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가서 보니 눈에 띈다. 군주열전이라고 조선시대 왕을 모두 다루는가보다 했더니 몇 명 골라잡아서 쓴 모양이다. 순서대로 읽을까했더니 가장 매력없어 보이는 성종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책부터 읽었다. 조선시대 임금 중 성군이라고 하면 세종과 함께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성종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성종은 그저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촌 예종이 죽었을 때, 왕위 계승 서열 1위는 사촌동생 제안대군이었고 2위는 형 월산대군이었다. 성종은 3순위였다.보통은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이 왕이 되야 맞지만 당시 나이가 4살에 불과해 어리고 모자르다는 이유로 탈락.어차피 수렴청정할 생각이었으면 나이는 크게 문제가 안될 듯 싶은데 좀 찜찜하다. 거기다가 4살 밖에 안된 애를 두고 모자르다고 판단하기엔 좀 이르지 않은가?비실비실하다는 이유로 월산대군도 탈락. 제안대군과 달리 나이도 적당했고, 세조의 장남 의경세자의 장남이었으니 혈통(?) 면에서도 동생 자을산군(성종)보다 유리한 입장이었는데 애매하게 건강문제 걸고 넘어진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왕좌와는 거리가 먼 왕자였음에도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아마 그의 장인이 한명회였다는 사실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싶다.) 사촌동생 제안대군과 형 월산대군을 제치고 왕이 된다. 성종이 즉위할 당시엔 이미 세종과 세조를 거쳐 왠만한 건 기틀이 다 마련된 상태였다. 밥상은 이미 차려진 상태였고 숟가락만 하나 얹고 맛만 보면 그만인 그런 상황이었다. 내란이나 외적의 침입같은 일도 없었으며 폐비 윤씨 사건을 제외하면 크게 골치아픈 일도 없었다. 운이 좋아 왕이 되었는데, 왕이 된 시기도 아주 좋았던 것이다.성종, 그는 분명 똑똑한 임금이었다. 하지만 세종과 비교되며 성군 소리 듣기엔 조금 모자른 감이 있다. 선대가 이룩해놓은것을 그저 유지했을 뿐이고, 새로 이룩해놓은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적었다. 인재등용면에서도 새로운 인물들을 많이 발굴해내지도 않았다. 그저 처음 그대로 쭈욱- 같이 갔을 뿐이다. 그럼에도 세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성군으로 과대평가된 까닭은 성리학이라는 족쇄를 제대로 단 임금이었던 탓이었다. 성종은 13살에 임금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는데, 어린 탓에 학문적 바탕이 없었고 덕분에 아무 거부감없이 성리학을 밑바탕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신하들 뜻대로 된 것이다. 왕에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을만한 수단이 완성됐으니 말이다.성리학 체계의 조선에서 어린 성종을 교육시켜 체제에 맞게 키워낸 것도, 그를 성군이라고 칭송하는 것도 모두 붓을 놀리는 성리학자들이었다. 태평성대라고 불리는 성종 이후로 왕권이 점차 약해지고 신권이 강화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순서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운도 좋았고 영민해서 나름 편안하게 왕 노릇을 하며 성군이라는 칭송도 들었지만, 결국 조선왕조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참 애매한 임금이 되었다. 입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득세하게 되는 기반을 제공해서 결국 쓰잘데기 없는 말싸움에 국력낭비를 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