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지음 / 난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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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절실한 감정도 지나고 보면 절대적인 적이 없었음이 분명하지만, 그때는 밑도 끝도 없이 더 근원적인 회의에 맞닥뜨렸다고 생각했다. P12

✍︎표제작을 포함한 열 편의 소설로 구성된 책은 각 편마다 신비한 느낌들을 지울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지만 납득은 되는 이야기들의 전개. 어렵고 난해한 느낌이지만 묘하게 빠져드는 이야기들의 매력. 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문장을 힘들이지 않고 종이 위로 툭툭 던져냈는지 궁금하다가도 이내 그냥 책에 몰두하게 된다. 어느 정도 독서량이 쌓인 지금의 나를 놓고 보았을 때, 작가의 이름만 들어도 그가 어떠한 문체를 주로 사용하며 어떤 책들을 써왔는지 원치 않아도 머릿속에 먼저 그려지곤 한다. 신간을 읽을 때 재단하는 나쁜 습관을 완전히 차단해버리는 소설이었다. 전혀 (어쩜 나만) 알지 못하는 작가의 소설이라니 진부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독특해도 너무 독특한 서술 방식과 주제였다.특히 종이 아이를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이러다가 내가 포슬린 아이를 낳는 거 아닐까? 란 걱정을 조금 해보았다. 소설이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흙 이야기를 하면 흙이 그대로 느껴지는 착각이 들고 지하실의
눅눅한 향도 봄에 부는 바람의 질감도 전해진다. 차가운 얼음조각 같은 말들이 천천히 녹아내리듯 소설 내용도 스며든다.


익숙한 곳을 방문하는 자만이 갖게 되는 자연스러움이거나 자신만의 공간에 머물러 있는 자의 여유로움이었다. P13

개인적 취향이라는 말은 착각이다. 시선의 취향일 뿐 p19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봄이 오고 있었다. 봄은 고양이보다 더 나른하게 숲에 내려앉았고, 그는 어느 때 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P21

어디 집뿐일까. 사는 것도 다르지 않아.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숟가락을 뜨고 몸을 움직여 일을 하는 것 모두 중력에 저항하거나 타협하는 일이지. 사는 게버겁다면 그건 곧 중력에 저항할 힘이 없다는 뜻이야. 말하자면 중력은 인간의, 아니 살아 있는 생명들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지. 힘이 들면 사람은 주저앉거나누울 수밖에 없어. 중력과 타협할 힘조차 남아 있지 못하면 더이상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 P23

종이를 사서 특별히 하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림을 그리지도 않았고 글을 쓰지도 않았으며 종이 공예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종이를 사서 펼쳐놓거나 벽에 붙여놓고 냄새를 맡거나 쓰다듬는 일이 전부였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황홀한 빈 여백으로 삐져들었다. P108

숲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잠깐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굵은 나무들 사이에 빼곡히 메우고 있는 잔가지들이 방향에대한 판단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언제나 전진을 막는 장애물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사소하고 무시해도 좋을 자잘한 것들이었다. P22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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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 신비한 원소 사전
김병민 지음, 장홍제 감수 / 동아시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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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율표를 읽는 시간」 
파워 문과생인 내가 읽기에 조금 버거웠지만(책은 정말 흥미롭고 재밌어요!) 다 읽고 나니 평소 관심 없던 주기율표의 매력에 푹 빠졌다. 
단 한 번도 주기율표의 구성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고 외우기에 급급했는데, 이 책이 15년 전에만 나왔어도... 하는 생각을 했다.
책에 워낙 공을 많이 들여서 이걸 이 작은 피드에서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장점을 나열해볼게요😃

ㅤㅤ
𖤐 두 권의 책을 한 권으로 만들었다. 
이런 구성의 책을 처음 봐서 신기했는데 한 쪽은 주기율표를 읽는 시간이고 다른 쪽은 신비한 원소 사전으로 되어있다. 
줄글의 책만 읽기 지루할 땐 컬러 사진들이 가득한 원소 사전을 펼쳐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ㅤㅤ
𖤐 책의 띄지를 활용한 방법이 획기적이다! 띄지를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이런 띄지 라면 대환영😌 두꺼운 종이로 제작되어 펼치면 양면 가득 중요한 자료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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𖤐 누드 사철 제본 방식
내용 자체가 소설처럼 빨리빨리 들어오지 않고, 생각을 거쳐야 해서 이런 제본 방식이 너무 소중했다. 
책이 쫙쫙 펼쳐지고 다 읽을 때까지 변함없는 자상함이랄까?
간단한 메모를 하기 편리했다.
페이지 중간 중간 보이는 파란실이 매력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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𖤐 글자색과 언더라인 ㅤㅤ
책이 특이하게 글자색이 블루여서 눈에 피로감을 덜어주는 기분이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에 미리 노란 언더라인이 있어서 좋았다. 왠지 이런 식으로 교과서가 제작되면 가독성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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𖤐 주기율표를 건축에 비유한 설명
올 초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보고 와서 더 잘 이해가 됐다. 비록 빅벤은 공사 중이었지만...ㅤㅤ

✑ 여기서 주기율표를 굳이 건축물에 빗대어 이야기한 이유는 주기율표에 배치된 원소들의 위치가 결국 원소의 특별한 특징과 성질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중략)건축물에 대입하면 주기율표의 구조가 쉽게 떠오르고, 주기율표가 좀 더 친근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주기율표에는 금속, 비금속, 전형원소와 전이원소 외에도 원소를 구분하는 여러 분류명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원소의 성질에 따라 정해집니다. 주로 세로줄을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분명 전자의 배치에 의한 바깥 전자와 관련이 있겠지요. 원자의 성질을 결정하는 건 바깥쪽에 존재하는 원자가전자 때문이니까요.
p113ㅤ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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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드렸듯이 주기율표는 원소의 정보를 보고자 하는 시각에 따라 새롭게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p206ㅤ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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𖤐 도표와 그림 자료
특히 신비한 원소 사전을 보면 이것이 바로 화학 분야의 코스모스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컬러감이 좋아서 소장 가치 최고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도식화된 삽화가 이해를 돕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ㅤㅤ
❁ 통으로 필사할 페이지
p39, p88, p103, p128, p153, p165, p197, p211,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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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
무루(박서영)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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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자유로운할머니가되고싶어
제목을 보자마자 이건 내 장래희망이 아닌가? 란 생각에 사로잡혔다. 서포터즈 활동으로 밀린 서평들이 많았지만, 이건 지나칠 수 없어서 지원했다.( 만약 안 되면 사서 읽자 싶은 책이었음) 
운 좋게도 정식 출간 전에 가제본을 받아 읽을 수 있었다. 
언젠간 나도 할머니가 되겠지만 아직은 먼 미래 같아서 어떤 할머니가 될지 잘 상상이 안된다. 지금처럼 쉽게 감정이 요동치는 할머니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책의 저자는 분명 자유롭고 멋진 할머니가 되겠지...
난 아직 오지 않은 40대에 대한 기대를 하며 
또 한 편으론 어떠한 미래일지를 생각해보았다. 
바람직한 아우트라인을 제시받은 거 같아서 읽다 보면 희망찬 내가 된다.
ㅤㅤ
요즘 문득 든 생각은 오롯한 자신만의 취향을 찾는 일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또 어떤 것을 별로라고 생각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그 기준에 스스로가 과도하게 얽매이지 않고 유연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기준과 취향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니까...
나는 내가 엄격하지만 자유로운 사람이 되길 늘 바란다. 「고양이라는 이름의 문」을 읽으면서 누가 이렇게 내가 쓰고 싶은 말을 다듬어서 완벽하게 써 내려갔는지 감탄했다. 따뜻한 문장 속에 과감하고 직설적인 통찰력들이 콕콕 박혀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마 이 글도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ㅤㅤ
✑ 그래서 이게 다 쓸데없는 짓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동안에도 나는 사는 게 꽤 재밌었다. 하고 싶은 것이 계속 생겨났고, 오래된 삽질의 결과로 뜻밖의 기회들이 속속 찾아왔다. 「...」 궁금하면 해본다. 새로운 것이라면 해본다. 망할 것 같아도 일단 해본다. 하다못해 재미라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재미난 것들이 모여 재미난 인생도 될 것이다.
✑ 가볍게 훌쩍 다녀올 수 있는 마실 장소들을 자주 업데이트하고, 좋아하는 새 가게가 생기면 단골이 된다. 공간의 주인에게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외출의 목적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일상을 너무 크게 흔들지 않는 범위에서 낯선 일들을 할 기회가 생기면 일단 해본다.
ㅤㅤ
✑ '우리'밖에 있는 존재들은 쉽게 배척된다. 울타리 밖에 있는 이들의 상처나 억울함, 슬픔과 죽음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고려의 대상이 아닐 때가 믾다. '우리'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담은 견고하고 높아서 일단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좀처럼 허물 수가 없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누군가 문을 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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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동물 농장 (양장) - 194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지 오웰 지음, 이종인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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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
괄호 속의 내용이 나중에 바뀐 규칙인데...소름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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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처음 읽은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재밌는 책이네, 동물을 의인화 시켰다니! 이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다 큰 지금(더 크려나?) 다시 읽어 보니 러시아 혁명을 대놓고 풍자하고 있는 간 큰 소설이었다.
ㅤㅤ
간단한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메이너 농장 주인인 존스 씨는 평소 동물들을 아끼지 않고 일만 시키는 농장주로 나온다. 그가 술을 마시고 잠든 어느 날 밤 동물들의 수장인 나이 많은 돼지 메이저가 회의를 소집하고, 그는 한 가지 비밀을 이야기한다.
인간들은 동물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전엔 어떤 동물도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얼마 후 메이저는 죽고 동물들 중 영특한 수퇘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을 주축으로 동물들은 존스 씨를 내쫓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버크셔 돼지인 나폴레옹은 스노볼을 밀어내고 독재를 시작하게 되는데...
(뒷이야기는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ㅤㅤ

더스토리에서 나온 초판본 「동물농장」의 장점은 책이 정말 예쁘다는 것과 번역이 깔끔하다는 점이었다. 또한 작품 해설 부분도 역자가 얼마나 조지 오웰의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가 보였다. 작가와 당시 시대적 배경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었다. 
러시아 혁명과 동물들의 반란을 잘 연결되기도 하지만, 설령 우리가 러시아 혁명과 그 후의 전개 상황을 잘 모른다고 해도,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하고 읽기 좋다는 역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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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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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닥이는 손과 다독이는 마음으로'
이 글귀를 한동안 중얼거렸다. 
손을 잡는다는 말이 좋다. 같은 편이 된다는 중의적 의미도 있고,
손을 잡았을 때의 온기도 좋다. 
오은 시인의 산문집은 마치 차가운 손을 꼭 잡아주는 기분이다.
2014년부터 최근까지의 글들을 엮었다. 그 당시 난 어떻게 지내왔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산문의 매력은 다양한 주제들을 그리 길지 않은 호흡으로 읽어나갈 수 있다는 점인데 특히 누가 읽어도 이해하기 좋은 담백하고 친절한 문체라서 소중한 분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힘든 날 혹은 누군가와 대화가 필요할 때 꺼내 읽기 좋은 사탕 같은 책이었다. 아마 나는 계속 이 사탕의 도움을 받겠지. 
그리고 사전을 사랑하는 오은 시인이 내 눈엔 너무 귀여웠다. 단어를 고르는 일, 그리고 매만지는 일은 언제나 특별하니까 
귀여운 고양이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는 시인처럼 나 역시 귀여운 것들에게 마음을 홀라당 뺏기곤 한다. 하지만 뭐 어떤가?
마음 좀 뺏기면
'귀엽다'라는 말을 내가 생각해도 많이 하는 편인데 매 순간 나의 진심이다.
가끔 어떤 행동, 상황, 말들에서 귀여움을 포착하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귀엽다는 말을 반사적으로 내뱉게 된다. 
물론 그 귀여움의 포인트가 일반적이진 않다. 
세상엔 귀여운 것들이 무수히 많아서 매일매일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감정을 강요하지 않아서였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게 다 옳아!' 이런 느낌이 조금도 없어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또한 읽다 보면 좋아하는 책과 시 그리고 시인들도 등장해서 마음이 포근해졌다.
나 또한 좋은 글을 쓰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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