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랜 불새 과학소설 걸작선 13
A.E. 밴 보그트 지음, 안태민 옮김 / 불새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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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엘튼 반 보그트의 장편 SF <슬랜>....
<스페이스 비글> 이후 두 번째로 한국에 소개된 작가의 책입니다.
<슬랜>은 보통 사람들과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차원이 다른 인간들,
즉 초인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절반 정도 책을 읽었을 때 뒷 부분의 전개를 대강 눈치챌 수 있기도 했지만,
여하튼 한 편의 독립된 장편으로 꽤 재미있게 잘 쓰여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20 여년 전에 읽었던 <스페이스 비글>과는 사뭇 다르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그 작가의 작품 맞구나 그런 동일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기도 하고,
<슬랜>은 그 나름대로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비정상적인 어려운 상황을 독자에게 잘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이를 상당히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하는 작가의 강단있는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그트는 문체에 대한 훈련을 의식적으로 수행한 작가이고,
자신이 어떻게 "팔리는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스킬을 연마했는가를
다른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널리 알리고자 했었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애당초 자신이 타고난 재주가 있고 또 문학이 좋아서 어쩌다보니 글을 쓰고 있다기 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원고를 팔아서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분명히 했던 사람이죠.
           
과거 <스페이스 비글>을 읽을 때는 그렇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만,
이번에 <슬랜>을 읽다보니 보그트가 말한 "팔리는 글"의 조건이 매치되는 것들이 좀 보였습니다.
보그트는 모든 문장, 문단, 챕터 끝에 "항상 뒷 부분이 궁금하도록 여지를 남긴다"는 것과...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미리 정해 주고, 그 안에서 문제 상황을 던진 다음,
그 범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답과 그 범위를 살짝 벗어난 약간 뜻밖의 답을
단계적으로 제시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나름의 스킬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스페이스 비글>은 독립된 단편들을 모아서 연작 단편집으로 만든 책이라 좀 덜했는데,
<슬랜>은 일관된 장편이다보니... 이 테크닉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잘 드러나더군요. 
        
<슬랜>의 메인 테마는 <엑스맨> 시리즈의 주제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일반인들을 훨씬 상회하는 능력을 가진 초인들이 등장하였을 경우,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의 문제이죠.
<슬랜>애서는 "일반인" vs "오리지널 초인" vs "반쯤 초인" 으로 서로 패를 갈러서 대립하고
그냥 대립만 하는 게 아니라 비극적인 전쟁도 겪었고 치고 받고 노상 싸우고 서로 죽이려 듭니다.
초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초인 능력을 가진 꼬마가 아주 손십게 백화점을 털고 다니는 장면만으로도,
어째서 일반인들이 초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슬랜>을 읽던 중 꽤 인상적으로 다가온 대목 중 하나는...
보통 인간을 월등히 능가하는 초인 과학자들이 마음 먹고 연구한 결과물들은 
일반인 과학자들이 노력해서 내 놓은 업적을 훨씬 더 앞질러 버릴 것이고,
그렇다면 일반인 과학자들은 초인 과학자들이 이미 다 완성해 놓은 연구를 
한참 늦게 뒤따라가는 정도의 역할 밖에는 안되는데...
그렇다면 일반인 과학자들이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였죠.
       
<슬랜>은 줄거리가 단순한 편이고, 등장인물도 그리 다채롭지도 않고,
작가가 마음 먹고 더 독하게 썼다면 훨씬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읽는이의 기대를 잘 만족시키고 이야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소품 레벨의 장편입니다.
펄프 황금기에 전성기를 구가하였던 "원조 빅 3"의 대표작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너무 늦게 소개된 셈입니다. 불새 SF 시리즈가 큰 일 한 건 했네요. 
  
여담으로...
아시모프 자서전에 의하면,
본래 SF계의 "빅 3"는 보그트, 하인라인, 아시모프를 통칭하는 표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차츰 보그트는 작품 수준이 고만고만한 채로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
한참 후배인 클라크가 잇달아 좋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SF 독자들에게 큰 성원을 얻게 되자...
어느새 SF계의 "빅 3"가 하인라인, 아시모프, 클라크로 바뀌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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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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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천 소설집이 출간되는 것은 환영이지만, ˝국내 초역˝이라는 홍보는 결과적으로 ˝거짓˝이 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벽호(지학사)˝에서 <제 49호 품목의 경매>가 1986년 처음 번역될 때 합본으로 <늦게 깨닫는 사람>으로 수록된 바 있고, 해당 번역본에 누락돠었던 단편 <은밀한 통합>만 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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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보라
마이클 무어콕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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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콕의 초기 대표작 <이 사람을 보라(Behold the Man, 1967)> 완역본을 읽었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는 종교 SF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책입니다.
처음 단편으로 쓰여진 것이 1964년이고 장편으로 개작하여 1967년에 출간하였다고 하니,
무려 50년 전에 발표된 고리짝 작품으로 SF계에서는 누구나 아는 '클래식 넘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번역자는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도 어떤 내용인지 다들 알고 있는 책"이라는 희한한 위상을 지적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책 자체의 의의나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정도로 중요한 고전인 셈입니다.
   
마이클 무어콕의 단편은 예전에도 접한 적이 있지만, 장편 단행본은 처음이었습니다.
1960년대 SF 문단을 강타한 뉴웨이브 운동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위대한 SF 평론가,
나이어린 10대 시절부터 SF 잡지을 편집하기 시작해서 30 년 동안 편집장을 지냈던 최고의 편집자,
문학적 감수성 어린 SF와 팬터지를 누구보다 많이 꾸준히 써낸 SF/팬터지/순문학 경계에 선 그랜드 마스터 작가....
마이클 무어콕은 아서 클라크와 함께 영국 SF 문단의 투 톱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장이지만
희한할 정도로 한국에는 소개될 기회가 없었고, 단편을 제외하면 거의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이 사람을 보라>가 나온 것이 너무 늦었음에도 오히려 새로왔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보라>의 메인 스토리 라인은 너무나도 널리 알려진 것이어서,
줄거리를 따로 언급한다고 해도 스포일러가 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실을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금새 어떤 내용이 될 지 이미 알고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자친구와 결별하고, 삶에 대한 무기력과 패배감에 견딜 수 없게 된 젊은이가 타임머신으로 시간여행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도착한 시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1년 전 이스라엘, 세례자 요한과 만난 후 예수를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어찌어찌 예수를 만나지만, 자신이 알고 있었던 그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타고난 백치를 만나고...
어째서 역사가 이렇게 잘못되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하여간 어떻게든 역사를 되돌려야 겠다고 생각한 주인공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성서 내용에 따라 예수의 역할을 똑같이 재현하고, 예수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불경하다고 여길 것이고,
SF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SF인 것은 괜찮은 데 너무 순문한 느낌이 납니다.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과거 추억의 아픔을 집중적으로 묘사한 것은 SF에서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SF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문학적이고, 그러면서 기성 종교에 대한 도발도 매우 심합니다.
카톨릭 쪽에서 예수 다음으로 높게 평가하는 성모 마리아를 매우 음탕하고 형편없는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고,
나자렛 지역에는 많은 목수가 모여 살았으며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무수한 예언자들이 떠돌아 다니고 묘사하여서...
독실한 기독교 신자나 예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신성모독을 쉼 없이 저지르고 있는 작품입니다.
   
또한 <이 사람을 보라>는 책장을 펼치자마자 비어와 속어가 난무합니다.
도입부에서부터 시간여행자가 상스러운 욕설을 그대로 내뱉는 모습을 묘사하고,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과거 추억에 대한 회상과 독백에 '욕설'이 일관되게 따라다닙니다.
저는 지난 20 여년 동안 SF를 읽으면서, 이렇게 욕설을 노골적으로 기술한 작품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는 전혀 천박하지 않습니다 - 융 심리학에 대한 토론,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
매우 문학적인 테크닉이 쉼 없이 계속되는 실험적인 작풍, 슬픔과 분노를 묘사하면서 독자를 몰입시키는 능력,
작가 나이 28 세에 불과했던 시절에 이 정도 문학적 성취를 거두는 책을 한 달음에 써 내려갈 수 있다니...
말 그대로 작가의 문학에 대한 천재성과 새로운 시도를 위한 치열함이 녹아든 작품이 분명합니다.
   
<이 사람을 보라>를 읽으면서 머리 속에 떠 올라 비교할 수 밖에 없었던 다른 책들이 있었는데,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미하일 불가꼬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였습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태만하고 비겁한 까닭에 죄를 짓게 되는 본디오 빌라도의 모습과
<이 사람을 보라>에서 영악하고 정치적 계산에 밝은 본디오 빌라도의 모습을 비교하며 웃음짓게 되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은 <사반의 십자가>에서 예수 곁에 매달린 사반이 참회하지 않고 이를 악무는 것과
<사람의 아들>에서 아하츠 페르츠가 십자가의 예수 앞에서 재림을 기다리겠다고 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사람을 보라>에서는 시간여행자인 주인공이 예수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재현하여 결국 십자가에 못박히는데,
성서에 죄수 셋이 매달렸던 것과는 달리 혼자 십자가에 매달려 있고 곁에 다른 죄수의 십자가가 전혀 없습니다.
- 시간여행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과거 역사를 바꾸지 않기 위해 목숨을 버려가며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간여행의 부작용이 발생한 것은 아닐까 싶은 한 가닥 미스테리를 남기고 있는 것이 매우 신선했습니다.
   
SF 문단에서 뉴 웨이브라고 하면 로저 젤라즈니, 마이클 무어콕, J .G . 발라드 등을 대표적인 작가라고들 합니다.
1960년대 SF 편집자였던 마이클 무어콕을 수장으로 하여 영국에서 처음 떠올라 SF 계을 한 바탕 뒤집어 놓았다가,
문학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여러 SF 작품들을 낳으면서 SF의 저변을 넓히고 SF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힌 후
장르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진 SF 서브 장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작가 로저 젤라즈니에 비하여, 영국 작가인 무어콕과 발라드는 확실히 더 풍성하고 난삽한 맛이 있습니다.
그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지만... 순문학을 좋아하는 SF 독자라면 마이클 무어콕이 무척 마음에 들 것입니다.
  
마이클 무어콕의 책을 더 읽고 싶습니다.
비속어를 사용하면서 문학에 대해 도발하고,
SF를 순문학적인 테크닉으로 쓰면서 SF에 대해 도발하고,
신성한 종교에 대하여 시간여행이라는 테마를 통해 정면으로 도발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도발하지만 그저 발칙한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고민과 연민이 잔잔히 흐르고.  
현학적인 논쟁을 서술하면서도 삶에 녹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공허하지 않으며,
과거 시대에 대한 정경묘사 역시 장면 하나하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그 덕분에 마이클 무어콕의 도발은 그냥 거칠거나 유치하지 않고, 나름 품격과 설득력을 가집니다.
        
끝으로... 작품 내내 번역자분은 신을 "하느님"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실은 이 것이 오역이 아닙니다. 본래 카톨릭과 개신교가 합의한 용어는 "하느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왕년에 1970년대 무렵 한국의 개신교와 카톨릭이 합의하여 공동으로 번역한 <공동번역성서>를 만들 때,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상호 합의 하에 결정한 바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신교와 카톨릭이 함께 만든 <공동번역성서>는 "하느님"으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번역자가 성서의 내용은 모두 <공동번역성서>를 기준으로 발췌했다고 밝혔으므로, 잘못된 번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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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보라
마이클 무어콕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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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번역에 대해 오역이라고 지적질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오역 아닙니다. 1970년대에 개신교와 카톨릭이 합의하여 함께 <공동번역성서>를 만들 때 ˝하느님˝을 공통 용어로 채택하였고, 역자는 <공동번역성서> 기준으로 번역했다고 써 놓았죠. 오역 아니냐는 말이 계속 나와서... 좀 답답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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