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칼의 노래>

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나 또한 이 책을 손에 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의 이야기라는 말에 책장을 넘겨보진 않았다. 난 그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건 나라를 구한 영웅 이순신이었다. 

어릴 적 위인전이라는 것은 내게 참 부담스러운 책 중 하나였다. 위인전을 읽을때마다 평범한 내 자신에 대한 한숨부터 나왔으니 말이다.  

어딘가 남들과는 다른 신비로운 탄생부터 비범한 어린시절 그리고 뛰어난 업적으로 역사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 사람들. 위인전을 읽다보면 마치 처음부터 영웅이 될 운명으로 태어난 것처럼 모든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사람이면서도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었다. 인간의 일반적인 감정인 두려움, 슬픔,  분노 같은 것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충무공 이순신도 마찬가지였다.  

이야기는 그가 백의종군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임금은 전쟁 중임에도 얼토당토 않게 죄없는 이순신을 잡아들여 족치다가 죄가 없으니 마지못해 백의종군을 시킨다. 원균이 대패한 후에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앉힌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무찔러야하는 적은 왜군 하나가 아니었다. 사방이 적이었다. 임금의 그의 적이었고 조정 대신들이 그의 적이었다. 명나라에서 온 구원병은 강너머 불구경하듯이 강화도에 박혀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겨우 왜군이 물러날 무렵 뒤늦게 나타나서는 자신이 공을 세울 일만 생각하느라 왜군을 그냥 보내주라고 말한다. 이순신에게 그들 또한 적이었다. 

임금은 자주 울었다...(중략)...임금의 울음은 남쪽 바다에까지 들렸다. 임금은 슬피 울었고, 오래오래 울었다. 

임금이 할 줄 아는 건 그저 우는 것 밖에 없었다.  

임금의 사직은 끝없이 목숨을 요구하고 있었고 천하가 임금의 잠재적인 적이었다...(중략)...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사직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 

우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무능한 임금이면서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의 빛나는 전공이 임금을 압박하고 임금은 그를 다시 압박한다.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그는 죽을 자리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그의 소원은 노량해전에서 이루어진다. 솔직히 그가 이런 죽음을 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난중일기를 기초로 해서 쓴 글이긴 하지만 소설이니만큼 작가의 시선이 다분히 느껴진다. 아들과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물론, 여진과 이순신과의 관계는 작가가 지어낸 것이다.) 그리고 전쟁 중에 나타난 슬픔과 분노.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고뇌하는 이순신의 모습은 이제껏 내가 상상하던 그의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너무 먼 당신~에서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이라고 할까? 아직까지 그의 허리춤에서 징징 거리며 우는 칼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