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정도 - 윤석철 교수 제4의 10년 주기 작作
윤석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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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결과에는 이유가 있다. 글쓴이는 이유는 수단매체 결과는 목적함수로 정의했다. 인간은 누구나 수단매체를 가지고있다. 그것이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사회적이든 목적함수를 이루기 위해서 수단매체를 이용한다.
 

 인류는 수단매체의 고도화로 타 생물체와 비교해 월등하게 발전했다. 즉, 목적함수를 해결하기위한 방법을 경제적,기술적으로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더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매체의 고도화는 어떻게 이룩할 수 있을까? 글쓴이는 불가능을 가능케하리라 믿는 열정, 미래를 위해 투자하며 기다리는 인내, 자연과학을 탐구하며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을 고도화의 수단으로 꼽고있다. 하지만 이렇게 발전된 수단매체도 인간의 목적에 따라 그 존재가치가 달라진다. 같은 수단매체도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데 그것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고 저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목적함수는 이익최대화가 평가의 척도가 된다. 쉽게 말해 결과를 얻는데 사용한 비용을 결과의 가치이 차감한 값이 높을수록 바람직한 목적함수가 된다. 이익최대화를 위해서는 가치는 언제나 비용보다 커야 하는데 개인,기업,사회 모두 비용을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치를 높이는 것이 우선되야 한다.

 가치>비용을 만족하려면 세단계의 수단매체가 필요하다. 첫 단계는 ‘감수성’으로 상대방의 필요/만족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를 위해선 자신의 위치에서 내려와 상대방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한다. 두 번째단계는 상상력으로 이는 감지한 상대방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경험, 몰두, 자유로운 분위기 등에서 오는데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적용할 수 있는 준비된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단계는 탐색시행이다. 정보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상상했더라도 그것이 실제에 적합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탐색시행을 통해 실제환경과 상상력의 적합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렇게 3단계 모두 적절히 시행되면 가치>비용 공식이 완성된다.

 

 결국 이 책의 제목이자 글쓴이가 원하는 ‘삶의 정도’를 걷기 위해서는 1)확실한 목적함수를 가지고 2)수단매체를 축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요소는 배타적이 아닌 상호 보완적관계로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둘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둘다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삶의 정도는 두 요소의 완벽한 공존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이라고 결론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정도를 걷고 있는가? 요즘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말그대로 국민들이 살기 힘들다는 것을 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단어다. 이는 목적함수, 수단매체의 정립, 관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국가는 3요소로 나눌 수 있다. 정부, 기업, 국민으로 구성 되어있는데 어떤 요소도 제대로 된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정부는 당연히 국민의 행복을 목적함수로 정립해야 한다. 하지만 얼마전 까지만 해도 극소수의 행복을 추구했고 수단매체 또한 악의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자행됐다. 하나의 요소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거기에 공정한 배분이 필수불가결하다. 또한 수단매체는 인건비 절감이 아닌 기술혁신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한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지고있다. 이렇게 정부, 기업의 잘못된 정립이 국민의 목적함수에도 악영향을 미치고있다. 대표적으로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대학생들의 목적함수를 보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취업이 대학생들의 목적함수가 됨으로써 학문의 요람인 대학은 취업률 높이기에 급급하고있고 자유와 청춘을 외치던 대학생들은 사라지고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정부, 기업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있겠지만 경제불안정, 취업률감소, 청년실업 등 계속되는 악순환의 반복은 모두가 만들고있다.
 

 우리는 경쟁하면서 살아왔다. 그 결과 급격한 성장을 이뤄냈지만 나의 성공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졌다. 이미 고착화 되어버린 경쟁사회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 단계를 나아가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경쟁보다는 상생의 시대이다. 악순환을 끊고 정도를 걷기 위해선 모두가 건설적인 목적함수를 가지고 합리적인 수단매체를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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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변용란 옮김, 한성철 감수 / 아름다운날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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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모르고 이 책의 제목만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는 두껍고 한자가 많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의 책이 떠올랐다. 그러나 다 읽은 후의 뿌듯한 기분을 맛보기위해 한번 도전해볼 생각으로 이 책을 읽고 review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책을 집은 나는 살짝 놀랐다. 생각보다 너무 분량이 적었기에 혹시 요약본 아닌가? 초등학생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거 너무 분량이 작아 review 쓸 내용은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책을 처음보고 내가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진 이유는 표지에 적혀있던 이 책이 근대 정치학의 초석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현대의 기업경영은 물론 마케팅과 인사관리에도 두루 이용된다는 옮긴이의 글귀 때문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경영을 전공하는 나를 더욱더 읽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은 나는 의문이 생겼다. 군주론을 어떻게 지금 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까? 만약 적용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할까? 요즘 사회가 군주론형 인간을 받아 들일 것인가?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다. 즉 군주가 아닌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나라를 통치한다. 또한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인 만큼 국민의 의견을 무시 할 수 없으며 모범이 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링컨이 말했듯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것이 요즘사회의 대표적인 군주로서의 모습이다. 그런데 군주론에서 말하는 군주는 이런 형태에 거의 해당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군주는 청렴, 도덕적이기보다는 조금은 위선적인 행동으로 이득을 취해야하며 국민에게 사랑받기보다는 두려운 존재가 돼야 한다며 말하고 있다. 아마 이글을 보고 오히려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는 강력한 군주가 필요하다고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그것에 반박할 것이다.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위에서도 군주론형인간이 어떤한 결과를 초래 했는지 잘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의 김정일 같은 인물을 살펴보면 그는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넘어 신적인 존재로 추앙된다. 그리고 마치 군주론을 읽고 행동하는 것같이 배신자가 있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처형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모든 나라들이 북한은 곧 망할 것이며 김정일을 현명한 군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그가 그렇게 독재정치를 해서 북한이 현재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나라라고 생각해보자 과연 후세인들은 그를 좋게 평가할까? 그에게 고통 받은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은 결코 그 상처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 후세의 북한 국민들 생각 속에는 최악의 군주로 남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히틀러 같은 인물은 어떠한가 그 또한 국민들에게 두려움으로 남겨졌고 살생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나라의 힘을 키워 다른나라와 맞서 싸웠다. 그 시대또한 군주가 어울리지 않은 시대였는데 그는 군주노릇을 하며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다가 결국에는 처참한 말로에 다달았다. 이렇게 결국 요즘사회에 군주론형 인물이 등장하면 결과는 그다지 좋은거 같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의견을 보고 반박하는 사람들은 나라라는 거대한 조직에서는 군주론형 인간이 수용되기는 어렵지만 작은 집단에서는 허용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요즘사회는 조직의 규모가 어떻든 구성원들 즉 군주가 아닌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세상이다. 구성원들도 모두 의식이 깨어있고 리더 못지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회사를 보면 군주라는 임원들에게 맞서는 노조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일어난 쌍용자동차와 노조의 다툼에서 결국 쌍용자동차가 파산위기에 놓인 사건만 도 지위가 높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 수있다. 이렇게 보면 군주론은 현대사회에서는 성공사례가 없기 때문에 수용 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요즘은 주변의 비난과 시선이 무서워서 군주론 형 인간이 되지 않을 뿐이다. 이런 말이 있다 ‘한명의 천재가 천명의 사람을 먹여 살린다.’ 여기서 천재는 곧 뛰어난 사람, 앞서가는 사람을 말하는데 그러려고 하면 남과는 다른생각, 다른행동을 해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사회에 군주론형 인간이 필요할 수 있다. 한나라의 대통령이라면 국민들의 비난들 들으면서 까지 대를 위해 소를 버릴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하고 이윤을 위하는 회사라면 몇 몇 사원 때문에 성장에 발목 잡혀선 안된다. 그러므로 남과는 다른 리더가 되려면 주변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오직 조직의 미래를 위해서 움직일 수 있어야한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이런 사람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는 좋은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좋은 군주는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박정희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에서는 부정적이다. 그는 독재를 하기위해 군사정변을 일으켰으며 전 국민이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을 때 독재정치로 대한민국을 자기 마음대로 휘둘렀다. 하지만 독재정치를 함으로써 자기만의 생각대로 판단을 할 수 있었고 국민들을 신경 쓰지 않고 결정 할 수 있었다면 단순히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된다. 결국 박정희 대통령덕분에 우리나라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그도 자신이 총애하던 부하에게 암살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이 군주론형 인간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요즘 정치인들은 재선임과 같은 국민에게 다시한번 손을 벌려야하는 상황이 있기에 국민들 눈에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군주론형 인간이 되지 못할 뿐 뒤가 없는 상황이라면 조금은 빗나가더라도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 될 수가 있다. 그렇기에 군주론이 현실사회에 쓰이는 것을 사람들이 거부할 뿐 현실사회에 적용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위험성을 감수하는 것 역시 군주로서 극복해야 될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이번기회에 평소라면 이름만 들어도 멀리했을 군주론을 읽으면서 나는 현대사회와 관련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나의 현재 전공이 경영이니 만큼 더욱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군주론을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되는 부분이 많다. 현대사회에 마케팅이나 인사관리에 쓰인다는데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는 아직도 더 생각해 봐야할 것 같다. 나중에 혹시 내가 리더가 된다면 군주론을 잘 활용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군주론은 생각보다 분량은 작았지만 오히려 그 속에 쓸데없는 문장은 없고 만약 내가 그 시대의 군주로 살았다면 나라를 다스리는데 정말 도움이 될 내용도 많았고 삶에 이치와 교훈이 담긴 책인 것 같다. 그리고 약 5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것과 그러한 내용이 아직까지도 많은이에게 귀감이 된다는 사실에 정말 감탄하였다. 이렇게 명성에 만큼이나 나에게 신성한 충격을 준 군주론을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 계속 되새기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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