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오디세이`라는 책의 1권 중 `비극`의 조건에 대해 아리스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악행이 아니라 악의 없는 중대한 `과오`의 대가로 불행해져야 하는 것˝

그렇게다면 이작품은 4대 비극임에도 비극일 수 없다.
물론 마녀와 아내의 유혹이 있었지만 맥베스는 이전의 다른 비극들과는 다르게 계획적으로 무고한 이들을 살해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맥베스를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맥베스의 끊임없는 고뇌와 절망적인 상황때문이 아닐까?

이 극의 마지막은 예상과 달리 맥베스가 죽고 막을 내린다. 사실 맥베스가 왕으로써 살아가는 것이 더 비극적이지 않을까 싶다. 무지한 자를 빼놓고 아무도 웃지않고 용병을 고용할 정도로 충신없는 나라의 폭군이라니, 정말 비극적이지 않은가.

맥베스 "난 공포를 포식했어. 살기를 품은 내 생각에 흔히 있는 전율에도 놀랄 수가 없으니까."

맥베스 부인 "순진한 꽃 같지만 그 꽃 밑의 뱀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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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라고 하면 흔히 `변태`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책의 서술자인 험버트가 10대 소녀인 롤리타를 사랑하고 그녀와 성적관계를 맺는 모습은 언뜻 부도덕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도덕적으로 선악을 구분하는 것은 딱히 중요하지 않게 보여진다. 이 것은 책을 뿐만아니라 모든 방면에 해당된다고 생각라는데, 한 인물에 대하여 단편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 사람 인격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험버트는 어린소녀를 탐하고 그녀의 자유로운 생활을 억압했다는 점에서 부도덕해보이지만 그 내면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은 아이러닉하게도 숭고해보인다. 그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흘리는 그의 눈물과 롤리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덮을때는 험버트라는 인물에게 든 정에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는 연민할 수 밖에 없다.

꼭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소재에 대하여 혐오스럽다고 얘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이면에 아름답게 빛나는 사랑을 중점으로 보면 사랑스럽다고 느껴지는 이야기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 이빨을 톡톡치며 세단계의 여행하는 혀끝. 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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