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만을 요구하는 세상
그래서 이 책이 그렇게 불편했나?
참 특별한 책이 한 권 나왔다.
시각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찍은 사진을 묶은 책
시각장애와 사진이라는 하나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두 단어가 만난것만으로도 의미있게 다가오는 책이며
동시에 불편함을 가져다 준 책이다.
사진 중에 목장에 찾아가 양의 일 부분을 찍은 사진이 있다.
사진을 바라보면 설명이 적혀있지 않고는
양인지 무언지 모를 그런 사진들이다.
아마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느낌만을 의존해서 찍은 사진이기에 그랬으리라 생각된다.
사진은 무조건 올바른 한 형태가 온전히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답이고 그렇게 나오지 않은 사진은 바로 삭제 버튼을 눌러 삭제한다.
양의 일부분만 나온 이 사진들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찍었어도 바로 삭제 버튼을 눌렀을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버젓이(?) 책에 싣렸다.
이 사진을 사진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또 다른 사진이 있다.
쓰러져 있는 갈대 위로 다리가 올려져 있는 사진
이 사진 역시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한 듯한 동작의 사진으로 실제 현상할 때는
마찬가지로 삭제되어야 하는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갈대 밟는 소리'라는 제목이 붙여졌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이 사진들은 실시간으로 페이스북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또 다른 사진이 있다.
노을지는 바다 풍경을 뒤로한 채 사진기를 높이 든 모습의 그림자들이 줄 지어 서 있는 모습
이 책에서 이 사진은 우연찮게 나온 사진이라고 코멘트를 달았다.
우리는 그동안 정답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것 같다.
사진은 이래야 한다.
피사체는 이래야 하고 사진 각도는 이래야 한다 는 식의 정답들..
사실 어느 누구나 그러겠지만 나 역시도
여행을 가면 멋진 사진 찍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현상했을 때 내가 보기 멋있어야 하고
남에게 보여줄 수도 있는 사진을 생산하는데 온 힘을 쏟는 것이다.
거기에는 시각 외에 그 어떤 감각도 요구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 싣린
이들 청소년들이 찍은 사진에는
시각외에 모든 감각이 총 동원되었다.
그래서 비록 시각적으로는 매우 부족한 사진일지 몰라도
그 어떤 사진보다 훌룡한 사진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또 한가지의 독특한 것이 있는데
각 챕터 별 제목에 점자가 새겨져 있다.
책을 읽다가 눈을 감고 점자를 더듬거려 봤다.
점자를 알지도 못하지만 만약 안다 하더라도 이것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 사진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동원한 사진이란 점이 더 확실히 다가오게 되었다.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송되었다 하고
QR코드로 동영상을 볼 수 있게도 하였으니
이 또한 한 번 봐야겠다.
우리는 많은 경우 시각에 의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얼짱이 그러하고 영상이 그러하고 공부 역시 눈을 보고 단순히 암기하고 있다.
그런 세상에 던지는 작은 파동과 같은 책
손 끝의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