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자유 - 김인환 산문집
김인환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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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보물 같은 문장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번 책은 사실 문장 찾기는 실패했다.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 통째로 좋아서 읽다 보면 페이지 전체가 좋고 대체 필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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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올해 들어 읽은 책 중 '가장 어려운 책'.
머리와 마음이 동시에 바빠지는 책이었다. 나름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모르는 것들이 많으며 채워진 부분보다 채워나갈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김인환 교수님의 산문은 어느 분야의 지식으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았다. 나는 인문학자들을 존경하는데 그 경지에 계신 분이라고 밖엔 설명을 못하겠다. 같은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기에 그의 견해를 읽고 있으면 나까지 똑똑해지는 기분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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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뭐라고 이런 고귀한 책에(다른 말로 대체 불가) 대해 서평을 남길까 싶었지만 부족한 지식을 갈망하게 만드는 귀한 글들이었다. 또한 읽을수록 겸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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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장인 같은 느낌이다.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물적인 책 그 자체에도 공들인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덤불, 불로뉴의 숲> 을 표지로 채택하였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황현산 선생님과 나란히 동행하고 계시는 김인환 선생님의 모습이 아닐까' 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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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페이지의 절대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 아주 많다(그리고 깊다). 사유(思惟)의 기쁨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께 조심스레 추천드려요. 결코 쉽지 않은 책 읽기지만 그만큼의, 아니 그보다 큰 가치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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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고 질문하였지만, 이제 우리는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정보가 필요한가라고 질문해보아야 한다. 음식에 쓰레기가 있고 공장에 폐기물이 있듯이 지식에도 찌꺼기가 있다. 온갖 잡다한 정보에 휘말려 우왕좌왕하는 현대의 속물들에 저항하여, 창조적 직관을 함양하는데 기여하는 독서야말로 올바른 독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롭고 창조적인 독서는 정직하고 관대한 생활의 한 부분이다.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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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은 흙 고르고 씨 뿌리고 물 대고 김매고 거두는 때를 어기지 않으며 쉬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황폐하게 된다. 마음받 일에는 희랍어로는 스콜레라고 하고, 라틴어로는 오티움이라고 하는 여유로운 긴장이 필요하다. 마음밭 일도 일이다. 일을 하려면 입품을 줄이고 손품과 발품을 늘려야 한다. 마음밭 일은 침묵 속에서 원리로 환원할 수 없는 사실들을 인식하는 훈련이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생각도 빗나간다.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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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이 미래시제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에는 진리의 결여라는 고통이 수반된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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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상처를 견디면서 상처의 한복판을 뚫고 넘어서는 자연 치유이다.치유된 사람은 이 세상의 모순과 혼란이 파괴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된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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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과 문명의 공존 또한 중세의 특징이었다.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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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유와 지식과 욕망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우리가 가진 것 그것을 손에 움켜쥐고 거기에 끝까지 매달린다면 우리는 거기에 매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 그것을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자기 자신을 마지막까지 보장하려 든다면 우리는 거기에 매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 그것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관철해내려 한다면 우리는 거기에 매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우리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우리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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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대상은 사유 작용과 분리될 수 없다. 의식과 대상을 분리하려는 인위적인 노력은 성공할 수 없다. 대상은 의식에 대한 대상이고 의식은 대상에 대한 의식이다. 의식은 섬이 아니다. 의식이 자신을 넘어 작용하는 것을 지향성이라고 한다. 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식이 어떤 것과 관계한다는 것이다. 의식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이 지각이다.
지각은 운동감각을 통해 수용된 대상의 다양한 국면을 동일성으로 구성한다. 지각의 수동성과 능동성은 서로 상대방을 함축한다. 가까이 가서 보고 듣고 또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고 전후좌우를 둘러 보면서 우리가 직관하는 지각 내용은 학문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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