시민이 무장을 하고 그가 죽음을 향해 갈 때 동행했습니다. 교수대로 와서 무릎을 꿇고 팔을 펴고 하늘을 향해 눈을 들고, 매우 경건하게 특히 시편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주님 안에서 나는 소망하였습니다.’ ‘주님 당신의 손에를 반복하여 그 주위의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기쁨의 얼굴로 즐거워하였습니다. 교수대는 콘스탄츠 도시에서 나와 고트리벤 성으로 갈 때, 앞에서 언급한 도시의 교외의 성문들과 해자 사시의 많은 정원 사이에 있는 초원에 있었습니다.”

 

콘스탄츠 공의회에서의 후스의 폭력적인 죽음은 체코 왕국에서 전 민족적인 분노와 폭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후스 화형 이후 콘스탄츠로 보낼 후스 변호를 위한 항의 서한은 체코와 모라비아 영주들이 마스터 얀 후스에게 폭 넓은 지지를 천명한 452명의 체코 귀족들의 서명을 받아 작성하였다.

 

마스터 얀 후스가 분명히 선하고 의로운 크리스천이었으며 우리 왕국에서 수 년 전부터 살았고 도덕적이며 그리고 생애 예절과 평판으로 잘 증명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입으로 시인하는 마스터 얀 후스에 관한 이 공개서한들은 모두 신부(콘스탄츠 공의회 차석 사제들)에게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을 결정하였다. 그는 신실하게 거룩한 선생들의 주석에 따라 신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였고 우리와 우리 농노들에게 가르쳤으며 많은 글을 남겼다. 모든 거짓 가르침과 이단들을 지속적으로 거부하였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와 모든 믿는 자들을 끊임없이 신실하게 훈계하였으며 자신의 가능성에 따라 열심을 가지고 평화와 사랑으로 말씀과 실천과 글로 인도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마스터 얀 후스가 자신의 설교에서 어떤 거짓교훈이나 이단을 어떠한 방법으로 강조를 하거나 설교를 하거나 가르치고 또는 우리와 우리 농노들을 어떤 말로나 행동으로 위험을 하였다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고, 열심히 조사를 하였지만 알 수 없었다. 성모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리고 이웃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신부들의 규례들을 지키도록 훈계하였다.”

 

대학 당국은 자신의 이전 총장이며 교수인 마스터 얀 후스 그리고 얀 후스의 친구이며 후스보다 1년 뒤인 1416530일에 콘스탄츠 화형대에서 죽은 마스터 예로님 프라주스키의 업적에 대한 확인서를 써서 보냈다.

 

듣고 있는 여러분 앞에서 우리가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특별한 감정으로 우리 대학의 아들, 거룩한 신학 학부과정을 뛰어나게 마친 후스라고 불리는 후시네츠의 얀에 대한 기억들을 거룩한 회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귀중한 인물의 평판을 낮추지 않기 위해서 반대로 모든 이에게 평판이 더 사랑스럽게 되고 그리고 그들에게 아주 달콤하고 힘을 주는 열매를 가져다 주기 위해서 그리고 불신자들 가운데서 질투자들의 악한 말들에 대해 더 즐겁게 침묵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그의 정의 앞에서 겸손하게 기억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그리고 깨끗한 양심으로 모든 이가 깨닫도록 간구합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 사이에서 이 특별한 남자의 행동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의 행동보다 더 크고 올바른 의식으로 구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젊었을 때부터 우리가 직접 목격한 그의 존경받을 만한 삶은 거룩한 도덕성이 있었으며 그래서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가 공개적으로 범죄행위를 비난받아 처형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가탄할 만한 그의 과학적인 지각력은 우리에게 분명히 드러났으며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열정과 능력을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그로부터 한 번도 배교적인 가르침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리고 그에게서 발견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거짓된 사람들의 외침에 의해 정의가 공격을 받았습니다. 모범적으로 존경을 받음에도 거룩성을 거울처럼 분명하게 비추어 준 이 남자를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습니까? 얼마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까! 많은 경건을 퍼트렸고 모든 재산을 멸시하였고 죽을 때까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불행한 사람의 침대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자비롭게 무릎을 꿇었고 자신의 진실된 눈물을 흘림으로 완고한 사람들을 회개로 안내를 하였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친밀한 부드러움으로 거친 성정들을 없애려 했고, 모든 일반적인 방종들을 특히 오만하고 천박하고 그리고 영향력 있는 성직자의 방종을 뿌리 뽑았습니다. 인생의 어떤 약을 투여해서 뿌리째 뽑으려고 했습니까? 큰 사랑의 실천으로 오래되고 그리고 잊혀 진 말씀의 치료방법으로부터 받은 인생의 새롭게 발견된 약으로 모든 나쁜 것을 뿌리째 뽑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의 깊게 모든 사도들의 행적으로 사제들과 백성들에게 초대 교회의 삶의 스타일을 기여했습니다. 매력 있는 말과 지혜로 다른 사람들을 능가했으며 그리고 모든 사랑의 실천과 믿음과 불가침의 진리의 모습을 모든 이에게 입증하였습니다.”

P. 26-38에서

  

 

1409년 후스가 했던 대학 연설을 들어보자.

이 훈계의 서론으로 오늘 다음 말씀을 드립니다. 1:10의 말씀이며 주일본문 말씀인 너희로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입니다. 존경하는 교수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여러분! 민족들의 랍비와 교사인 모든 것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사도가 복음을 지키고 강화하는 일로 감옥에 있으면서 진실로 그들은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간구합니다. 여러분이 지극이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기를 모든이에게 말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마음 안에 영원히 계셔서 우리가 경험으로 더 좋은 것을 알게 되면 그 후에 우리는 더 좋은 것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래서 커다란 선을 알면서 작은 선을 행하면 그것은 악이 되며 작지 않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드러내어 하나님이 우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높은 가치를 성취하도록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성령의 사랑을 보여주셔서 하나님이 대가없이 사람에게 더 큰 선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접근할 수 없는 커다란 선을 무시하는 사람은 곧 성삼위의 성부의 능력과 성자의 지혜와 성령의 자비하심을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도는 우리에게서 이러한 어리석음은 결함이 없기를 원해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기를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진실로 유용한 것을 경험한다면 즉 실제로 그것을 우리가 경험한다면 우리는 진실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죄가 없을 것이며 우리의 이웃이 허물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이웃 사람을 더 풍성하게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기를

 

 

그 외에 생각해 보십시다.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지만 자신을 평가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자신의 생각보다 많은 아첨꾼들의 혀를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폭군처럼 난폭한 의지를 확대하거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축복된 의지를 평가절하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 곳에는 두려움으로 서두르지만 어떤 사람은 죽을 수 있는 위험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갈망하는 것이 없어질 때까지 쉬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갈망하는 것이 있어도, 그것을 가치 없는 하찮은 것으로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하게 살고 있고 모든 것이 잘되며, 어떤 사람은 교활함이 풍성해도 모든 것이 반대로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자의성에 따라서 살고 언제나 건강하며 어떤 사람은 히포크라테스의 규칙을 지켜도 지속적으로 질병에 시달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고 지혜를 얻으나 어떤 사람은 지나친 지혜로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철학적 지식을 버리고 무기에 관심을 가지며 어떤 사람은 학교생활을 떠나 매일 노동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분쟁과 논쟁을 자랑합니다만 어떤 사람들은 논쟁이 시작되면 얼버무려 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는 일에 신중하면서도, 성숙한 의견을 요구하는 중요한 사항에는 아주 경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와 가족들에게 엄격하지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원수들에게 지나치게 굽실 거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당하게 자신을 낮추지만 어떤 사람들은 비굴하게 거드름을 피웁니다. 어떤 사람들은 거짓말을 많이 해도 자비를 받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정 정직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해도 큰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연을 시키면 이롭지 않은 상황인데도 언제나 지연을 시키고 성숙한 숙고를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성급합니다. 다시 말해 실제로 경험적으로 유용한 것을 구별하도록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기를

 

 

조금만 더 이야기를 이어가 보십시다. 욕망이 어떤 사람들을 해로운 명성으로 이끌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유익이 없는 명예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을 더 주의 깊은 연구로 알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책을 훑어보면서도 어떤 것도 배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약속을 많이 하지만 하나도 지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걱정을 자신에게서 떠나보내고, 어떤 사람은 해롭게 자신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에도 간섭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재산으로 나누어 주는 것에도 관대해도 자신의 재산을 나누는 것에는 인색합니다.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옷을 많이 구입하고 그들이 죽은 후에는 채권자들만 많이 남으며 어떤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돈을 빌리지만 그러나 갚는 것을 조금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해서 선함을 생각하지만 선행은 조금도 성숙해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기를 희망하며 그들의 부도덕함을 크게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단자들로부터 자신들이 이단자가 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형제의 눈의 티를 보고 자신의 눈의 들보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사람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다양한 모든 종류를 다 설명할 수 없으며 가장 가까운 이웃뿐 아니라 자기 내면에도 서로 다른 자기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 나은 것을 실천하도록 우리는 이것을 짧게 설명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실천하고 지키십시오.” “여러분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기를오늘의 주제에서 오늘 말씀은 이 유익한 기억을 위해 받은 말씀입니다P.41-47

 

체코의 친구들에게

미스터 얀 후스는 하나님의 종의 소망으로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사랑할 모든 신실한 체코인에게 다음과 같이 그들을 위한 기도를 편지로 보냅니다. 주 하나님이 자신의 자비 안에 삶과 죽음을 주시고 하늘의 기쁨 안에 영원히 살게 하옵소서. 아멘

하나님의 신실하고 사랑하는 신사, 숙녀, 부유한 자, 가난한 자여! 주 하나님에게 순종하도록 그의 말씀을 찬양하고 그리고 기쁘게 듣고 실천하도록 여러분에게 요청을 하며 이를 다시 기억시켜드립니다 내가 하나님의 율법과 성자들의 말씀을 근거로 설교를 하고 글로 썼던 하나님의 진리를 여러분이 지켜 주십시오. 물론 내가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내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른 설교나 개인적인 글을 쓴 것이 있다면, 그것을 지키지 말아 주십시오. 만약에 말과 행위에서 나의 가벼운 태도가 있었다면 나를 따라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사제들은 선한 태도를 사랑하고 찬양하고 존중하십시오. 교활한 사람들, 특별히 선하지 않는 사제들, 즉 양의 옷을 입고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구세주가 말씀하신 사제들을 조심하십시오.

 

영주 여러분! 가난한 백성들을 자비롭고 바르게 다스리십시오.

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상점을 바르게 운용하십시오.

장인 여러분! 신실하게 자신의 기술을 발휘하고 사용하십시오.

농노 여러분! 영주들을 신실하게 섬기십시오.

마스터 여러분! 좋은 삶을 살면서 학생들을 신실하게 가르치십시오. 가장 우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마을의 유익과 자신의 구원을 위해 가르쳐야지, 세속적인 욕망과 부요함을 위해서 가르치지 마십시오.

학생 여러분! 마스터에게 잘 순종하고 따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과 타인의 구원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영주들, 두베와 네슈트노의 바츨라프, 흘룸의 얀, 프롬로브의 인드르지흐, 빌렘 자예츠, 미시카 그리고 보헤미야와 모라비아의 다른 영주들, 폴란드 왕국의 신실한 영주들에게 모두가 감사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의 용감한 보호자로서 그리고 진리를 세우는 것을 돕는 자로서 나의 석방을 위해 여러 가지 방면으로 노력을 하며 여러 번이나 공의회를 반대하면서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를 반대하던 공의회가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나에게 요구한 것을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로마와 체코 왕을 위해 주 하나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왕과 영주를 위해 사랑의 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고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자비와 지금 여기에 영원한 기쁨이 풍성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아멘.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진리를 퇴보시키지 않도록 그리고 증언나들이 나를 잘못 증언하는 거짓을 인정하지 않도록 나는 옥중 철장 안에서 착고에 차여 재판으로부터 사형 판결을 기다리며 이 편질여러분에게 썼습니다. 하나님 곁에서 기쁨으로 그리고 그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때, 주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자비를 행하시며 나쁜 유혹 중에서도 나와 함께 하심을 여러분이 알 게 될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동료 마스터 예로님에 대해서 열악한 옥중에 있으며 나처럼 죽음을 기다리며 용감하게 체코인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나는 알지 못합니다. 가장 잔인한 우리의 적들로 나를 권력에 넘겨 감옥에 갇히게 한 어떤 체코인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특별히 프라하 시민 여러분, 베들레헴 채플을 사랑하고 주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동안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십시오. 이 베들레헴 채플 때문에 마귀가 이 교회당에서 자신의 지배가 종식된 것을 알았기에 분노하게 하였습니다. 주 하나님이 이 교회당을 자신의 뜻대로 보호하고 용감하지 못한 나보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그곳에서 더 큰 성공이 있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서로 사랑하도록, 폭력으로 선한 사람들이 억압당하지 않도록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진리가 있도록 하십시오.

 

성 비트의 날 직전 월요일 밤에 선한 천사 인편에 편지를 보냅니다.

P. 9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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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개혁 교회 이야기
이성호 지음 / 그책의사람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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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이루는 방식은,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흘러나오는 자비로운 사랑을 통해서이다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춰주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시고 그분을 사랑하도록 하신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신앙을 가졌다고 한. 그렇게 되면 신자는 결국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그분이 핏값으로 주고 사신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도, 교회를 세우신 것도 그런 바르게 아는 지식안에서의 바른 사랑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다성화도, 영화도 결국은 바른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사랑 안에서 자라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고, 그 지식과 사랑이 완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이 책은 네덜란드 교회가 어떻게 바른 진리를 찾아갈지 고민한 흔적으로부터 나온 기록이다. 그렇게 수많은 핍박과 환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존하셨음을 네덜란드 개혁교회를 통해 보게 하셨다. 도르트 총회를 비롯해 수 많은 회의와 카이퍼나 보스 같은 많은 인물이 나왔지만 그 모든 일을 이루신 분은 교회를 순결하게 보전하시려는 성령님의 역사이시다. 그래서 네덜란드 개혁교회로 하여금 지금까지 지극히 작은일에 충성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다. 왜 우리 한국 교회사에는 바른 신조를 가지게 하려는 교회사적인 몸부림이 없었던가? 부럽고 또 부러울 뿐이다. 그렇게 알고 싶었던 네덜란드 개혁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책으로 나와서 참으로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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