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의 시선 (반양장) -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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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될 수 있으니 주의!>


열 살에게도, 열네 살에게도, 서른네 살에게도 나쁜 기억이 파도처럼 덮치는 시기는 있다. 그저 기억속에 적립되어있던 나쁜 일들이 물리력을 가진 것처럼 자신을 휩쓰는 시기, 삼십대 중반의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두 번 있었다. 그 기억의 재해는 서로 다른 기억에 의한 것일 수도, 동일 기억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후자였고, 열네 살과 스물한 살 동일한 기억의 재해에 휩쓸렸다.

과거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형상을 띤 채 늘 그자리에 있었음에도, 시간의 흐름과 나의 성장에 따라 선명하고 뾰족해졌다. 그런 과거들은 입 밖으로 내어 몇 번이고 토로하지 않으면 도무지 무뎌지지 않았고, 열심히 꺼내 놓아 무뎌지고 나아졌나 싶으면 별안간 날을 세운 채 나를 바라보곤 했다.

중고등학교 내내 새벽 5시에 등교하여 가장 늦게 하교하던 나는, 열네 살엔 매일 아침 6층의 동아리실 창문을 열고 난간에 올라섰다. 나의 성장이 가져다준 자각이 과거의 날을 무섭도록 날카로워졌던 탓이었다. 눈치 빠른 아이들이 그러하듯 그 상태 이상을 밖으로 드러내는 어리석은 짓은 않은 채 매일 고소공포증과 싸우며 난간에 올라섰다. 자아의 성장은 의미를 편집하고 부여한다. 율에게는 몇 살이 그 시기였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 장례식을 치르던 때, 혹은 학교 생활을 하면서 자아가 성장을 해나감에 따라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확증편향적 죄책감이 도해를 만난 열여섯까지 줄곧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큰 일, 그것도 나쁜 일을 겪은 인간은 누구나 성장한다. 네 살도, 열 살도, 여든 살도 그럴 것이다. 그 성장은 때로 사람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다. 어린 아이들은 대체로 어른스러워 지는 듯하다. 이 비정상적인 성장은 사람을 어른스러워 보이게 만들지만 진짜 성장에는 방해가 된다. 어릴 적 어른스럽던 아이들이 때때로 어른이 되어서도 그 시절의 어른스러움만 가진 채 성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한순간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어려움, 부담과 눈치, 변화에의 적응 같은 것이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하고, 어쩔 수 없이 나아가게 하여 등떠밀릴 뿐인 것이라 믿는다.

율은 아버지의 죽음 이래 자아가 조각나 뒤틀린 채 성장했다. 균형을 잃은 몸은 산들거리는 바람에도 흔들리고 만다. 찰랑거리는 물은 금세 그릇 밖으로 넘친다. 율이 외부 세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방향성, 취급 방식을 정해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땅만 바라보는 율, 운동화만 쳐다보는 율, 타인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타인을 바라보지 않는 율은 시선은 사실 타인보다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기 위한 시선의 차단이었으리라.

율은 고양이의 죽음이라는 매개를 통해 도해를 인지한다. 아버지의 죽음이 율을 망가트렸기에, 율이 고양이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명했다. 자신을 구하다 차에 치여 돌아가신 아버지, 그의 죽음을 구경하기만 하던 사람들의 시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율의 시선. 아버지를 자신이 죽인 것이라 여기는 율이 자기 손으로 고양이를 죽인 것으로 보이는 도해를 보며, 살해자에 대한 공포와 살해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누르지 못한 채 도해에게 다가간다.

도해는 언뜻 자유로워 보인다.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북극성으로 칭하는 아이. 도해의 정체를 모른 채 다가서는 율에게는 시선을 알려주고 스스로를 들여다볼 계기를 주었지만, 그 누구도 손뻗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을 요청하지 못한 보이지 않는 아이 도해. 도해가 처한 상황이 수면 위로 드러날수록 도해에게 말을 거는 율에게 도해가 한 말이 생각났다.

"내가 보이는 사람은 오랜만이야."

하늘 이야기나 하며, 옥상을 찾고, 사람들이 찾지 않는 구석으로 들어가 남들이 바라보지 않는 곳을 바라보는 도해를 율은 신비로운 존재 쯤으로 여기나, 사실 율에게는 다른 주어진 것도, 주어진 자리도 없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들었을 것이다. 하늘과 별은 공짜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거니까. 아무도 봐주지 않는 아이는 반대로 너무 눈에 띄어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숨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선미 작가의 <비스킷>(위즈덤하우스, 2023)이 떠올랐다. 단계에 따라 존재감이 점점 흐려지고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되며, 결국 사라져버리는 비스킷들. 도해는 그 비스킷인 동시에 너무 눈에 띄는 아이였고, 소문의 1면에 노출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 도해를 모르는 건 땅 밖에 보지 않는 율 뿐이었다.

율이 시선을 둔 적 없는 세계, 하늘과 북극성을 이야기하는 도해를 율은 소문으로 들은 해골 같은, 쓰레기집의, 알코올 중독자 아줌마와 살고 있는 아이라고는 생각 하지 못한다. 도해도 자신의 사회적 껍데기는 보지 않는 율이기에 하늘이니 별이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늘과 별은 도해에게 유일하게 무한한 재화인 동시에,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온기가 소중했던 도해이기에 난자된 채 식어버린 작은 고양이의 온기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해가 율의 공책에 쓴 문장은, 율이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딛어 나갈 힘이 되었다. 그럼에도 함께하는 사이 도해의 고통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을 율은 평생 기억하고 감각하며 자신의 소설을 평생 품은 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불행과 어려움, 불안에 사람들은 쉽게 경중을 가리지만 다른 세계를 직접 경험 할 수 없는 '나'에게는 그저 내가 당면한 사건이 가장 큰 어려움이며 고통이다. 사람들이 줄세워둔 고통의 순위의 바깥에 존재하더라도 나는 나의 괴로움으로 몸부림친다. 율의 불행과 도해의 불행 중 더 가볍고 더 괴로운 것은 없는 것이다. 율에게는 율의 세계가, 도해에게는 도해의 세계가 존재하는 탓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쉽게 상처 받는다. 다만, 종래에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 치유하며 성장한다.

<율의 시선>은 율과 도해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서사인 동시에 명백한 성장이야기다. 청소년 소설이라면 의레 성장 서사이겠거니 하겠지만, 사실 인간의 성장은 소년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신과 인격은 나이가 몇 살이어도, 어떤 작은 일을 계기로도 성장한다. <율의 시선>은 육체의 생장이 꽃피는 시기에 덜커덕 걸려버린 영혼의 성장 앞에 볕을 쬐이고 물을 주는 다정한 소설이다. 언젠가 힘든 일을 겪었던 사람들이라면, 혹은 지금 당장 괴로운 사람들에게도 그 당사자가 글을 읽을 수 있는 상태라면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율의 시선을 착실히 따라가다 보면, 도해를, 진욱을, 지민을, 율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분명 읽는 사람들도 율의 성장과 함께 마음 속의 어떤 인격들의 성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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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사회학
최재율 지음 / 유풍출판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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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서적인데, 어제 저녁에 주문해서 바로 받았네요. 빠른 배송 속도에 감탄했습니다. 잘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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